[패권확보 위한 삼전(三戰)전략①] 전직 EU대사 등에 거액 제시, 스파이 포섭… 친미국가엔 안 먹혀
  • ▲ 2016년 8월 정세균 당시 국회의장을 찾아간 게르하르트 사바틸 EU대사(사진과 본문 내용은 관련이 없음).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16년 8월 정세균 당시 국회의장을 찾아간 게르하르트 사바틸 EU대사(사진과 본문 내용은 관련이 없음).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15일(현지시간) “전직 EU 외교관 외에 2명이 중국 스파이 혐의로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누군지는 밝히지 않았다. 이틀이 지난 17일(현지시간)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는 EU 관계자를 인용해 “독일 연방검찰에게 불구속 기소된 사람은 게르하르트 사바틸”이라고 보도했다. 벨기에 검찰 또한 그를 수사 중이라고 덧붙였다.

    '중국 스파이' 게르하르트 사바틸은 누구인가

    게르하르트 사바틸은 EU 대외활동부(외무부)에서 오랫동안 일했으며, 2015년에는 주한 EU대사를 지낸 인물이라고 한다. 17일(현지시간) 벨기에 'EU옵저버'는 “사바틸은 EU 등에서 30년 이상 외교관으로 활동한 경력을 갖고 있다”며 보다 상세한 내용을 전했다.

    EU옵저버에 따르면, 사바틸은 독일과 헝가리 이중 국적을 갖고 있다. 헝가리 프라하,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의 EU 대외활동부 책임자, EU의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으로도 일했다. 한국뿐만 아니라 독일·아이슬란드·노르웨이에서도 EU대사를 지냈다. 유로 위원회에서는 공정거래·산업·예산·서발칸 반도 문제를 다뤘다. 그는 이런 경력을 내세워 유럽 대학들이 공동으로 설립한 브레게 대학원에서 강의를 맡기도 했다.

    사바틸이 독일 연방검찰의 수사망에 포착된 계기는 2017년 EU대외활동부를 그만 둔 뒤 한 중견 로비업체에 들어가면서부터다. 그가 일하던 로비업체는 독일 베를린과 뮌헨, 벨기에 브뤼셀에 사무실을 둔 ‘유톱(Eutop)’이라는 곳이었다. “16명이 일하는 유톱의 브뤼셀 사무소가 지난해 올린 매출은 280만 유로(한화 36억 3000만원)에 달했다”며 BAT(브리티시 아메리칸 토바코), 도이체 텔레콤, 제네럴 일렉트릭, 프라이스 워터하우스 앤 쿠퍼스 등 거대 기업을 고객으로 두고 있다고 EU옵저버는 전했다.

    사바틸의 중국 스파이 노릇, 지난해 발각

    쥐트도이체 자이퉁에 따르면, (연방정보청 등으로 추정되는) 독일 정보당국은 지난해 연방검찰에 사바틸을 비롯한 3명이 중국을 위한 스파이 활동을 했다는 첩보를 제공했다. 독일연방검찰은 이들의 휴대전화 기록과 여행 기록 등을 추적해 중국 스파이로 활동한 증거를 찾아냈다.
  • ▲ 중국 스파이가 해외에서 훔치는 물품은 별의별 것이 다 있다. 사진 속 중국 스파이는 옥수수 종자를 훔치다 붙잡혔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중국 스파이가 해외에서 훔치는 물품은 별의별 것이 다 있다. 사진 속 중국 스파이는 옥수수 종자를 훔치다 붙잡혔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사바틸 일행은 중국에서 국가안전부(MSS·중국 정보기관) 최고 책임자와 면담을 가졌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신문은 설명했다. 독일연방검찰은 사바틸 외에도 중국 스파이가 더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사바틸은 검찰에 구속되거나 사무실과 자택을 압수수색 당하지는 않았지만, 베를린·바이에른·바덴뷔르템베르크·브뤼셀 등 독일과 벨기에의 9곳이 두 나라 검찰의 압수수색을 당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중국 스파이 관련 혐의 때문이었다.

