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당사자 동의 없이 주 3~4회 강행, 군사정권 때도 없던 일" 방어권 등 우려
  • ▲ 사법농단 의혹을 받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처장 등 일부 피고인에 대해 법원이 주 3~4회 공판을 강행해 논란이 빚어진 바 있다.ⓒ정상윤 기자
    ▲ 사법농단 의혹을 받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처장 등 일부 피고인에 대해 법원이 주 3~4회 공판을 강행해 논란이 빚어진 바 있다.ⓒ정상윤 기자
    ‘2019.02.12 공판기일(서관 311호 14:00)’ ‘2019.02.13 공판기일(서관 408호 10:00)’ ‘2019.02.13 공판기일(서관 408호 14:00)’ ‘2019.02.14 공판기일(서관 311호 10:00)’...

    사법농단 의혹 관련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임종헌(60·사법연수원 16기) 전 법원행정처 차장(2018고합1088)의 공판 일정이다. 일정대로라면 임 전 차장은 오후 재판을 끝내고 다음날 오전 다시 재판을 받아야 했다. 당시 임 전 차장 변호인단은 “(주 4회 공판은) 피고인의 방어권을 충분히 보장받을 수 없다”며 전원 사임했다. 공판은 진행되지 못했다.

    변호인단 전원 사임을 두고 ‘무리한 재판 강행으로 인한 피고인 방어권 보장문제’와 ‘재판을 늦추려는 변호인단의 전략’이라는 견해가 맞섰다. 화두는 ‘주 3~4회 공판 일정’이었다.

    "주 3~4회 재판, 이례적… 군사정권에서도 없던 일” 

    주 3~4회번 공판 일정이 잡힌 전례로는 박근혜(67) 전 대통령의 경우가 있다. 박 전 대통령은 탄핵정국 때 주 4회 공판을 받았다. 당시 박 전 대통령 측은 구속만기(6개월)에 쫓겨 재판 일정을 무리하게 잡기보다 '실체적 발견'을 강조했다. 방대한 수사기록 등을 거론하기도 했다.

    법조계에서는 주 3~4회 재판 일정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현행법상 보장된 무죄 추정의 원칙 △이에 따른 피고인의 충분한 방어권 보장·행사 △방대한 분량의 기록을 봐야 하는 재판부·검찰 등의 처지 등 종합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재판 강행이 결국 헌법과 형소법상 보장된 피고인의 권리 침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임 전 차장의 변호인인 이병세(56·연수원 20기) 변호사는 지난 4월2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윤종섭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공판기일에서 “서류증거를 조사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취지로 재판부에 항의하기도 했다. 

    법률사무소 ‘이세’의 김기수 변호사는 “구속사건이라면 2주에 한 번 정도로 재판하는 게 정상”이라며 “구속사건은 공판 준비를 위한 접견 등의 시간을 고려해 최소 2주 간격으로 진행하는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그런데 지금 시국사건들을 보면 구속재판의 경우 (구속할 수 있는 최대 기간인) 6개월 내에 (법적 판단을) 해야 하니까 주 3~4회 공판을 하는데, 이렇게 되면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이 안 되고 인권침해적 요소가 많다”고 설명했다. 

    무리한 재판 강행으로 인한 재판부의 심리적 부담도 우려했다. 김 변호사는 “당사자 동의를 받지 않고 (주 3~4회 공판을 하는) 이런 식으로 재판하는 것은 들어본 적 없고, 군사정부 시절에도 없었던 일”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도 기록 제대로 볼 시간이 없다  

    법무법인 ‘광화’ 박주현 변호사 역시 "무리한 공판 강행이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와 기본권 침해 등의 문제를 유발한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건을 제외하고 (무리하게 재판 일정을 잡은 경우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이렇게 되면 피고인과 변호인들은 방어하기 힘들고, 재판부도 기록을 제대로 볼 시간을 가질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청한 다른 변호사는 무리한 재판 강행에 대한 배경으로 “과거 사법부 판결에 대해 재심의 근거로 삼으려는 목적, 또 판사들에 대한 일종의 경고 아닌가 싶다”고 해석했다. 

    서울 모 대학의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구속재판에서 주 3~4회 재판이) 일반적이지는 않지만 사건 환경 등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는 있다”면서도 “그러나 이를 (재판부가) 악용하고 부당함이 전제된다면 충분히 문제의 소지가 있어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