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수 "오래 전 일" 진술 오락가락… 재판부 "김백준 진술 신빙성 의문"
  • ▲ 이명박 전 대통령. ⓒ정상윤 기자
    ▲ 이명박 전 대통령. ⓒ정상윤 기자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삼성 자금수수 혐의와 관련, 검찰의 공소 유지를 지탱해온 핵심 증인들의 진술증거가 무너지고 있다. 재판부가 실체적 진실을 밝히고자 미국과 국제 사법공조를 모색하면서 이 전 대통령 항소심 공판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인다.

    17일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 전 대통령의 항소심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은 최근 검찰이 공소장을 변경함에 따라 또 다시 진술을 번복했다. 이번이 두 번째 진술번복으로, 변호인과 재판부의 질문공세에 이 전 부회장은 "기억에 의존한 진술이 아니다"라고 실토했다.

    이학수, "김석한 찾아온 것 2008년 말" → "2007년 하반기"

    검찰은 삼성이 기존에 거래하던 미국 대형 로펌 에이킨검프((Akin Gump)를 통해 이 전 대통령에게 자금을 지원했다고 보고 수사에 착수했다. 수사 초기 검찰은 자금지원이 삼성전자 본사에서 2009년 3월부터 매월 12만5000달러씩 정액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봤다. 당시 이 전 부회장은 검찰에 출석해 2008년 말 또는 2009년 초 김석한 에이킨검프 변호사로부터 청와대의 자금지원 요청을 받고 부하직원을 통해 자금지원을 지시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수사가 진행되던 중 이재오 전 의원이 TBS 라디오와 인터뷰에서 "삼성이 에이킨검프에 월 12만5000달러를 송금한 것은 2007년 11월부터인데, 검찰은 그 중 2009년 3월 이후 금액만 잘라 뇌물로 보고 있다"며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검찰은 인터뷰 다음날부터 삼성 직원들을 다시 소환해 번복된 진술을 받아내고, 이 전 대통령의 삼성 자금 수수가 2007년 11월부터라고 결론 내렸다.

    이 전 부회장도 검찰에 재소환돼 "김석한 변호사가 청와대의 자금지원 요청을 전한 것은 2007년 하반기이며, 앞서 진술한 2008년 말 또는 2009년 초에는 자금지원을 멈추지 말고 계속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것"이라는 취지로 진술을 번복했다.

    이학수 "오래 전 일, 기억에 의존한 진술 아니다"

    이 같은 진술을 근거로 검찰은 이 전 대통령이 삼성으로부터 총 548만 달러(약 67억원)를 수수했다며 뇌물 혐의로 기소했다. 항소심 재판이 진행되던 지난 6월 검찰은 국민권익위로부터 에이킨검프가 삼성전자 미국법인(SEA)에 다스 소송비로 청구한 인보이스 사본 38건을 이첩 받았다.
  • ▲ 이학수 전 삼성 부회장. ⓒ정상윤 기자
    ▲ 이학수 전 삼성 부회장. ⓒ정상윤 기자

    검찰은 다시 공소장을 변경해 기존 이 전 대통령의 삼성 뇌물 혐의에 인보이스 금액 430만 달러(약 51억원)를 추가했다. 검찰의 추가 공소사실은 김석한 변호사가 자금지원 요청을 한 번 하여 처리해 줬다던 기존 이 전 부회장의 진술과 배치된다.

    그러자 이 전 부회장은 17일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김석한 변호사가 자금지원 요청을 두 번 했다"며 "처음은 (이 전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이고, 또 한 번은 대통령 취임 후"라고 진술을 번복했다. 진술 번복에 변호인과 재판부의 집요한 질문이 이어지자, 결국 이 전 부회장은 "기억은 없지만 관련자들이 그렇게 말했다고 해서 그랬나보다 한 것"이라는 요지의 답변을 이어가면서, 본인의 진술이 기억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토로했다.

    재판부 "김백준 검찰 진술 신빙성 의문"

    재판부는 또 다른 핵심 증인인 김백준 전 총무기획관에 대해서도 "다른 진술이나 증거와 차이가 있거나 확인해야 할 부분이 있고, 공소장 변경에 따라서 뇌물 증여 방법 등에 큰 차이가 생겼다"며 "피고인이 공소사실을 부인하는 상황에서 검찰은 김백준을 통해 입증을 하고 있기 때문에, 검찰이 김백준을 증인신청해 달라"고 요청했다.

    재판부의 요청은 김백준이 재판에 출석하지 않는 이상 김백준의 진술을 받아들이기 힘드니, 검찰이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증인신청을 하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로 인해 김 전 기획관 증인신청을 놓고 변호인과 검찰의 처지가 뒤바뀐 모양새다.

    한편 재판부는 이 전 대통령의 삼성 자금수수 협의와 관련해 미국과 국제 수사공조 방법에 대한 검찰과 변호인 측의 이견을 조율하면서, 의견을 제시할 것을 양측에 요구했다. 국제 수사공조로 갈 경우 답변이 오는 데 수 개월이 걸려 이 전 대통령의 항소심 재판은 해를 넘길 가능성이 크다.

    이에 검찰이 국제 사법공조 이외에 국내에서 혐의를 입증할 방법을 모색 중이라며 재판부에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다. 재판부는 다음달 23일로 재판기일을 새로 잡고, 검찰이 추가로 제출한 증거의 진정성을 따져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