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광 전 월간조선 편집장, '황태순TV'서 주장… "조국, 핏줄-이념으로 김원봉과 직결"
  • 3·1운동에 참여한 항일독립운동가로 알려진 조국(54·사진)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종조부(조부의 형제)가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수립에 참여한 '민주주의민족전선(이하 민전)' 출신 좌익인사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 26일 유튜브 채널 '황태순TV'를 통해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종조부(작은할아버지)가 해방 이후 남로당(남조선노동당) 노동부장을 지냈다는 독자 제보를 받았다"고 밝힌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저희들이 언급한 인물이 조국 후보자의 종조부가 맞는지 100% 장담할 수는 없지만, 주로 진보 좌익인사들의 약력을 기록한 '노동자신문'이라는 사이트를 보면 이분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고 소개했다.

    황 평론가가 언급한 사이트는 '노동자의 책(http://www.laborsbook.org)'이라는 이름의 전자도서관으로, 이 사이트를 만든 이모 씨는 2017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지난해 7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이 사이트 내 '사전'이라는 항목에서 '조맹규'를 검색하면, "조맹규(曺孟奎, 생몰년 미상)는 경남 적색농조운동 참가자이자 민전 중앙위원으로, 경남 창원군 웅동면에서 결성된 웅천(熊川)적색농민조합에 참여했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기록에 따르면 조맹규는 웅천적색농민조합에 참여한 일로 1932년 4월 일제 경찰에 검거돼 이듬해 2월 재판에 회부됐다. 이후 진해 동양제사공장, 부산 조선방직회사에서 여성노동자의 조직화를 위해 노력하던 중 1934년 10월 진해경찰서에 검거돼 1935년 1월 검사국으로 송치됐다. 1945년 11월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 상임위원회 문화부장을 맡게 된 조맹규는 1946년 2월 민주주의민족전선 결성대회에 전평 대표의 일원으로 참가해 중앙위원으로 선출됐다. 또 남조선노동당 노동부장을 지내기도 했다.

    '민전' 공동의장 김원봉, 중앙위원 조맹규


    이와 관련, '황태순TV'에 출연한 김연광 전 월간조선 편집장은 "'민전'은 1946년 조선공산당을 중심으로 좌파 계열 정당 및 사회단체가 참여해 결성한 연합 단체인데, 이 단체의 공동의장단이 여운형·허헌·박헌영·김원봉·백남운 등 5명"이라며 "문재인 정부가 김원봉을 서훈(敍勳)하려고 그렇게 난리를 쳤던 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김 전 편집장은 "핏줄과 이념으로 김원봉과 직결되는 사람이 바로 조국 후보자였고, 이런 배경으로 김원봉에 대한 서훈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일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의열단 단장 출신인 김원봉은 광복 이후 북한으로 넘어가 6·25 전쟁에 참전, 김일성으로부터 공훈자 훈장을 받은 인물이다.

    김 전 편집장은 또 "38선 이남지역에서 선출됐다고 하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360명이 1948년 황해도 해주에서 열린 인민대표자회의에 파견됐는데, 거의 다 안 돌아왔다"며 "(여기에 조맹규가 포함됐는지는) 확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 평론가는 "이에 덧붙여 조국 후보자의 고모할머니인 조맹임도 1905년에 태어나 일제 경찰의 고문으로 허리뼈가 부러져 평생 지팡이를 짚고 다녔다는 기록만 있고 사망 연도가 나와 있지 않다"며 "짐작하건대 (조맹규와 마찬가지로) 월북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이 문제 역시 조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국 고모할머니 조맹임도 월북 가능성"

    두산백과에 따르면 조맹규가 중앙위원으로 활동했던 민전은 1946년 2월 남한의 모든 좌익정당(조선인민당·조선공산당·조선신민당·민족혁명당·천도교청우당 등)과 사회단체(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청년총동맹·부녀총동맹 등)가 총결집해 과도정부 수립에 참여할 목적으로 결성한 조직이다. 여운형·박헌영·허헌·김원봉·백남운 등 5명의 의장과 10명의 부의장이 있었으며, 의장단을 포함한 상임위원 73명, 전국에서 선출된 중앙위원 305명으로 구성됐다.

    좌익단체의 민주적 연합체 형태를 표방했으나 실질적으로 조선공산당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던 민전은, 미 군정을 반대하고 한국의 공산화를 이루는 것을 궁극의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정판사 위조지폐사건 이후 참여자 상당수가 월북하거나 피신하면서 남한 내 조직이 와해됐다. 표면적으로는 1949년 북한의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과 통합해 조선노동당의 외곽단체인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이 됐다.

    조국 "민족사학 폐교 막고자 부친이 인수"

    웅동중학교 홈페이지와 언론 보도에 따르면 1912년 경남 웅천지역에 '계광학교'가 세워졌는데, 1930년 9월 조맹규·조원갑·조정호·조명진 등 교사들이 '항일 격문'을 뿌린 일로 구속되면서 1933년 문을 닫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1952년 계광학교의 교육이념을 이어받은 웅동중학교가 설립돼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조 후보자 일가와 관련이 없었던 웅동학원은 1985년 조 후보자의 부친이 이 학원을 인수하면서 연을 맺었다. 조 후보자는 2017년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웅동은 선산이 있는 고향으로 종조부(조맹규)께서 웅동학교 교사이기도 했고, 집안 어르신들이 힘을 보태 만든 민족사학이 폐교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요청에 따라 재단을 인수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조 후보자의 모친인 박정숙(81) 웅동학원 이사장도 같은 해 웅동중학교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웅동중학의 전신은 1908년 건립된 계광학교로, 당시 이 학교 교사들은 독립운동에 투신한 이유로 처벌받았고 이분들 중에는 남편의 숙부 등 창녕(昌寧) 조문(曺門) 일가들이 많았다"며 "이런 이유로 남편은 1985년 고향사람들의 부탁으로 거액을 들여 재정사정이 어려운 웅동학원을 인수했다"고 밝힌 바 있다.

    조 후보자는 최근 조 후보자 일가가 웅동학원으로 집행해야 할 '채무 변제'를 면탈받는 불법을 저질렀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웅동학원'의 이사장이신 어머니가 이사장 직에서 물러나는 것을 비롯해 저희 가족 모두 '웅동학원'과 관련된 일체의 직함과 권한을 내려놓겠다"며 "국가나 공익재단이 '웅동학원'을 인수해 항일독립운동의 정신을 계승하고, 미래 인재양성에만 온 힘을 쏟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