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찾은 대만 정치인·외국 기업인 체포해 중국 본토 송환 가능한 법
  • ▲ 29개월형을 선고받고 홍콩최고법원을 떠나는 찬통카이 (陳同佳)를 태운 호송차량. ⓒ허동혁
    ▲ 29개월형을 선고받고 홍콩최고법원을 떠나는 찬통카이 (陳同佳)를 태운 호송차량. ⓒ허동혁
    홍콩에서 중국 내 범죄 용의자의 중국 송환을 가능하게 하는 법안(일명 逃犯條例, 도주범 조례) 논란이 점점 확산되고 있다. 지난 4월 28일 법안 통과를 반대하는 집회에 주최 측 추산 13만 명(경찰 추산 2만2800명)이 참가했다. 이는 2014년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한 우산 시위 이후 최대 시위 참가자수다.

    현재 홍콩에 체류 중인 중국 범법자들은 중국에 압송될 수 없다. 도주범 조례의 최대 논란은 중국을 비난하는 대만 정치인들이 홍콩에 입국할 경우 중국에 압송될 수 있는 점이다. 또한 국제 금융도시 홍콩에서 외국 금융상업 기관 종사자들이 중국법 위반으로 체포될 수 있다.

    이 법안이 입안된 계기는 지난해 2월 대만에서 홍콩인끼리 벌어진 살인사건 때문이다. 홍콩법은 영국 관습법의 속지주의(영외발생 범죄 불처벌)에 따라 대만에서 발생한 살인죄를 처벌할 수 없다. 홍콩은 현재 한국 포함 20개 국가와 장기적 도주범 인도조약을 맺고 있지만, 대만은 이에 포함돼 있지 않다.

    때문에 대만 정부의 살인범 송환요구에 대해 홍콩 정부에서 관련 법안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중국, 마카오에도 범죄용의자의 송환을 가능하게 하는 ‘도주범조례’를 입안하게 됐다. 그런데 이는 사법체계가 크게 다른 중국법이 홍콩에 적용돼 사회혼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제기돼 왔다. 또한 중국 정부의 통제 하에 있는 홍콩이 정치 사안에 따라 송환을 결정하는 형평성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대만에서의 홍콩인 살인사건의 전모는 이렇다. 중국 심천 출생의 홍콩 영주권자인 찬통카이(陳同佳, 20)는 지난해 2월 홍콩인 애인과 함께 대만여행 중 타이페이 시내 호텔 안에서 애인이 다른 남자와 성관계로 임신 중임을 밝히며 그 증거로 성관계 동영상을 보여줬다. 찬은 이에 격분해 애인을 목 졸라 살해한 후, 시체를 토막 내 트렁크에 담아 타이페이 교외 신베이 (新北)에 유기했다. 찬은 살해 당일 홍콩으로 도주했지만, 한 달 후 애인의 은행카드로 현금을 인출해 자신의 카드대금을 지불한 혐의(돈세탁)로 홍콩 경찰에 체포됐다. 이후 찬은 홍콩 경찰에게 살인혐의를 인정했다.

    지난 4월 28일 홍콩 최고법원은 찬에게 돈세탁 혐의로 징역 29개월을 선고했다. 이미 13개월을 복역한 찬은 현재 모범수 신분으로, 모범수 형량의 1/3을 감형하게 돼 있는 홍콩법에 따라 빠르면 올해 10월 석방된다.

    홍콩과 외교관계가 없는 대만은 (정부 출장소는 존재) 사건 공소시효를 37년 6개월로 정하고, 찬의 송환을 홍콩에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다. 홍콩 행정장관 캐리 람(林鄭月娥)은 이에 대해 대만에 성실한 대응을 수차례 약속하며, 도주범 조례의 7월 이전 처리를 홍콩 입법회에 주문하고 있다.

