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중국압송악법 파동의 현재와 내막 ④민의 무시해온 입법회, 드디어 점령당하다
  • ▲ 입법회 앞마당에 중국 오성홍기 대신 내걸린 홍콩흑기(黑旗)ⓒ허동혁
    ▲ 입법회 앞마당에 중국 오성홍기 대신 내걸린 홍콩흑기(黑旗)ⓒ허동혁
    7월 1일 홍콩에서 도주범 조례(일명 중국압송악법)에 반대하는 학생 주도 시위대가 경찰의 저지를 뚫고 입법회(국회)를 일시 점거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은 캐리 람 행정장관의 고압적인 정국운영과, 유리한 선거제도를 이용해 다수당을 차지한 친중파가 민의를 무시하고 중국 관련 법안을 마구잡이로 통과시켜 온 것에 홍콩 시민들이 분노했기 때문이다.

    원래 이날은 연례행사인 홍콩 반환 기념일 국기 게양식과 시가행진이 계획돼 있었다. 그러나 6월 30일 밤부터 홍콩 입법회에 시위대가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이들의 목표는 처음엔 캐리 람 행정장관이 참석하는 국기게양식을 방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시위대는 국기 게양식장인 홍콩 전람회장 주변 도로를 봉쇄했고, 1일 오전 7시 일부 경찰이 시위대에게 최루액을 뿌리는 작은 충돌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중국압송악법 파동의 특징은 예고와 다른 불시공격이다. 국기게양식은 예년과 달리 학생 대표를 배제한 채 실내에서 실시됐다. 그러나 식장에서 람 행정장관이 샴페인으로 건배하는 장면이 방송된 것이 시민들의 분노를 증폭시켰다.

    시위대는 오전 10시경 경계가 비교적 느슨한 입법회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시위대는 직원들이 황급히 출입문을 걸어 잠근 입법회의 유리창을 깨기 시작했다.

    민주파 의원들이 울면서 시위대의 행동을 막았지만 이들은 곧 쫓겨났다. 시위대가 수레차를 동원해서 파손을 시도했지만 2중 강화유리로 된 유리창은 쉽게 깨지지 않았다. 그러나 시위대의 행동은 계산된 것이었다. 이날 민주파 측의 시가행진 선발대가 오후 3시 30분경 입법회에 도착하기 시작해, 최소한 십수 만의 원군을 얻을 수 있었다.

    시가행진에는 주최 측 발표로 55만 명이 참가했다. 입법회 내부에 남아있던 소수의 경찰들은 계속해서 해산하라고 경고했지만, 중국압송악법에 반대하는 행진 인파가 계속해서 입법회에 몰려들자 강경 진압을 시도하지 않았다. 경찰은 지난 시위에서의 과잉진압 비난 부담이 있었다.
  • ▲ 입법회를 점거한 시위대ⓒ허동혁
    ▲ 입법회를 점거한 시위대ⓒ허동혁
    오후 4시경 유리창이 깨졌다. 경찰은 방패로 깨진 구멍을 막으며 방어했다. 시위대는 다른 유리창을 계속 깼다. 오후 6시가 지나자 많은 시위대가 내부로 진입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입법회 건물 유리창 안쪽은 셔텨로 막혀 있었지만 쉽게 파괴됐다. 오후 8시경 시위대는 파괴된 셔터 아래로 정체불명의 자극성 연기를 피웠고, 경찰들은 최루탄을 쏘지 않고 모두 철수했다.

    입법회로 진입한 시위대는 내부 기물을 파손하거나 곳곳에 낙서를 하며 환호했다. 벽에 걸린 역대 친중 입법회 주석(국회의장)의 사진들은 모두 파손됐지만, 영국 식민지 시절 주석들의 사진에는 손대지 않았다. 서류 캐비넷도 파손됐다. 그러나 외국에서 받은 선물 진열대와 식당 안 냉장고에는 ‘우리는 도적이 아니다’란 낙서가 적혔고, 전혀 도난 파손당하지 않았다.

