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소 217일 만에 열린 환경부 블랙리스트 재판… 검찰 "최고권력층의 채용비리" 규정
  • ▲ '환경부 블랙리스트' 첫 정식 재판이 검찰 기소(4월25일) 이후 217일 만인 27일 오후 열렸다. ⓒ정상윤 기자
    ▲ '환경부 블랙리스트' 첫 정식 재판이 검찰 기소(4월25일) 이후 217일 만인 27일 오후 열렸다. ⓒ정상윤 기자
    '환경부 블랙리스트' 첫 정식 재판이 검찰 기소(4월25일) 이후 217일 만에 열렸다. 김은경 전 환경부장관,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이 현 정권 추천인을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에 내정하는 등 인사권에 개입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이 사안을 '최고권력층의 채용비리'로 규정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판사 송인권)는 27일 오후 2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장관과 신 전 비서관의 1차 공판을 1시간30여 분간 진행했다. 검은색 정장 차림의 김 전 장관, 회색 정장의 신 전 비서관은 이날 공판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피고인임을 확인하는 '인정신문'에서 모두 "현재 직업이 없다"고 밝혔다. 피고인은 공판준비기일에 출석하지 않아도 되지만, 공판에는 법정에 나와야 한다.

    첫 재판에서는 김 전 장관과 신 전 비서관이 받는 범죄 혐의, 사실관계 등에 대한 검찰의 모두진술이 이뤄졌다. 피고인 측은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검찰 측은 "정부 출범 이후 은행권 채용비리 등 각종 채용비리에 대한 비난이 거셌고, 특히 정부가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하면서 채용비리를 엄단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상황이었다"며 "이번 사건 본질은 그 중 최고권력층의 채용비리로, 산하 임원 선정에 있어서 인사권과 업무지휘권을 가진 피고인들이 적극 나서서 채용비리를 저지른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검찰 측은 2018년 12월 고발이 들어온 뒤 관련자 100여 명을 조사했다.

    '관리 소홀히 해 후보자 탈락해 매우 송구하다'… 반성문 쓴 직원도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신 전 비서관은 2017년 7월께 전 정부에서 정치적으로 임명된 사람을 우선 교체 대상으로 하라고 환경부에 하달했다. 김 전 장관은 2017년 6월~2018년 11월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들의 명단을 만들었다. 이후 2018년 12월 산하 공공기관 임원들에 대한 일괄사표 제출 계획이 본격 실행됐다. 13명의 임원에 대해서다.

    이러한 행위가 현 정권 추천자의 임원 자리를 만들기 위함이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실제로 현 정권 추천자를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에 임명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청와대 추천 인사 A씨가 2018년 한국환경공단 상임감사 직위에서 탈락하자 환경부 유관기관인 그린에너지개발회사 대표로 취임하도록 도운 사실이다.

    김 전 장관은 이 과정에서 A씨의 탈락 책임을 물어 직원들에게 불이익을 줬다. 신 전 비서관은 탈락 책임이 있는 직원에게 반성문 형태의 소명서를 작성하게 한 사실도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다. 검찰은 "해당 직원이 작성해서 신 전 비서관에게 제출한 소명서 내용을 보면 '관리를 소홀히 해 후보자 탈락해 매우 송구하다' '매우 큰 불찰로 생각하며 깊이 사죄드린다' '어떤 책임 처벌 감수하겠다'고 돼 있는데, 마치 석고대죄하는 듯한 반성문을 작성한 건 신 전 비서관이 준 압박이 심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전 장관이 사표 미제출자에 대한 표적감사를 해 사표를 받아낸 사실, 정권 추천자가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를 통과하도록 다른 지원자들과 차별한 사실 등도 공소장에 기재됐다.

    피고인 측은 이를 모두 부인했다. 인사 개입을 두둔하는 취지의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 김 전 장관 측은 "이 사건의 경우 정권교체 시기에 있던 일로, 전 정권과 이번 정권 성격이 달라서 정부 정책은 상당히 많이 변화됐다"며 "장관 등과 함께 발맞춰 업무를 해나갈 산하 공공기관 인사에 대해 이런 인사, 경력, 의지 등이 있는 분이 됐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반영하는 게 올바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은경 죄 인정되면 실행 행위자들도 법적 평가 받는 게 정의구현"

    한편 김 전 장관 등의 지시를 받은 환경부 공무원들은 조만간 공동정범으로 재판에 넘겨질 가능성이 커졌다. 공동정범은 공동으로 죄를 범한 경우, 간접정범은 타인을 이용해 간접적으로 범죄를 실행한 경우다. 간접정범과 공동정범은 범행 가담 정도 등이 다르기 때문에 적용 법도 다르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송인권 부장판사는 재판 말미에 "검찰은 주위적 공소사실에 환경부 직원들을 간접정범으로 넣었는데, 이 주위적 공소사실에는 세 가지 문제가 있어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며 "예비적 공소사실에 있는 것처럼 공동정범으로 심리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만일 이분들을 기소 안 하면 선별적 기소라는 비난을 받을 것 같은데, 법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실현되는 것 아니겠는가"라며 "김 전 장관의 죄가 혹여 인정되면 실행 행위자들도 법적 평가를 받는 게 정의구현에 맞는 거 아닌가 개인적으로 생각된다"고 부연했다.

    앞서 재판부는 두 차례 준비기일에서 "피고인이 (범죄를) 직접 실행하지 않은 행위 부분에 대해서는 (실행 행위자들과) 피고인들 간 광의의 공범 관계를 공소장에 특정해 달라"고 검찰에 요청했다. 박천규 당시 환경부 기획조정실장(현 환경부차관) 등 김 전 장관 등의 지시를 이행한 '실행 행위자'인 환경부 직원들이 공동정범인지 간접정범인지 확실하게 하라는 지적이다.

    김 전 장관 등의 다음 기일은 12월11일 오후 2시에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