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중국압송악법 파동의 현재와 내막 ⑤도심에서만 벌어져 온 시위, 부도심으로 번지는 중
  • 홍콩에서 중국으로 범죄용의자 송환을 가능하게 하는 ‘도주범 조례’(일명 중국압송악법) 파동이 부도심으로 번지고 있다. 지난주까지는 관공서가 몰려있는 홍콩 아일랜드의 애드미럴티에서 주로 시위가 벌어졌지만, 지난 6일부터 부도심과 베드 타운에서도 열리기 시작했다.

    7월 1일 시위대의 입법회 일시점거로 과격화 우려도 있었지만, 필자가 홍콩 시민과 기자들을 탐문한 결과 대세는 “입법회 점거의 주원인은 정부”로 흐르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자살자에 대한 대책만 발표했을 뿐 여전히 고압적인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7일 카우룬(九龍) 지역에서 열린 행진에는 주최 측 추산 23만 명이 참가했다. 카우룬에서 이런 규모의 시위 행진은 유례가 없었다. 참가자들은 중국압송악법 완전철회, 입법회 해산 및 행정장관, 입법회 양대 선거 완전직선제 실시를 외쳤다. 참가자들은 페닌슐라 호텔 앞에서 중국행 고속철 역사인 웨스트 카우룬까지 평화적으로 행진했다. 예전보다 많은 영국 유니언 잭과 영국령 홍콩기(일명 항영기 港英旗) 그리고 미국 성조기가 곳곳에 보였다.

    지난 3일 카우룬 행진계획이 발표되면서 시위대의 웨스트 카우룬 역사 점거 시도가 점쳐졌다. 웨스트 카우룬 역에는 중국 출입국 심사대가 설치돼 있다. 이번 파동의 사실상 전달자 역할을 맡고 있는 텔레그램 메신저에는 역사 내부 도면과 고속철을 이용하는 중국인들에게 돌릴 전단 이미지가 올라왔다. 이에 당국은 7일 웨스트 카우룬 역을 오가는 고속철 편수를 대폭 줄이고, 한곳을 제외한 출입구를 당일 모두 봉쇄하는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그러나 시위대는 이번에도 중국압송악법 파동의 특징인 ‘기습공격 룰’을 따랐다. 시위대가 노린 곳은 웨스트 카우룬 역이 아닌 저가 쇼핑타운 몽콕이었다. 4시부터 시작된 시가행진이 8시쯤 마무리 된 뒤 학생 중심 시위대는 주변 도로를 봉쇄하며 카우룬 북부 몽콕으로 향했다.
  • ▲ 7월 6일 홍콩 북서부 튠문에서 벌어진 풍기문란 항의시위 안내 (위) 와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공원을 탈출하는 중국 중년 여성 댄서 (아래)ⓒ허동혁
    ▲ 7월 6일 홍콩 북서부 튠문에서 벌어진 풍기문란 항의시위 안내 (위) 와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공원을 탈출하는 중국 중년 여성 댄서 (아래)ⓒ허동혁
    몽콕은 홍콩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으며, 부랑자들이 많아 쉽게 시위가 벌어질 수 있는 환경을 갖고 있다. 또한 2016년 경찰이 불법 어묵 포장마차를 단속하다가 폭력사태로 번진 ‘몽콕 어묵시위’가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시위대는 순식간에 몽콕 대로변을 점거했지만, 밤 10시쯤 경찰이 출동했다. 경찰이 중재에 나선 민주파 의원들을 방패로 밀어붙이고, 5명을 체포하는 소동이 있었지만, 최루탄 사용은 없었다. 시위대는 8일 오전 1시 30분경 자진 해산했다.

    한편 카우룬 행진 전날인 6일 홍콩 북서부의 베드타운 튠문(屯門)에서는 주최 측 추산 약 1만 명이 참가한 행진이 있었다. 튠문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몰린 것은 사상 처음이다. 시위 이유는 튠문 공원에서 최근 문제가 된 풍기문란 공연에 대한 항의였지만, 사실상 반중 시위였다.

    중국 심천과 다리 하나로 맞닿아 있는 튠문 공원에서 최근 중국 중년 여성들이 남성 노인들과 같이 춤과 노래를 부르며 돈을 받는, 홍콩판 ‘박카스 아줌마’가 사회문제화 돼 왔다. 시위 정보를 모르고 공원에 나온 일부 중년 여성들은 시위대에게 봉변을 당했으며, 한 여성은 시위대가 포위하는 바람에 섭씨 30도가 넘는 공원 화장실에 두 시간 동안 숨어 있다가 경찰에 의해 구출되는 촌극을 빚었다.

    그런데 시위대 대부분은 이전 중국압송악법 파동 시위 참가자들이었다. 이들은 행진이 끝난 오후 6시경부터 튠문역과 근처 경찰서 주변 도로를 봉쇄했다. 이 역시 예상 밖이었다. 그 후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다가 밤 11시경 민주파 의원들의 설득으로 해산했다.
  • 중국압송악법 파동이 매주 신기록을 세우며 부도심으로 번져가고 있는 주된 이유는, 정부가 계속해서 고압적인 자세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캐리 람 행정장관은 계속 두문불출이고, 친중파 의원들은 입법회 점거가 민주파 책임이라며 민심과 동떨어진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이에 튠문 공원 풍기문란 항의시위 같이 평소에는 수백 명 참가에 그칠 시위가 현재는 중국과 관련된 사안이라면 최소 만 명 단위로 커지는 폭발력을 내고 있다. 텔레그램에는 벌써 다음 주 다른 부도심에서의 시위계획이 나돌고 있다.

    홍콩 정부와 중국이 시위대를 비난할 때 항상 거론하는 ‘외세’의 압력도 점점 커지고 있다. 지난 2일 영국 헬렌 굿맨 하원의원은 의회 연설에서 홍콩 경찰에 근무하는 영국 국적 고위 인사들을 최루탄 사용과 불법 시위 진압 혐의로 수사할 것을 촉구했다. 미국 마르코 루비오 공화당 상원의원은 미국 독립기념일인 7월 4일 트위터를 통해 캐리 람 행정장관을 향해 “홍콩의 일국양제가 2047년(일국양제가 보장된 해) 이전에 사라질 수 있음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