    오후 9시 30분경 시위대는 입법회 본 회의장에 진입했다. 홍콩 정부 휘장은 훼손되고 영국 식민지 깃발이 단상에 걸렸다. 영국 유니언 잭을 흔드는 시위대도 있었다. 본 회의장 안에 있던 홍콩 기본법(헌법) 책자는 모두 찢어졌다.

    이후 많은 시위대가 본 회의장에 들어와 철야농성을 준비를 했다. 민주파 페르난도 청(張超雄) 의원은 아수라장이 된 본 회의장에서 필자에게 “정부가 계속 민의를 무시하고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하는 무리수를 둔 것이 원인이 돼 일부 시민의 지지 하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 향후 검거 선풍이 걱정”이라며 우려했다.

    자정이 지나자 경찰이 입법회에 재진입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에 시위대는 입법회에 들여온 물자를 포기하고 재빨리 철수하기 시작했다. 경찰은 최루탄을 쏘며 입법회 외곽 도로를 막고 있던 시위대를 해산시켰고, 시위대는 경찰에게 저항하지 않고 그대로 귀가했다.
  • ▲ 시위대가 점거한 입법회 본회의실 의장석. 왼쪽 두번째 사진 인물이 캐리 람 행정장ⓒ허동혁
    ▲ 시위대가 점거한 입법회 본회의실 의장석. 왼쪽 두번째 사진 인물이 캐리 람 행정장ⓒ허동혁
    이번 사태의 또 하나의 특징은 리더없이 텔레그램을 이용해 조직화한 점과 신속한 행동, 장기간 점거를 시도하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입법회 내부에서 시위대는 물자 조달을 위해 수백 미터의 인간 띠가 형성됐다. 민주파 클라우디아 모(毛孟靜) 의원은 이에 대해 “보이·걸 스카우트 회원들이 돕고 있다”며, “홍콩을 난세(亂世)로 만든 람 행정장관은 징역 10년 감이다. 공산당을 맹목적으로 추종한 결과가 지금 목격하는 모습”이라고 주장했다.

    오전 1시경 입법회를 다시 장악한 경찰은 기자들의 입법회 출입을 막지 않았다. 곳곳에는 파손된 물품과 물병 등 시위대가 놔둔 물자들 그리고 반중 구호 낙서가 즐비했다. 입법회 외부에서 만난 민주파 테드 후이(許智峯) 의원은 “입법회가 이런 상태인데다 7월 중순부터 여름 휴회기간이라 당분간 입법회 회의가 열리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태가 진정된 후 람 행정장관은 2일 오전 2시경 갑자기 기자들에게 회견을 예고했다. 람 행정장관은 오전 4시 경찰총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지금까지 계속 입장을 설명해 왔는데, 이런 지경에 이른 것에 대해 비애를 느낀다. 홍콩법을 준수하여 하루빨리 정상으로 되돌아갔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그는 시위대를 강하게 비난하지 않았지만, 요구 사항인 중국압송악법 철회, 사퇴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람 행정장관은 “치세(治世)를 난세로 만든 책임에 대해 말해달라”는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번 사태의 특징인 ‘불시공격’을 따라하듯 홍콩시간 2일 오전 6시경 “홍콩 입법회 사태는 매우 슬프지만, 불행하게도 민주주의를 좋아하지 않는 일부 정부가 존재한다. 홍콩 시위대는 민주주의를 갈망하고 있으며 모든 사람은 민주주의를 원한다”며 시위대를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 그는 지난주 열린 일본 오사카 G20회의에서도 중국 시진핑 주석에게는 홍콩 관련 언급을 하지 않았다.

    사태는 끝이 안 보인다. 시위대는 2일 오전 8시 무렵 “홍콩 정부는 민의를 무시하고 있다. 우리는 다시 홍콩 입법회를 점령하겠다”고 선언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