    사바틸 사건으로 유럽 국가들, 중국 스파이 주목

    국내에서는 사바틸이 주한 EU대사를 지냈다는 점 때문에 주목하지만 유럽에서는 그동안 함부로 말하기 어려웠던 중국 스파이 문제와 소위 ‘친중파’ 문제가 서서히 언급되는 모양새다.

    EU고위 관계자들은 “사실 그동안 전직 고위 관료가 로비업체나 NGO로 가서 활동하고, 이들이 다시 고위직으로 임용되는 회전문 인사 탓에 EU의 정보보안과 정책이 외부 영향을 받을 위험이 있었다”고 EU옵저버에 토로했다. 중국으로부터 거액을 받은 로비스트가 고위 공무원에 임용 또는 당선될 경우 외교적 참사가 벌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EU 대외활동부의 내부 메모에 따르면, 벨기에에만 250여 명의 중국 스파이, 200여 명의 러시아 스파이가 활동 중이지만 벨기에 정보기관에서 이들을 감시·조사할 인원은 30명에 불과하다”고 EU옵저버는 덧붙였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벨기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특히 동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공산주의에 대한 향수를 가진 세력 때문에 중국 스파이와 친중파가 넘쳐 난다.
  •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화웨이 설립자 런정페이. ⓒ연합뉴스 EPA.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화웨이 설립자 런정페이. ⓒ연합뉴스 EPA.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현재 EU는 28개 회원국이 있다. 이들은 미국·중국·러시아 관계에 따라 갈라진다. 특히 동유럽의 성향을 나누는 기준은 중국이다. 폴란드와 헝가리가 대표적인 두 나라다.

    ‘친중’ 헝가리와 ‘친미’ 폴란드…중국이 높게 평가한 나라는?

    사바틸이 국적을 갖고 있는 헝가리는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중국은 헝가리 부다페스트와 세르비아 베오그라드를 연결하는 고속철을 지었다. 세르비아에는 발전소도 추가 건설하기로 했다. 2018년 말 기준 중국의 동유럽 투자액 가운데 40%가 헝가리에 흘러든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탓인지 헝가리는 미국의 경고는 아랑곳 않고, 화웨이·ZTE 등 중국 통신업체의 제품과 장비를 사용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 이념을 전파하는 공자학원 설립도 허용하고 있다.

    반면 폴란드는 중국 스파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는 화웨이를 손 봤다. 지난해 1월 13일(현지시간) 폴란드 보안기관은 자국 내 화웨이 지사 판매이사와 전직 정보기관 간부를 중국 스파이 혐의로 체포했다. 화웨이 통신장비를 사용한 자국 통신사 오렌지 폴슈카도 압수수색 했다.

    중국은 발칵 뒤집혔다. 중국 외교부는 “체포된 중국인을 공정하게 처우해 달라”는 성명을 냈다. 화웨이 본사는 자국민인 판매이사를 즉시 해고했다. 그리고는 “그 사람의 활동과 화웨이는 관련이 없다”고 발뺌을 했다. 그러나 폴란드는 화웨이와 중국을 더 이상 믿지 않았다. 6개월 뒤 화웨이는 폴란드에 5G통신사업 진출 조건으로 9000억 원의 투자 방안을 제시했다. 폴란드는 단칼에 거절했다. 그리고 두 달 뒤인 9월 5G통신사업은 미국과 함께 한다고 발표했다.

    중국이나 화웨이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압박했지만 폴란드는 꿋꿋했다. 2001년 9.11테러 이후로 세계에서 가장 친미국적인 나라로 인식된 폴란드를 중국이 건드릴 수는 없었다. 다른 EU 회원국들처럼 친중파와 스파이를 만드는 것도 쉽지 않아졌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