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구 획정 절차 무시… 호남 의석 유지하려 수도권 선거구 통폐합 추진
  • 이인영(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6일 국회에서 열린 당 정책조정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 이인영(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6일 국회에서 열린 당 정책조정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4+1협의체(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 당권파·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가 선거구를 획정한다고요? 무슨 권한으로 그렇게 합니까?"

    '4+1협의체'가 선거구 조정을 논의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자유한국당 관계자가 내놓은 반응이다. '4+1협의체'가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게임의 룰에 이어 선거구 조정마저 제1야당을 배제한 채 밀어붙이려 하자 '선거구 도둑질'이라는 비난까지 쏟아진다. 인구비례 원칙을 무시한 채 호남지역에 선거구를 몰아주려 한다는 비판도 거세다.

    왜 서두르나… 획정 안 되면 연동형 비례제 도로아미타불

    공직선거법은 별표에 '국회의원 지역선거구 구역표'를 포함한다. 조만간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것으로 예상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수정안)은 이 별표를 제외한 법 본문만 개정 대상으로 한다. 내년 총선을 개편된 선거제로 시행하려면 개정 선거법 본문에 이어 별표까지 본회의를 통과해야 한다. 별표를 구성하는 선거구 조정안 도출에 실패하면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개편 제도 역시 물거품이 되고, 현행 선거법대로 선거를 치러야 한다. '4+1협의체'가 선거구 조정을 서두르는 이유다.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제21조 제1항에서 국회의원 정수를 "지역구 국회의원 253명과 비례대표 국회의원 47명을 합하여 300명으로 한다"고 규정했다. 지역구 253석은 현행 20대 국회와 같지만, 2016년 당시와 내년 총선 시점에는 서로 지역별 인구 수가 달라 253개 선거구를 새로 획정해야 한다. 

    본지가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선거법상 선거구 조정과 관련한 국회의 권한은 의원 총수와 시도별 의원정수를 정하는 것까지다. 이 두 가지가 정해지면 획정위가 시·도별 선거구를 인구비례에 맞게 조정한다. 

    선거법은 이 과정에서 "정당에 의견 진술의 기회를 부여하여야 한다"고만 규정할 뿐 국회 또는 정당이 지역별 선거구 조정 권한을 주지 않았다. 2015년, 획정위를 국회가 아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에 두기로 한 것도 정치적 고려에 따른 선거구 조정을 막기 위해서였다.

    선거제도에 이어 선거구 조정도 한국당 배제… 월권 논란

    하지만 보도에 따르면 '4+1협의체'는 의원 총수 253석을 전제로 수도권 선거구 통폐합 등 분구(分區)까지 논의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의원 총수가 정해지면 시·도별 의원정수부터 원내교섭단체 간에 합의해야 하는데, 이 절차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한국당 핵심 관계자는 "4+1이 무슨 권한으로 선거구 획정을 얘기하는지 알 수 없다. 황당하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또 다른 한국당 관계자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처럼 핵심적인 선거 룰을 한국당 동의 없이 밀어붙이는 것도 모자라 선거구 획정까지 운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현재 선거법 위헌심판 청구까지 고려하는 마당에 한국당이 선거구 획정 논의에 참여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수도권 선거구 통폐합이 문제가 되는 다른 이유는 이것이 호남의 과다대표성을 더욱 강화하는 방안이기 때문이다. 현재 광주광역시(145만8915명) 의석 수는 8석, 대전광역시(147만6,955명)는 7석으로 광주가 대전보다 인구 수에 비해 더 많은 의석을 가졌다. 이 문제는 이미 지난 20대 총선 때부터 제기된 바 있다. 그런데 '4+1협의체'는 호남지역구는 그대로 둔 채 수도권 선거구를 건드리겠다는 것이다.

    김재원 "광주부터 선거구 줄여야… 전북 의석 지키려 작당한 것"

    이 같은 움직임과 관련해 지난 26일 김재원 한국당 정책위 의장은 '4+1협의체'가 '선거구 도둑질'을 한다며 날선 비난을 쏟아냈다. 김 의장은 이날 당 최고위원회에서 "253석을 기준으로 할 때 평균 인구 수가 가장 적은 광주광역시, 또는 전라북도, 전라남도 순으로 지역구를 하나씩 줄여가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이고 헌법 원칙에도 맞다"고 강조했다. 

    시·도별 국회의원 선거구당 평균 인구 수가 제일 적은 곳이 광주광역시, 그다음으로는 전라북도, 전라남도, 부산광역시 순이기 때문이다. 

    김 의장은 '4+1협의체'가 수도권 선거구 통폐합과 같은 복잡한 계산을 하는 것에 대해 "인구 하한선을 김제·부안 선거구의 바로 위인 동두천·연천(14만541명)으로 설정하고 상한선을 그의 2배(28만182명)로 설정하면 이 모든 소동(선거구 통폐합)이 끝난다"며 "김제·부안 선거구를 줄여 유성엽 대안신당 대표의 지역구(정읍 고창)에 통합시키지 않으려고 '4+1 협의체'가 모여 작당한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