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돈재 前 독일공사 "통일 후유증은 새댁이 겪는 어려움 같은 것… 준비하고 각오해야"
  • ▲ 염돈재 전 국가정보원 1차장. (염돈재 제공)
    ▲ 염돈재 전 국가정보원 1차장. (염돈재 제공)
    30년 전인 1989년 11월9일 독일을 동서로 분단하고 있던 베를린장벽이 무너졌다. 그리고 1년 뒤인 1990년 10월3일 독일은 통일했다. 지난 9월25일 독일연방 경제에너지부의 발표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옛 동독지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옛 서독지역의 75%, 평균임금은 84% 수준이다. 많은 수의 동독인이 자신을 '2등 시민'이라고 느낀다. 독일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통일 후유증을 겪고 있는 것이다.

    본지는 베를린장벽 붕괴 30주년을 맞아 지난 11일부터 염돈재 전 국가장보원 1차장을 세 차례 인터뷰했다. 그는 독일이 통일되던 그해 주독일 한국대사관 공사를 지내며 독일 통일의 역사적인 현장을 직접 경험했다. 앞서 두 번의 인터뷰에선 독일 통일의 의미와 과정에 대해 물어봤다. 이번엔 독일이 겪는 통일 후유증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들어봤다.

    통일 15년 만에 세계 4위 경제대국…"독일민족 재도약 계기"

    독일은 통일 후 막대한 통일비용을 지출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는 "독일은 지금까지 통일비용으로 2조유로(약 2610조원)를 지출했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 때문에 독일은 한때 '유럽의 병자'라는 조롱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는 게 염 전 차장의 설명이다. 

    "독일은 통일 15년이 지난 2006년부터는 경제가 활력을 되찾아 이젠 세계 4위의 경제대국으로 호황을 누리고 있습니다. 통일로 경제 규모가 커진데다 통일과정에서 노동개혁, 연금개혁을 추진해 선진병을 치유했기 때문입니다. 통일이 독일민족의 재도약 계기가 된 것이지요."

    그러나 정작 많은 수의 동독 주민들은 서독과의 경제적인 격차가 여전해 '2등 시민'으로 느끼는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에선 여전히 '게으른 오시(Ossis·가난하고 게으른 동독놈들)', 거만한 베시(Wessis·돈 많다고 뻐기는 탐욕스럽고 거만한 서독놈들)' 갈등이 여전하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지난달 3일 베를린장벽 붕괴 30주년 전 열린 독일 통일 29주년 기념식에서 "통일은 완전한 상태가 아니며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는 그러면서 "동·서독 지역 간의 격차 해소에는 반세기가 더 걸릴 수 있다"고 했다. 

    독일의 이런 사정 때문에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통일 기피 심리와 '흡수통일은 안 된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독일 통일 후 일부 한국 학자들 사이에선 "독일이 준비 없는 통일, 흡수통일과 각종 실책으로 통일 후유증이 증폭됐다"면서 "우리는 북한경제를 일으켜 세운 후 천천히 합의통일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염 전 차장의 생각은 다르다. 

    "北 경제 일으킨 뒤 통일? 김일성 세습정권이 수용하겠나"

    "독일이 신속한 통일을 추진한 것은 베를린장벽 붕괴로 열린 좁은 통일의 문을 활용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습니다. 우리는 독일식 흡수통일은 안 된다고 하지만 북한과 대등한 합의통일을 한다면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제도, 시장경제 체제 중 무엇을 양보하고 북한 세습체제와 중앙계획 경제 가운데 무엇을 통일 한국의 제도로 수용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북한경제를 일으켜 세운 후 통일해야 한다는데 경제발전을 이룬 김일성 세습정권이 우리 체제 하의 통일을 수용할 것이라 기대한다면 정상이 아니지요."

    "우리가 독일 정부의 실책이라고 생각하는 몇 가지 조치들, 즉 흡수통일 방식, 동서독 화폐교환 비율, 몰수재산의 반환우선 원칙 적용, 신속한 경제통합 등은 불가피하게 선택한 차선책일뿐 실책이 아닙니다.

    염 전 차장은 통일 후유증을 말하기 전에 통일 후유증의 성격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통일 후유증은 '시집간 처녀가 겪은 어려움'에 비유한다. 준비를 잘 한다고 예방되는 것이 아니고 이질적 체제가 결합할 때에는 반드시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후유증 두려워 통일 안한다면 어리석은 일"

    "중요한 것을 얻으려면 덜 중요한 것 하나를 버려야 하듯 통일을 이루려면 통일 후유증을 겪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통일 후유증에 둔감해서도 안 되지만, 후유증이 두려워 통일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더욱 어리석은 일입니다. 통일비용 지출은 20여년에 불과하지만 통일의 혜택은 영원히 향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