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일 종족주의’ 북 콘서트,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 논평
  • ▲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 ⓒ정상윤 기자
    ▲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 ⓒ정상윤 기자
    오늘 우선 <반일 종족주의>라는 책을 내신 이영훈 교수님과 필자분들게 진심으로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 책은 ‘반일 종족주의’라는 그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습니다. 미국 국제정치학을 창시한 한스 모겐소라는 학자는 “권력을 가진 자는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여기에 한 가지 덧붙여야 합니다. “권력을 추구하는 자는 사실을 왜곡한다.” 권력과 진실, 권력자와 지식인 사이의 싸움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그리스 최초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로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번에 이영훈 교수님과 필자들이 출간한 이 책은 바로 소크라테스로부터 계속 내려오는 지식인과 철학자들의 권력에 대해 진실을 말하겠다고 하는 지적 노력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입니다.

    종족주의는 집단적, 폐쇄적 성격을 지닌 말

    우선 ‘반일 종족주의’라는 책의 제목부터 설명해 보겠습니다. 원래 정치학적으로 보면 ‘종족주의’라는 것은 독일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프랑스와 같은 다른 유럽 국가들의 계몽주의와 합리주의에 대항하여 후진국이었던 독일은 혈연과 언어와 전통과 같은 종족 고유의 정신과 특징을 강조하는 ‘정치적 낭만주의’에 바탕을 둔 종족주의로 나아갔습니다.

    프랑스혁명 이후 나폴레옹이 독일을 침략했습니다. 그래서 독일을 전부 점령해버렸습니다. 여기에 대항해서 내놓은 주장이 바로 여러분이 잘 아시는 피히테가 쓴 ‘독일 민족에게 고함’입니다. 이때 독일 ‘민족’이라고 하는 것이 이영훈 교수님의 책에서 말하는 ‘종족’입니다. 독일 종족이 집단으로서 자신의 영토와 주민을 침략하는 프랑스 나폴레옹 세력에 대항해야 한다는 것이 피히테 주장의 핵심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종족’을 내세울 경우 바로 거기에는 ‘반외세’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피히테의 ‘독일 종족에게 고함’은 바로 반외세 종족주의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피히테가 이야기한 반외세 종족주의가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그것이 일본을 거쳐 일제강점기 한반도로 들어옵니다. 그렇게 해서 한국인도 일본의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반외세, 저항적 민족주의, 다른 말로 하면 종족주의의 영향을 크게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영훈 교수님이 잘 설명하시는 것처럼 종족주의라는 것은 집단적, 폐쇄적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하는 원래의 민족주의, 내셔널리즘(nationalism)이라고 하는 것은 자유롭고 평등하고 권리를 가진 개인을 중심으로 하는 사상입니다. 일본 사람들이 내셔널리즘을 ‘민족(民族)'으로 번역하고, 거기에 ‘족(族)' 자가 들어가게 번역해서 종족이라는 의미가 강하게 반영되었습니다. 종족적 의미가 들어가 있기 때문에 프랑스에서 발생한 원래의 민족과 민족주의의 의미를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민족과 민족주의를 개념적으로 차별화시켜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종족적 민족주의와 시민적 혹은 정치적 민족주의로 구분해서 봐야겠습니다. 프랑스혁명 당시 최초로 민족, 민족주의라는 개념이 탄생했습니다. 그때 그것을 우리가 ‘네이션(nation)'이라고 부릅니다. 그 네이션을 일본사람들이 구한말에 민족으로 번역했습니다. 그런데 그 민족은 원래 ‘국민’이라는 의미에 매우 가까운 용어입니다.

    '대한민족'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된 이유

    대한민국 제헌헌법과 1987년 헌법에서 모두 그 전문 첫 문장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으로 되어 있고 ‘대한민족’으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 헌법 제1조 1항을 보면 대한민국은 ‘민족공화국’이 아니라 ‘민주공화국’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이 이해하기가 조금 어렵습니다. 한반도에 오랜 기간 삶을 영위하면서 공동체를 형성한 종족적 집단이 대한민국 건국과 함께 자유민주주의적 정치질서를 스스로 만들고 자신에게 부여한 것입니다.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을 통해서 종족적 집단과 민족이 개인으로 재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자유롭고 평등하고 권리를 가진 개인으로 재탄생해서 그게 바로 국민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헌법 첫 문장이 ‘우리들 대한국민’으로 되어 있고 ‘대한민족’으로 되어 있지 않은 것입니다. 종족적 의미의 한국인이 대한국민으로 재탄생함과 동시에 국민주권론에 기초하여 이 헌법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헌법 전문과 총강 뒤에 보면 바로 기본권 조항에 개인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하는 여러 가지 권리들이 열거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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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이버
    해방 이후 한반도에서 남과 북이 갈라지면서 남한 대한민국에서는 그 종족적 민족주의가 정치적, 시민적 민족주의로 탈바꿈했습니다. 그 과정을 거쳐 대한민국이 탄생했습니다. 북한에서는 여전히 집단적 개체라고 하는 종족을 중심으로 종족적 민족주의가 온존되고 잔존하면서 그것이 김일성의 전체주의와 주체사상의 사상적 기반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문제는 북한이 입만 열면 이야기하는 “우리 민족끼리, 민족공조론, 남북한은 하나의 민족이다”라는 종족적 민족주의에 바탕을 둔 북한의 전복전 논리가 대한민국에 끊임없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영훈 교수님이 주장하는 것처럼 우리 사회에는 종족적 민족주의에 동의하고 무의식적으로 그런 생각을 받아들이는 흐름이 일제강점기를 경험했기 때문에 의식 속에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의 이러한 선전선동의 논리가 우리 사회에 먹혀들게 되는 것입니다.

