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42만명' 최대 직능단체… 이해찬 '비공개' 전환 후 거절
  • ▲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종현 기자
    ▲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종현 기자
    "우리를 앞세워서 필요할 땐 부르고, 그렇지 않을 땐 나 몰라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 내년 4·13 총선 때 비례대표를 꼭 주셔야 한다."

    제갈창균 한국외식업중앙회장이 28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간담회에서 꺼낸 하소연이다. 하지만 이 대표는 다음날인 29일 국회에서 "정책간담회에서 정치적인 얘기를 하는 것은 매우 적절하지 않았던 것 같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공천에서 중립을 지켜야 할 이 대표가 이익단체의 어려운 요구에 원론적 견해를 밝힌 것이지만, 총선을 앞두고 지지층의 은혜를 외면하고 '토사구팽'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당 확대간부회의에서 당직자들에게 "앞으로 정책투어를 하거나 정책간담회를 할 때 사전에 상대방과 잘 협의해 정책간담회에서 정치적 주장이 나오지 않도록 준비를 잘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이같이 말했다. 자신의 당혹한 상황이 생중계되는 모습을 사전에 방지해야겠다는 다짐이 확고히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민주당은 전날 제갈 회장 등 외식업중앙회 관계자들과 정책간담회를 가졌다. 제갈 회장은 언론에 공개되는 이 자리에서 과거 선거 때 자신들이 민주당을 도운 사례들을 거론하며 외식업계 몫으로 비례대표 자리를 요구했다. 이에 이 대표는 아무런 답을 하지 않은 채 당황한 표정과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간담회가 비공개로 전환되고 나서야 이 대표는 거절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진성당원 20만 명 만들어주고, 지지성명도 냈다"

    전남 출신으로 대전에서 예식장과 음식점을 경영한 제갈 회장은 이날 과거부터 지방선거와 총선, 대선 때 민주당을 도왔는데도 비례대표 의석을 배정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제갈 회장은 "지난번 대선 때 20만 진성당원을 만들어서 국회에서 (문재인 후보) 기자회견도 하고 5대 일간지에 1억원을 들여서 지지성명을 발표했다. 권선택 전 대전시장과 손잡고 (선거)운동을 실질적으로 했다"며 "지난 4·3 경남 통영·고성 보궐선거 때도 우리 단체 같이 도움을 준 단체가 없을 것이다. 100여 명을 소집해서 민주당을 도와달라고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한국외식업중앙회는 외식업주들의 회비로 운영하는 단체로, 외식업을 위한 정책·제도 개선 등 업권 보호와 회원 복리증진을 포함한 권익신장사업을 한다. 1965년 전국요식업중앙회로 창립돼 올해로 54년 역사를 가진 회원 42만 명의 국내 최대 직능경제인단체다. 현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정책으로 피해를 겪는 당사자들이기도 하다.

    '외식업계의 정계 진출'이라는 제갈 회장의 남다른 꿈은 오래전부터 발현됐다. 제갈 회장은 2015년 외식업중앙회 정기총회에서 개회사를 통해 "내년도 총선에서 60만 외식경영자와 300만 외식업 종사자를 대표하는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배출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600만 직능소상공인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면서도 서민자영업자를 위한 정책의 주요 행위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공공 가치를 주창하는 세력으로 자리 잡을 자격이 있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외식업회장 "이렇게 눈속임하고 의리를 배반하는가"

    하지만 20대 총선에서 제갈 회장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는 28일 이 대표와 간담회에서 "2016년 (총선 때 민주당) 비례대표를 저희 단체에서 신청했는데 (당시) 김종인 대표가 배신했다"며 "저희가 새벽까지 거기서 운동해서 12등 했는데 결과 발표는 28등으로 조정했더라. 정말 기만을 당하고 정치세계가 이렇게 눈속임하고 의리를 배반하는가 하는 감정을 갖고 있었다"고 토로했다.

    제갈 회장은 그래도 의리를 저버리지 않은 행보를 벌였다고 주장했다. 현 정부 들어 최저임금 급격 인상정책에 반발하는 소상공인 집회 때도 정부 측을 도왔다는 것이다. 그는 "소상공인회장이 (최저임금 인상 반대 광화문집회를) '도와달라' '같이하자' 하는데 민주당 국회의원 세 분이 두 시간이나 저를 붙잡고 '굳이 집회를 회장님이 하시냐' 해서 (동원 인원을) 3만 명으로 줄이고 (우리 단체는) 8000명만 오라고 했다"고 토로했다.
  • ▲ 28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외식업중앙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당대표와 외식업계 정책간담회'에 참석한 이 대표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은 제갈창균 한국외식업중앙회장. ⓒ뉴시스
    ▲ 28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외식업중앙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당대표와 외식업계 정책간담회'에 참석한 이 대표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은 제갈창균 한국외식업중앙회장. ⓒ뉴시스
    제갈 회장은 그러면서 "이런데도 왜 민주당은 저희들에 관심 안 주나. 내년 4·13 (총선)에는 연동제가 법적으로 개정되면 비례대표는 당연히 한 자리를 주셔야 한다"며 "우리는 민주당에 결코 버림받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선거제 개혁안 패스트트랙이 국회에서 통과되자 긍정적 기대감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이날 민주당의 간담회는 외식업계의 애로사항을 청취한다는 명목으로 개최됐다. 이 대표는 올 초부터 당의 핵심 목표를 '총선 승리'로 삼고 매주 민생투어를 실시하는 등 꾸준한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그동안 은혜를 받았던 지지층에 거리를 둔다면 총선 승리는 장담할 수 없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지배적 시각이다.

    한국당 "민주당, 선거 외상청구서를 비례대표로 갚나"

    한편 자유한국당은 이번 일을 비례대표가 늘어나는 패스트트랙 선거제의 폐해라고 지적하면서 지원 과정에서의 의구심을 제기했다.

    김현아 한국당 원내대변인은 29일 논평을 통해 "비례대표 의석을 약속받고 선거 지원에 나섰다면 현행법 위반 소지가 있다. 공소시효를 떠나 철저한 진상조사가 필요하다"며 "민주당이 국민이 반대하는 선거법을 패스트트랙으로 강행한 이유가 비례대표 의석수를 늘려 밀린 '선거 외상값'을 정산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기가 찰 노릇"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선거법 개정은 이미 국민이 거부하고 있다. 비례대표를 확보해 외상값 갚으려는 꼼수는 당장 집어치워라"라며 "외상청구서는 비례대표 남발이 아니라 국민에게 갚아야 할 빚"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