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5일 기소됐지만 아직 재판기일도 안 잡혀…법조계 "이례적" "정권 눈치 보기" 지적도
  • ▲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받는 김은경 전 환경부장관의 첫 재판이 기소된지 100일이 지났지만 아직 열리지 않고 있다. ⓒ박성원 기자
    ▲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받는 김은경 전 환경부장관의 첫 재판이 기소된지 100일이 지났지만 아직 열리지 않고 있다. ⓒ박성원 기자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받는 김은경 전 환경부장관이 기소된 지 100일이 넘었지만 재판은 시작조차 못하고 있다. 사법행정권 남용이나 김학의 ‘별장 성접대’ 사건 등 과거 정권을 겨냥한 사건들이 기소 30~40일 만에 재판을 시작한 것과 대조되는 모습이다.

    게다가 ‘윤석열 검찰’ 출범 이후 환경부 블랙리스트 수사를 맡았던 서울동부지검 검사들이 잇달아 사의를 밝히면서 수사·재판이 지지부진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양승태 기소 후 43일, 김학의 기소 후 32일 만에 첫 재판

    김은경 전 장관과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의 첫 공판준비기일이 6일 현재까지 잡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는 4월25일 김 전 장관과 신 전 비서관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은 형사합의25부에 배당된 이 사건의 첫 공판준비기일을 현재까지 정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공판준비기일은 향후 공판을 위해 검찰과 변호인이 쟁점을 정리하는 사전 절차다. 재판을 시작할 논의조차 하지 않은 셈이다.

    반면 ‘별장 성접대’ 의혹 당사자인 김학의(62·사법연수원 14기) 전 법무부차관의 첫 공판준비기일은 ‘김학의 수사단’이 김 전 차관을 기소(6월4일)한 지 32일 만인 7월5일 열렸다.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를 받는 양승태(70·2기) 전 대법원장 등도 기소(2월11일) 뒤 43일 만인 3월25일 첫 공판준비기일이 진행됐다. 이들은 모두 구속 피고인이었다.

    불구속 사건의 경우 ‘KT 채용비리’ 혐의를 받는 이석채 전 회장 사례를 들 수 있다. 이 전 회장의 첫 공판준비기일은 6월19일 열렸다. 5월9일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지 42일 만이다. 

    이런 사례를 감안하면 김 전 장관의 재판이 지지부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조계에서는 김 전 장관 등의 재판기일이 잡히지 않는 건 '이례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피고인이) 불구속된 경우 한 달 정도 (재판에 대한) 준비기간을 줄 것”이라면서 “구속사건인 경우는 이보다 더 빨리 (첫 재판이) 열린다”고 전했다. 다만 “재판부가 재판이 많은 경우에는 좀 늦게 잡히는 경우도 있으나 (김 전 장관이 기소된 뒤) 4개월간 재판을 시작조차 하지 않은 것은 이상하다”고 말했다.

    現정권 수사 부담에 의도적 재판 지연?

    일각에서는 재판부가 현 정권을 겨눈 사건에 부담을 느끼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내놓는다.
  • ▲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받고 기소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의 첫 공판준비기일이 아직 잡히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정상윤 기자
    ▲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받고 기소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의 첫 공판준비기일이 아직 잡히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정상윤 기자
    이헌 변호사는 “민사사건도 재판에 넘겨진 뒤 최소 두세 달 정도 지나면 첫 재판이 잡힌다”면서 “특히 (형사사건인) 이 사건은 현 정부의 전직 장관 사건이고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는 사안임에도 아직 기일조차 안 잡혔다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 변호사는 그러면서 “재판 지연이 ‘의도적인 것 아닌가’하는 합리적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며 “무엇보다 김 전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이해가 안 되는 이유로 기각됐다는 사실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른 법조계 관계자도 “재판은 판사 재량이라서 뭐라고 말하기에는 그렇지만, 늦어지고 있는 건 사실”이라며 “현 정권을 겨눈 재판이 부담스러운 것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불구속 사건은 좀 재판이 늦게 들어가기도 한다”면서도 “이번 건은 (현 정권을 상대로 한) 골치 아픈 사건이니 그랬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수사검사들 ‘줄사표’... 재판 더 지연될 듯

    이런 상황에서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수사한 서울동부지검 중간간부급 검사들이 잇달아 사표를 제출했다. 주진우(44·31기)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장검사는 1일 대구지검 안동지청장으로 인사가 나자 검찰 내부통신망 이프로스를 통해 사의를 전했다. 주 검사의 상관인 권순철(50·25기) 서울동부지검 차장검사도 한직인 서울고검 검사로 인사가 난 뒤 사의를 밝혔다. 윤석열(59·사법연수원 23기) 검찰총장 취임 뒤의 일이다.

    이헌 변호사는 “이 사건을 수사한 서울동부지검 검사장 이하 중간간부급 검사들도 그만두는 바람에 이 사건이 더욱 지연될 것 같다”고 우려했다.

    한편 김 전 장관은 2017년 7월~2018년 11월 환경부장관으로 재직할 당시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장관은 이 리스트를 통해 박근혜 전 정부에서 임명한 산하기관 임원들을 압박해 사표를 내도록 종용한 혐의를 받는다. 환경부 운영지원과는 김 전 장관의 지시를 받아 명단을 만들고, 임원들을 만나 사퇴를 권유한 것으로 검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