    북한이 외치는 '종족주의' 선동

    반외세 종족주의에서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반외세’를 구체적으로 얘기해 보라고 한다면 반외세 중에서도 일본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반일 종족주의’가 되겠습니다. 이 책에서 반일 종족주의의 생각과 흐름이 위안부, 과거사, 지금의 한일관계를 바라보는 이런 생각들에 깊이 스며들어서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문제점을 야기하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적 주장입니다.

    이 책에서도 얘기하는 것처럼 일제시기 강제징용과 관련하여 한국 대법원이 내린 그 판결문을 보게 되면 반일 종족주의적 사고에 사로잡혀 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 대법원 판결문을 읽어보면 지금까지 한국인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어 나가기 위해 노력하면서 10위권의 경제대국을 이룩한 대한민국의 법관들이 썼다고 보기 어려운 판결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후 아시아 국제정치질서를 규정짓는 샌프란시스코조약과, 그를 바탕으로 한 한일 간 조약들과, 한일관계를 규정지어온 ‘1965년 체제’를 아무런 대안 없이 부정하는 도대체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들이 그 판결문에 담겨 있습니다. ‘극일(克日)'이라고 하는 것은 일본에 대한 복수심과 시기심을 의미하는 ‘르상티망(ressentiment)'에 바탕을 둔 반일 선동이 아니라 샌프란시스코조약을 인정하고 ‘1965년 체제’를 유지하는 현실주의적 사고와 외교정책과 판결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점을 우리 모두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와 관련하여 한 가지 더 지적되어야 할 것은 이 책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대법원이 3권분립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몽테스키외가 ‘법의 정신’에서 말한 분립은 영어로 말하자면 완전히 따로 떨어지는 separation이 아니고 기능적으로 편의상 3부를 구분하는 division입니다.

    입법부·행정부·사법부로 기능적으로 나누어지는 ‘3권분립’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집에서 피자를 주문했을 때 그 피자가 조각조각난 채 배달되어 오지 않는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됩니다. 배달되는 피자는 그 위에 살짝 금만 그어서 표시만 된 상태입니다. 입법·행정·사법이라고 하는 3권이 피자처럼 완전히 쪼가리가 난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헌정주의는 편의상 입법·행정·사법부가 다른 기능을 하면서 서로 견제와 균형을 이루면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이 3권분립을 완전히 따로 떨어진 피자 쪼가리처럼 생각하면서 행정부가 체결한 조약을 무시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행정부가 체결한 조약을 사법부가 무시

    대한민국의 입법·행정·사법부는 자유민주주의체제라고 하는 한 정치체의 일부라는 점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됩니다. 미국의 대법원은 행정부가 외국에 나가서 체결한 조약과 그 정신을 무시하는 판결은 내리지 않습니다. 외국 조약과 관련된 소송이 벌어지게 되면 미국 대법원은 행정부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관례입니다. 만약에 그것을 입법부 그리고 다른 쪽에서 문제를 제기한다고 해서 그쪽 손을 들어주면 사공들이 많아서 대외정책이 산으로 올라가면서 제대로 추진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1799년 존 마셜이 하원에서 이야기한 행정부가 다른 나라와의 조약을 집행하는 ‘유일 기관 원칙(sole organ principle)'을 유지하고 있고, 대통령의 권한은 조약을 넘어서서 전쟁 결정과 해외 군대 파견 영역까지 확대되어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 원칙을 제시한 존 마셜은 그 직후 대법원장에 임명되어 ‘위헌심사권’을 정립하고 미국 법원의 독립성을 확고히 한 인물입니다. 미국과 달리 일제 강제징용과 관련된 한국 대법원의 판결은 이런 원칙을 무시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이런 현상은 반일 종족주의적인 사고의 흐름이 우리 최고 법원에까지 스며 들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이 책을 대한민국 법관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 책은 실증주의적 차원에서도 사실을 끝까지 탐구해 나가면서 진리의 독점을 거부하고 진리를 사랑하고 추구해 나가는 빛나는 지성들의 연구열이 돋보이는 책입니다. 여러분들께서 이 책을 이론적 측면, 사실적이고 실증적인 측면을 동시에 고려하면서 읽으신다면 지금까지 나온 그 어떤 책들보다 더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글은 2019년 7월17일 <반일 종족주의> 북 콘서트에서 진행된 성신여대 김영호 교수의 논평을 보완한 것이다.)

    성신여대 김영호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