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징계 다루는 '소위원회 참석' 통지서 보내놓고, 중징계 검토… 인헌고 "실수였다" 해명
  • ▲ 전국학생수호연합 김화랑 대표(오른쪽)와 최인호 대변인이 지난해 12월 18일 정치편향 교육 논란이 제기된 서울 관악구 인헌고등학교 앞에서 사상주입 교육을 비판하는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정상윤 기자
    ▲ 전국학생수호연합 김화랑 대표(오른쪽)와 최인호 대변인이 지난해 12월 18일 정치편향 교육 논란이 제기된 서울 관악구 인헌고등학교 앞에서 사상주입 교육을 비판하는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정상윤 기자
    '정치편향' 논란을 빚은 서울 인헌고가 '정치교사'를 폭로한 학생들에게 '퇴학조치'까지 가능한 중징계를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당초 인헌고 측은 지난달 26일 진행된 두 학생의 징계 절차와 관련해 교내 ‘소위원회에 참석해달라’고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안내했다. 학생과 학부모들은 통상 소위원회에서 내려지는 교내봉사 같은 경징계 조치를 예상했었다. 불과 10여 일 만에 견해를 바꾼 셈이다.

    학교 측은 경징계에서 중징계로 견해를 선회한 이유에 대해 "서류상 실수"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에 학교가 학생의 퇴학을 막는 게 아니라, 퇴학시킬 수 있는 조치를 하겠다고 나서는 '비상식적' 행태를 보인다는 지적이 일었다.

    14일 본지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인헌고(교장 나승표)는 일부 교사들의 '정치편향' 의혹을 폭로한 김화랑 군과 최인호 군에 대한 ‘제8차 학교생활교육위원회’를 지난해 12월26일 열었다. 학교생활교육위는 학생생활규정에 따른 징계 사안을 심의하는 학내 기구다. 위원회는 교감을 위원장으로 생활안전부장, 생활안전부 선도계 교사, 교무부장, 각 학년 부장, 상담교사 등 8명으로 구성된다. 이들 교내 교사로 구성된 위원회가 사안을 심의·의결한 뒤 해당 학생을 징계하는 절차를 갖는다.

    '정치교사'들이 학생 징계 결정?

    앞서 인헌고는 지난달 13일 김군과 최군 학부모에게 ‘학부모 출석통지서’를 보냈다. 통지서에는 두 학생은 인헌고 학생생활규정 2장 제19조 해당하는 징계 대상이며, 징계 전 학부모의 의견을 듣고자 하니 지정된 일시에 학교생활교육 ‘소위원회’에 참석하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학교 측은 지난달 4일 학교 정문과 교내에서 두 학생이 교감에게 폭언과 욕설을 하고, 이 장면을 유튜브 영상으로 생중계했다면서 문제를 제기했다. 이 사안의 징계 근거가 인헌고 학생생활규정 2장 제19조 1항 ‘교권을 고의로 침해한 행위(폭언·욕설·폭력 등)’와 21항 ‘타인의 신상정보를 도용하거나 불법거래한 행위’에 해당한다는 게 학교 측 판단이다.  

    통상 경징계 사안의 경우 소위원회가, 중징계 사안은 생활교육위가 열린다. 징계 등급은 교내봉사, 사회봉사, 특별교육, 출석정지, 퇴학으로 구분된다. 학교 측은 분명 ‘학부모 출석통지서’에서 소위원회에 참석할 것을 안내했다.

    그러나 학교 측은 통지서에 적힌 소위원회 문구가 편집 과정에서 오타가 난 것이라며 김군과 최군에 대한 징계 건은 소위원회가 아닌 생활교육위 성격의 절차였다고 말을 바꿨다.

    인헌고의 한 관계자는 이날 본지와 통화에서 “위원회 성격이 바뀐 게 아니고 처음부터 대위원회로 열린 것”이라며 “소위원회로 안내됐다는 건 어제 학생 부모님과 통화하면서 알게 됐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통지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소위원회라는 오타가 났다”며 “제목과 주요 사안만 확인하고 내용을 꼼꼼히 챙기지 못했다”고 실수를 인정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두 학생 사례의 경우 소위원회에서 판단하기엔 어려움이 커 생활교육위에서 다루는 게 타당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중징계하기 위해 생활교육위를 개최하는 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인헌고 "소위원회는 실수… 처음부터 중징계 다루는 위원회였다"

    지난달 26일 열린 위원회는 시간부족 등을 이유로 중단된 상태다. 새로운 위원회 일정은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위원회에서 재적위원의 과반수가 출석해 징계 찬성을 의결하면 두 학생에게 즉시 징계조치가 이뤄진다. 

    현재 졸업을 앞둔 두 학생은 징계 수위에 따라 올해 대학 진학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심의자가 전부 교사들로 이뤄져 있고 중징계를 다루는 생활교육위 특성상 김군과 최군에게는 교내봉사와 같은 경징계보다 출석정지, 심하면 퇴학 처분이 내려질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대학입시 응시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학생들의 법률대리인인 장달영 변호사는 “위원회가 열렸을 때도 소위원회인지 학교생활교육위원회인지 정확한 공지가 없었다”며 “학교 측에서 단순 실수라고 하니 특별히 대처할 건 없겠지만, 만약 학교에서 부당한 징계를 내린다면 법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 변호사는 “사안을 보면 학생들이 교사에게 폭행이나 욕설을 한 것도 아니고 시위 과정에서 작은 소동을 벌인 것인데, 이를 두고 퇴학 처분까지 내릴 건 아니라고 본다”며 “곧 열리는 위원회에 참석해 학생들의 입장을 적극 소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군은 지난해 10월 인헌고 일부 교사들이 교내 행사에서 학생들에게 반일구호를 외치게 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SNS에 올렸다. 영상에 등장하는 여학생 2명이 명예훼손·초상권침해로 신고하자 학교 측은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열고 최군에게 서면사과와 사회봉사 15시간 조치를 내렸다. 최군 부모도 특별교육 이수 명령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