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기간 만료로 석방하면 유죄 판결에도 구속 못해… 보석은 취소하면 구속 가능”
  • ▲ 법원이 22일 오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구속기소된 양승태(70·사법연수원 2기) 전 대법원장에게 직권보석(職權保釋) 결정을 내렸다.ⓒ정상윤 기자
    ▲ 법원이 22일 오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구속기소된 양승태(70·사법연수원 2기) 전 대법원장에게 직권보석(職權保釋) 결정을 내렸다.ⓒ정상윤 기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구속기소된 양승태(70·사법연수원 2기) 전 대법원장에게 결국 법원이 직권보석(職權保釋) 결정을 내렸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자신의 재판에서 구속기간 만료 전 보석에 부정적 의견을 밝혀왔다.

    법조계 일각에선 양 전 대법원장(피고인)의 청구도 없는 상황에서 보석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 양 전 대법원장 재구속을 위한 포석이 아니냐고 봤다. 1심에서 구속기간 만료로 피고인이 석방될 경우엔 유죄 판결이 내려지더라도 피고인을 구속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보석의 경우 보석을 취소하면 구속이 가능하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제35형사부(박남천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지난 2월 11일 구속된 양 전 대법원장에게 직권보석을 결정한다고 밝혔다. 양 전 대법원장의 1심 구속기간 만료(8월 11일 0시) 전 석방시키겠다는 의미다.  

    재판부가 제시한 보석 조건에는 피고인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항목이 대부분이다. 자택 (경기 성남시) 주거지 제한, 사건관계인·친족 등과의 연락 금지, 3일 이상 여행·출국 시 법원 허가 필요 등이다. 이들 조건은 검찰이 지난 17일 재판에서 요구한 보석 조건 중 ‘피고인에 대한 관리·감독’ 등을 제외하고 대부분 수용한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구속기간 만료 전 보석 결정에 대해 양 전 대법원장이 운신할 수 있는 폭에 제한을 가하기 위함이라고 지적한다. 양 전 대법원장이 보석 청구를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직권보석에 반대해왔기 때문이다.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에 불리” 

    판사 출신의 여상원 변호사는 “1심 재판부가 구속기간 만료로 풀어줬는데 이후 유죄를 선고하게 되면 그 재판부에서는 피고인을 다시 구속시킬 수 없다”며 “검찰이 항소하고, 항소심 재판부가 구속영장을 발부할 때까지 이 피고인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반면 구속기간 만료 적 직권보석을 하고 나중에 유죄를 선고한 경우, 재판부가 ‘보석 취소’ 결정을 하면 그 피고인을 다시 구속시킬 수 있다”면서 “이를 토대로 추측해보면 1심 재판부가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해 유죄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 외에 ‘피고인 운신의 폭에 제한을 가하기 위한 결정’이라는 추측에 대해서도 “풀려나는데 (양 전 대법원장 측이) 굳이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냐,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서울 서초동의 양윤숙 변호사도 “보통 보석은 피고인이 청구해서 (법원이) 결정을 하는데, 양 전 대법원장 측이 원하지도 않았다는데 굳이 직권으로 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양 전 대법원장의) 운신의 폭을 제한하고 피고인의 방어권 등 보장측면에서 상당히 불합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 ▲ 양승태(70·사법연수원 2기) 전 대법원장의 구속 기간은 8월 11일 0시 만료된다.ⓒ뉴데일리 DB
    ▲ 양승태(70·사법연수원 2기) 전 대법원장의 구속 기간은 8월 11일 0시 만료된다.ⓒ뉴데일리 DB
    양 전 대법원장 측은 그간 재판에서 법률 규정상 구속 만료 혹은 구속 취소로 인한 석방이 타당하다는 의견을 전해왔다. 구속기간 만료가 얼마 남지 않아서다. 

    구속기간 만료 전 보석 사례는

    피고인이 법원의 보석을 거부하는 상황은 이례적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번에 보석을 먼저 청구하지도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부(정준영 부장판사)는 지난 3월 6일 이명박 전 대통령의 보석 청구를 받아들였다. 이 전 대통령은 건강상 이유로 재판부에 보석을 허가해 달라고 했다. 이 전 대통령의 구속기간 만료일은 4월 8일이었다. 당시 재판부는 △보석 보증금 10억원 △주거지 제한 △직계가족·변호인 외 통신·접견 제한 등의 조건을 걸었다.

    또 허현준 전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 행정관도 직권보석으로 풀려났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4월 20일 전국경제인연합회를 압박해 보수단체에 69억원 상당을 지원하게 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허 전 행정관의 보석 신청을 구속 만료 직전 받아들였다. 허 전 행정관의 구속기간은 지난해 5월 4일이었다. 이 경우는, 허 전 행정관이 보석을 먼저 신청했다. 

    허 전 행정관은 박근혜 정부 시절 전국경제인연합회를 상대로 보수단체에 총 68억원을 지원하도록 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강요 혐의로 징역 1년과 국가공무원법·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에 자격정지 1년을 선고하고 지난해 4월 법원의 보석 허가로 석방돼 재판을 받던 허 전 행정관을 다시 구속했다.

    한편 양 전 대법원장 측은 22일 오후 재판부의 직권보석 조건을 수용하기로 했다. 재판부는 지난 3월 5일 양 전 대법원장의 보석 요청을 기각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