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중국압송악법 파동의 현재와 내막⑥홍콩 전역에 사회불안 확산, 죽창과 덫 등장
  • ▲ 시위에 등장한 방어용 죽창ⓒ허동혁
    ▲ 시위에 등장한 방어용 죽창ⓒ허동혁
    홍콩에서 중국으로 범죄용의자 송환을 가능하게 하는 ‘도주범 조례’(일명 중국압송악법) 파동 관련 지난 주말 홍콩 접경지대 셩슈이(上水)와 중부 샤틴(沙田)에서 잇달아 시위행진이 열렸다.

    주최 측 추산으로 셩슈이 시위에는 3만 명, 샤틴에는 11만 5000여 명이 참가했다. 셩슈이와 샤틴이 포함된 뉴 테리토리(新界) 지역 시위에서 10만 명 이상이 모인 건 유례가 없는 일이다. 샤틴 시위에서는 방어용 죽창과 덫이 등장했으며, 쇼핑몰 내에서 시위대가 경찰을 구타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주말동안 최소 43명이 부상(경찰 2명 중태) 당하고, 39명이 체포됐다. 이렇게 시위대가 점점 과격해지는 이유는 정부의 고압적인 태도와 그에 따른 경찰의 과잉진압 때문이다.

    필자가 지금까지 관찰한 바로는 경찰이 다소 공격적이다. 경찰은 공격 의사가 전혀 없는 시위대에게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고, 시위대가 순응하지 않을 경우 최루 스프레이를 먼저 뿌리는 패턴이 대부분이다. 시위 중재에 나선 민주파 의원들에게 고함을 지르며 방패로 밀어붙이며, 의원의 이마를 곤봉으로 치는 일도 있었다.

    이에 대한 불만으로 지난주부터 각지에서 크고 작은 소동과 폭행 사건이 벌어지며 사회불안이 홍콩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14일 오전에는 기자 1000여 명이 정부와 경찰의 부당압력과 폭력에 항의해 경찰총부에서 행정장관 집무실까지 행진을 벌였으며, 앞으로도 2주간 최소 6건의 시위가 홍콩 도심과 교외에서 계획돼 있다.

    그러나 홍콩정부는 중국을 믿고 체제 유지에 자신감을 보이며 민주파와 시위대에게 전혀 양보를 안 하고 있다. 홍콩 기본법(헌법)에 의하면 홍콩의 경찰력으로 치안유지가 불가능한 상황이 올 경우 중국군 투입이 가능해 진다.

    그러나 캐리 람 행정장관이 심적으로 흔들린다는 정보도 있다. 실제로 <파이낸셜 타임즈>는 14일 밤 소식통을 통해 람 장관이 중국 정부에 사임의사를 수차례 밝혔지만, 중국은 ‘결자해지 하라’며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홍콩 행정장관직은 중국의 허락 없이 취임은 물론 사임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 ▲ 14일 홍콩 샤틴 시위행진 장면. 11만 5천명 (주최측 추산)이 참가했다.ⓒ허동혁
    ▲ 14일 홍콩 샤틴 시위행진 장면. 11만 5천명 (주최측 추산)이 참가했다.ⓒ허동혁
    지난 주말 시위가 벌어진 셩슈이와 샤틴은 평소 중국인 보따리 장사꾼들로 넘쳐나는 지역이며, 시위대의 타겟은 이 중국인들이었다. 중국 심천과 10분 거리인 셩슈이는 중국인지 홍콩인지 분간이 안갈 정도이며, 중국인들이 홍콩의 물가를 상승시키고 도시미관을 해친다 하여 불만이 제기돼 왔다. 특히 과거 중국 멜라닌 분유 파동에서 기인한 분유 사재기 문제가 심각하다.

    ‘광복 셩슈이’(光復上水, 셩슈이의 본 모습을 되찾자)로 명명된 셩슈이 시위에서 시민들은 ‘중국인은 국산품을 애용하라’ ‘중국인은 중국 분유를 먹어라’고 외치며 중국인들의 사재기 행위 중단을 요구했다.

    시위는 처음에는 평화적으로 진행됐지만, 시위대가 중국인 폭력배로 보이는 인물과 언쟁을 벌이다가 경찰과의 무력충돌로 발전했다. 이때 한 시위자가 경찰에 쫓기던 중 육교 밑으로 추락할 뻔한 상황도 벌어졌다.

    시위대는 그 후 보따리 장사꾼들이 이용하는 상점에 물건을 집어 던지거나 낙서를 하고 상점 간판을 떼어냈으며, 중국은행(Bank of China) 건물에도 ‘대륙으로 돌아가라’는 낙서를 그렸다.

    샤틴 행진에서 시위대의 목표는 샤틴 정부청사 건물이었지만, 샤틴 중심부 네거리에서 갑자기 행진을 멈추고 방어선을 구축했다. 이후 경찰이 주변 골목길을 봉쇄하고 시위대를 쇼핑몰 내로 밀어붙였지만, 거꾸로 일부 경찰이 쇼핑몰 안에서 시위대에게 포위당해 우산 등으로 구타당했다. 경찰은 쇼핑몰 측으로부터 진입 허가를 받지 않은 상태였다.

    시위대의 시위 방식은 점점 진화하고 있다. 이들은 시위 중재에 나서는 민주파 의원들과 기자들을 방패로 활용한다. 방어선 구축에 필수품이 된 철제 도로 난간을 이제는 쉽게 떼어내며, 사전 약속한 수신호로 충돌 발생 시 신속하게 물자를 조달한다.

  • ▲ 미국 성조기를 들고 14일 샤틴 행진에 참가한 홍콩시민ⓒ허동혁
    ▲ 미국 성조기를 들고 14일 샤틴 행진에 참가한 홍콩시민ⓒ허동혁
    필자는 시위 취재 도중 한 시위대로부터 ‘기자와 함께 있으면 경찰이 우리를 추격하지 않으니 같이 따라다녀 달라’는 부탁을 받기도 했다.

    경찰은 무관용으로 일관하고 있다. 스테픈 로(盧偉聰) 경무처장(경찰청장)은 샤틴 쇼핑몰의 경찰 구타사건 직후인 15일 새벽 2시 기자회견을 갖고 “경찰 중에 중상자가 생겼다. 관련자들을 끝까지 추적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 전직 정부 관리는 지난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정부와 시민 모두 관철 요구선을 포기하고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호소했지만, 양쪽 모두 이런 호소에 귀를 기울이는 움직임은 없다. 정부는 중국압송악법 파동의 3대 요소인 시민 시위대, 민주파 의원, 그리고 외세를 비난만 하고 있다.

    그러나 시민들은 그 외세가 홍콩의 기본가치라고 생각하고 있다. 요즘 시위에는 항영기(港英旗, 영국령 홍콩기), 영국 유니언 잭과 함께 미국 성조기를 든 시민이 부쩍 늘어났다. 성조기를 들고 샤틴 행진에 참가한 한 시민은 필자에게 “홍콩과 미국은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기 때문에 성조기를 가져 나왔다. 2014년 우산시위 실패 이유는 정부의 설득을 믿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캐나다 <글로브 앤드 메일>지는 이런 현상에 대해 “홍콩이 다른 일부 영연방 국가와 같이 식민지 시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전무하고, 식민지 시절 누렸던 자유가 현 홍콩 정부에 의해 침식당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