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연대 현안토론회서 '관제 민족주의' 오류 지적… "'반일 종족주의' 재조명" 역설
  • 자유한국당 혁신위원장을 지낸 류석춘(64·사진)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가 "최근 문재인 정부가 들고 나온, 반일감정을 이용한 '관제 민족주의'는 식민사관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386 운동권의 '민족사관'에 기초하고 있다"며 "식민사관도 틀렸지만, 내재적 발전론을 담고 있는 '폐쇄적 반일 민족주의'도 틀렸다"고 주장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실학'과 '경영형 부농'을 근대화 맹아로 보는 건 무리"

    27일 '반일 여론'과 한국의 경제·외교·안보를 주제로 열린 미디어연대(공동대표 이석우·조맹기·황우섭)-바른사회시민회의(공동대표 박인환) 현안토론회에 참석한 류 교수는 "'식민사관'은 일본이 왜 한국을 지배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역사관으로, 조선은 자체적으로 근대를 향해 나아갈 수 없는 정체된 상태였기 때문에 한국을 점령, 식민지로 삼아 근대 국가로 바꿔야한다는 사상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류 교수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민족주의 사관'에서는 조선 내부에 근대 국가로 발전할 수 있는 동력이 있었는데, 일본이 강제 침략을 하는 바람에 자체적으로 근대 국가가 되지 못했다며, 조선시대 후기에 나타난 '실학 사상'과 '경영형 부농(富農)'이 근대로 나아가는 징검다리이자 맹아(萌芽)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이어 "이러한 민족주의 사관은 조선을 근대 사회로 끌고 갈 수 있는 '맹아'를 일제가 망가뜨린 뒤 해방을 맞았는데, 이번엔 미국과 일본이라는 신제국주의 세력이 우리나라를 경제적으로 침략해 유럽과 같은 자생적 근대 사회로 나아가는 게 어렵게 됐다고 해석한다"며 "이로 인해 우리나라는 종속적인 매판 자본주의로 변질됐고, 기형적 발전을 했다고 보는 게 민족주의 사관"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실제 우리 역사를 보면, 해방 이후 개방적인 국제경쟁에 참여하면서 박정희 시대에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했다"며 "민족주의 사관에 따르면 불평등이 심해져 망해야 하는데, 망하기는 커녕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도약했다"고 밝혔다.

    "우리가 매판 자본주의로 변질? 사실과 달라"

    이에 따라 "식민사관도 틀렸고 민족주의 사관도 틀렸다"고 강조한 류 교수는 "외부 세력이 일방적으로 강요해 우리 경제를 끌어올렸다거나 혹은 자생적으로 발전했다는 식으로 단정지을 수 없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류 교수는 "이런 맥락에서 봤을 때 이영훈 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등 여러 저자들이 쓴 '반일 종족주의'에서 언급된 것처럼, 우리나라가 운동권이나 민족주의 사관에서 보듯이 매판적 혹은 기형적으로 발전했다고 해석하는 것은 틀렸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식민지 시대에 우리가 정말로 착취만 당하고 짓밟히기만 했다면, 어떻게 그 짓밟힌 '맹아'를 토대로 이렇게 급속도로 발전할 수 있었겠느냐"며 "분명히 일제에 의한 국가적 수탈이 있었지만, 그 시기 '근대성'도 자라고 있었다고 보는 해석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류 교수는 "이는 내부적으로 근대화를 이루려는 '근대적 자각'에 눈을 떴다는 말이지, 결코 일제 강점기를 옹호하거나 감사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며 "예를 들면 일제가 자신들을 위해 우리 국토에 투자해 '농업생산량'이 늘어나면, 이를 바탕으로 생산량 증대 방법을 자연히 알게 되는 등 근대 사회로 가는 힘이 자라날 수도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폐쇄적 민족주의' 고집… 파멸로 이어질 수 있어"

    하지만 "한반도를 통합지배하려는 일본의 욕망이 컸고, 거기에 대한 반작용과 박탈감이 상대적으로 더 컸던 한국의 입장에선 '식민지 수탈론'과 민족주의적 경향이 강화될 수밖에 없었는 상황"이라고 해석한 류 교수는 "제국주의 자체는 자유를 빼앗았기 때문에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게 마땅하나, 수탈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새로운 근대문명이 이식되며 정착되는 과정을 동시에 보자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류 교수는 "90년대 후반, 이미 이영훈 교수와의 학술적 토론에서 밀렸던 좌파학자들이 최근 일본에 대한 '반감 여론'을 등에 업고, 수십년 연구한 학자들의 주장을 꺾으려 하고 있는데, 오히려 일반 국민 사이에선 '반일 감정에 지나치게 의존해 미국과 척지는 건 매우 위험하다. 이러다 자칫 한미동맹대신 북중러 사회주의 동맹에 편입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번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국의 민족주의는 민족 그 자체로 하나의 집단이자 권위를 갖는데 이를 '폐쇄적 관제 민족주의'로 몰고 가기 때문에 '종족주의'란 해석까지 나타났다"고 설명한 류 교수는 "폐쇄적 민족주의로는 거짓말을 양산할 수 밖에 없고, 그 거짓말의 문화·정치·학문·재판으로는 선진화가 불가능할 뿐 아니라 파멸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