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범죄인 인도 내세워 반중인사 탄압할 목적… 홍콩 지킨다" 17일엔 총파업 예고
  • 사법제도 후진국인 중국으로 홍콩 범죄인 인도를 가능하게 하고, 탈북자를 북한으로 송환할 수 있는 ‘범죄인 인도 법안(도주범조례)'에 홍콩 시민들이 크게 분노하고 있다. 지난 9일, 무려 103만 명의 홍콩 시민이 시가행진에 참가한 데 이어 12일에는 입법회 주변에서 시위대와 경찰 간 무력충돌이 벌어졌다.

    시민들은 홍콩 입법회로 통하는 모든 도로를 점거했다. 이로써 친중파 의원들의 입법회 진입이 막혀, 이날 ‘도주범조례’ 2차 심의 직권상정을 위한 본회의는 열리지 않았다. 입법회 비서처(사무처)는 13일에 이어 14일에도 휴회를 통보했다.

    그러나 홍콩 정부는 전혀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중국 정부와 언론도 홍콩 정부의 조치를 지지하는 성명을 내놓았다. 중국의 한 방송은 홍콩에서 시위대의 시가행진이 있기 전날인 지난 8일 홍콩과 가까운 심천에서 인민해방군이 시위진압 훈련을 하는 장면을 방영했다. 또한 대만 넥스트TV는 13일 심천 국경 인근에 대량의 중국 시위진압 경찰 차량이 주차돼 있는 모습을 방영했다.

    민주파 진영은 오는 16일 시가행진과 17일 총파업을 예고했다. 시민들은 16일 오후 2시30분, 일제히 '홍콩의 사망'을 상징하는 검은 옷을 입고 빅토리아공원~정부청사까지 행진하며 "홍콩의 사법자유"를 외칠 계획이다. 

    홍콩 자치 보장하겠다더니... 중국, 대놓고 정치간섭

    중국은 홍콩의 입법·사법·행정 자치권을 고도로 보장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노골적으로 홍콩의 내정에 간섭해왔다. 지난해에는 홍콩 독립을 주장하는 민족당을 강제로 해산시켰고, 홍콩 독립을 지지하는 야권 후보의 피선거권을 박탈하기도 했다. 시민들은 "중국이 겉으로는 '범죄인 인도'를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중국을 비판하는 홍콩 인사들을 탄압할 목적으로 이번 법안을 요구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 ▲ 13일 오후 입법회 안에서 휴식을 취하는 홍콩경찰. ⓒ허동혁
    ▲ 13일 오후 입법회 안에서 휴식을 취하는 홍콩경찰. ⓒ허동혁
    12일 오후 발생한 무력충돌에서는 시민 79명, 경찰 22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후 경찰은 시위대를 멀리 밀어냈지만 주변 도로는 밤늦도록 폐쇄됐다. 13일 저녁 현재는 입법회 주변 도로만 폐쇄된 상태다. 

    13일 입법회 내부는 평온했고, 대부분의 민주파 의원들이 입법회에 나타났다. 하지만 친중파 의원들은 서너 명 밖에 나오지 않았다. 100명 이상의 경찰들이 입법회 1층 곳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입법회가 있는 애드미럴티 주변 도로는 지금도 시위에 쓰인 우산과 헬멧 등 쓰레기가 어지럽게 널린 채 방치돼 있다. 애드미럴티 지하철역은 폐쇄됐으며, 주변 상점은 모두 휴업했다.

    입법회로 통하는 육교는 경찰이 봉쇄했으며 입법회 출입증을 가진 사람만 통로를 지나갈 수 있다. 봉쇄된 지점에서 시민들은 경찰의 무력진압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었으며, 멀지 않은 지점에는 단식농성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또한 일부 시민들이 애드미럴티 지하철역 폐쇄에 항의하여 지하철 출입문을 못 닫게 하면서 운행을 방해하는 일도 있었다. 현재 많은 시위 단체들이 텔레그램 메신저에 그룹 채팅방을 개설하여 소식을 전하고 있으며, 시내 쇼핑가인 몽콕을 점령하자는 주장이 호응을 얻어가는 중이다.
  • ▲ 시위가 중단된 13일 오후 입법회 앞 도로 모습 ⓒ허동혁
    ▲ 시위가 중단된 13일 오후 입법회 앞 도로 모습 ⓒ허동혁
    텔레그램에는 하루 수천 개의 시위 관련 정보가 쏟아져, 홍콩 정치인과 기자들 사이에서는 지난주부터 텔레그램 가입 열풍이 불었다. 텔레그램 매신저가 디도스 공격을 받는 일도 일어났는데, 텔레그램 CEO 파벨 두로브는 트위터에서 디도스 공격에 쓰인 IP 대부분이 중국이라고 밝혔다.

    100만 명이 넘는 행진과 무력충돌로 지금까지 얻어낸 양보는 평소 철혈여인 이미지를 지켜온 캐리 람 행정장관의 눈물뿐이다. 무력충돌이 벌어지던 시각 람 행정장관은 공관에서 홍콩 TVB 방송과 단독 인터뷰를 가졌는데, 전날 기자회견에 비해 얼굴이 빨갛게 부어오른 모습이었다.

    그는 대담에서 “나는 항상 시민을 위해 일해왔다. 홍콩을 팔아치운 적이 없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입법회 기자실에서 이 대담을 지켜보던 대부분의 기자들은 헛웃음을 지으며 못 믿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기자들은 대부분 이번 파동에 대한 정부 조치에 비판적이다. 13일 오후 열린 경무처장(경찰청장) 기자회견에는 많은 기자들이 항의의 표시로 헬멧과 고글 그리고 형광조끼를 착용했으며, 방독면을 착용한 기자도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입법회 기자실의 기자들은 경무처장이 시위대를 비난할 때마다 야유를 보냈다. 한편 경무처장은 기자회견에서 2014년 우산시위 때의 2배에 해당하는 최루탄 150발, 고무탄 20발이 사용됐다고 밝히며,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