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옷 입은 사람들 물결, 홍콩 입법회로… 홍콩 당국 "27일까지 조례 심의 마무리"
  • ▲ 9일 저녁 8시 현재 행진모습. ⓒ허동혁
    ▲ 9일 저녁 8시 현재 행진모습. ⓒ허동혁
    지난 9일 홍콩에서 중국에 범죄 용의자를 송환하는 ‘도주범 조례’ 반대 행진에 103만 명이 참가했다(경찰추산 24만 명). 이는 1997년 홍콩반환 이후 최다 시위 참가자 수이며, 1989년 천안문 사태 때 홍콩에서 벌어진 지지 시위에 150만 명이 모였었다. 2014년 우산시위 때보다도 많이 모였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향후 한국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필자는 행사가 시작되고 한 시간 후인 오후 4시부터 행진을 내내 시내 빌딩 옥상에서 관찰했다. 흰옷을 입은 인파의 물줄기가 서서히 동에서 서로 움직이고 있었다. 시민들은 행진 주최 측의 안내에 따라 더운 날씨에 대비하기 위해 모두 흰옷을 입고 나왔다. 멀리 있는 빌딩 벽에 걸린 친중파 언론사의 대형 스크린에 캐리 람 행정장관이 나올 때마다 야유 소리가 홍콩의 마천루를 헤치고 메아리처럼 울려왔다.

    이 인파는 어두워져도 그치질 않았다. 홍콩의 백만 불짜리 야경과 어우러진, 다시는 못 볼 지도 모를 이 흰 물결은 입법회를 향해 유유히 흘러갔다.

    밤 9시가 돼서야 인파가 적어지기 시작했다. 이때 필자는 도로로 내려와서 행진 종착지인 애드미럴티의 입법회까지 걸어갔다. 민주파 의원들이 간격마다 곳곳에서 시민들을 격려하고 있었고, 수많은 서양인들이 보였다. 행진도로 곁의 바에서는 손님들이 한손에 맥주, 한손에 ‘No Extradition Bill(도주범 조례 반대)’ 피켓을 들고 응원하고 있었다. 바에 있던 한 싱가포르 여행객은 필자에게 “어제 홍콩으로 여행 와서 사정을 듣게 됐다. 듣는 순간 악법이라고 느껴 반대 피켓을 들게 됐다”고 말했다.
  • ▲ 103만명이 모인 9일 시가행진에 등장한 포스터. ⓒ허동혁
    ▲ 103만명이 모인 9일 시가행진에 등장한 포스터. ⓒ허동혁
    행진은 길가의 쓰레기통에 쓰레기가 넘쳐난 것을 제외하고는 내내 평화적으로 진행됐다. 그런데 끝날 무렵인 밤10시경 행진 종착지점인 홍콩 입법회 부근 도로에서 경찰이 2014년 우산시위 주역 조슈아 웡(黃之鋒, 현재 수감 중)이 소속된 데모시스토(香港衆志) 당원으로 보이는 남녀 학생들에게 최루액을 분사한 일이 일어났다. 이에 격분한 학생들이 입법회 앞에서 철제난간을 던지며 경찰과 충돌했다. 다음날 아침 6시까지 양측 간 대치가 계속됐으며, 19명이 체포됐다.

    홍콩 시내는 11일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11일과 오늘 오전 11시 캐리 람 행정장관이 잇달아 기자회견을 열어 시민들의 요구를 거부하면서 민주파 진영은 들끓기 시작했다.

    12일 람 행정장관이 홍콩 입법회에서 법안에 대해 설명한 후 법안은 2차 심의에 들어간다. 홍콩 입법회는 상정법안을 3회 심의해야 한다. 1차 심의는 민주파 의원들의 지연작전으로 심의 위원장을 선출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입법회 주석(의장)은 2차 직권상정을 예고했다. 이는 입법회법 상 가능하지만 전례가 없던 일이다.

    국내 일부 언론에서 12일 표결에 부친다고 보도됐지만, 이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27일까지 3차 심의 및 표결을 모두 마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 ▲ 필자와 인터뷰 후 의원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한 친중파 마이클 티엔 (田北辰) 의원. 도주범 조례에 반대하고 있다. ⓒ허동혁
    ▲ 필자와 인터뷰 후 의원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한 친중파 마이클 티엔 (田北辰) 의원. 도주범 조례에 반대하고 있다. ⓒ허동혁
    민주파 의원들은 12일 본회의가 시작되기 한 시간 전인 10시부터 입법회에서 시위를 예고했다. 그리고 참가를 독려하기 위해 시민들에게 12일 하루 간 자율파업과 휴교에 들어가 줄 것을 호소했다. 입법회 비서처(사무처)는 현재 주변의 경비태세를 강화하고 있다. 오늘 오후 6시부터는 입법회에 들어가는 모든 인원은 방청객과 마찬가지로 소지품 검색을 받아야 한다.

    정부는 강경태도를 유지하고 있지만 친중파 의원들 일부에서는 법안 강행통과에 부정적인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친중파 내 법안 반대의원인 마이클 티엔 (田北辰) 의원은 필자와 지난주 가진 인터뷰에서 “나는 홍콩인이자 중국인이다. 그러나 중국의 법체계가 엉성하다는 것은 홍콩에서는 상식이다. 법안 심의를 하더라도 모든 것을 다 따져서 내년에 해야 한다”고 법안반대 이유를 밝혔다.

    2003년 국가안전법 파동 당시 법안을 반대했던 친중파 계열 자유당은, 이번에는 미지근하게 찬성을 해 왔다. 그러나 오늘 자유당 주석 펠릭스 청(鍾國斌) 의원은 라디오 프로에서 “법안을 통과 시키더라도 시행을 보류해 줄 것을 정부에 요청한다”고 언급했다.

    홍콩 내외 많은 언론들은 이번 법안파동이 시진핑 주석의 강경 성향과 관련 있다고 보고 있다. 홍콩 반환 이후 이번 포함 4번의 정치파동에서 2003년 국가안전법, 2012년 애국교육법은 모두 민주파와 시민들의 반대로 철회됐는데, 이때는 후진타오 시절이었다. 그러나 실패로 끝났던 2014년 우산시위(행정장관 직선제 요구)는 현 시진핑 주석 집권기에 일어났다. 언론들은 이번에도 시진핑 주석이 쉽게 물러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