    홍콩 범민주파와 친중파 정치인들은 찬의 대만 송환에는 대체로 공감하지만, 도주범 조례와 얽힌 해법에 관해서는 각 계파 내에서도 이견을 보이고 있다. 도주범 조례를 일방적으로 반대하면 찬의 석방 후 홍콩탈출을 용인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요즘 홍콩 입법회는 이 법안 때문에 매일 계파끼리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필자는 법안 반대시위 다음날 홍콩 최고법원에서 열린 찬의 돈세탁 혐의 재판을 방청했다. 이미 13개월 수감된 찬이 만약 이날 짧은 형량을 선고받아 석방되면, 대만의 수배와 도주범 조례를 피해 그날로 공항을 통해 출국할 가능성 이 있었다. 찬은 형량 선고 순간 차분한 표정이었으며, 변호사와 아무렇지도 않게 몇 마디 나눈 후 교도소로 돌아갔다.
  • ▲ 지난 4월 28일 '도주범조례' 항의 시가행진에 모인 인파. 주최측 추산 13만명이 참가했다. ⓒ허동혁.
    ▲ 지난 4월 28일 '도주범조례' 항의 시가행진에 모인 인파. 주최측 추산 13만명이 참가했다. ⓒ허동혁.
    홍콩 범민주파는 대체로 찬이 석방되는 10월 이전 법안을 다시 논의하거나 폐기하며, 찬을 일회성 조치로 대만에 송환하자는 입장이다.  2014년 홍콩 우산시위의 주역 죠슈아 웡(黃之峰)이 소속된 정당 데모시스토(香港衆志) 주요 멤버 아이작 쳉(鄭家朗)은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많은 사람들이 시위에 참가한 것은 찬통카이 논란에도 불구하고 법안에 반대한다는 의미이며, 마카오 시민들과 홍콩 주재 각국 영사관들도 시위를 지지했다. 중국법은 허점이 많아, 예를 들어 중국을 드나드는 애꿎은 홍콩 장사꾼이 홍콩에서 체포 될 수 있다. 10월 이전에 찬을 일회성 조치로 대만으로 송환하면 피해자 유족들의 신원을 풀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2016년 홍콩입법회 의원 선서를 6초에 한 글자씩 읽었다는 이유로 제명된 라우시우라이(劉小麗, 여) 전 의원 역시 필자에게 “찬은 특별조치로 대만에 송환하는 등 여러 방법이 있어 도주범 조례와 연관 지을 필요가 없다. 도주범 조례는 홍콩정부가 궁극적으로 일국양제를 일국일제로 변환하고자 하기 때문에 그 일환으로 입안된 법안이다. 그래서 찬의 모순 논란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민 들이 시위에 참가했다”고 말했다.

    친중파 내부는 의견이 분분하다. 살인 희생자 유족과 긴밀한 연락을 취하고 있는 친중파 홀덴 초우(周浩鼎) 의원은 여러 언론 인터뷰를 통해 “유족들은 하루속히 법안이 통과돼서 범인을 대만에 송환하길 바라고 있다”며 법안의 신속처리를 주장했다.

    반면 친중파 중진 마이클 티엔(田北辰)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도주범 조례는 홍콩인이 홍콩 경외에서의 범법행위로 인해 처벌될 수 있고(속지주의 위배), 대만 범법자가 제외될 수 있는 등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 살인범의 대만 송환 여부를 면밀히 가리기 위해 이번 회기 내에 처리할 필요가 없다. (찬이 석방되는) 10월 이전까지 법안을 수정해서 처리하자”고 주장했다.

    변수는 찬통카이의 항소 여부다. 재판 당일 찬의 변호사는 항소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지만, 만약 항소를 하면 혼란은 더 커질 수 있다.

    대만은 독립성향인 여당 민진당과 급진 독립파인 시대역량(時代力量) 의원들이 장래에 홍콩을 방문하면 중국에 압송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중국인도법을 연일 맹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찬통카이를 법대로 대만으로 송환해야 하는 입장이다.

    살인사건 당시 시체가 유기된 신베이가 지역구인 수젠창(蘇貞昌) 행정원장(총리)의 장녀 수챠오후이(蘇巧慧) 민진당 입법위원(국회의원)은 필자와의 메신저 인터뷰에서 찬의 해법에 대해 “대륙위원회(大陸委員會, 대만의 중국업무 관장부서)는 홍콩에 3번이나 사법협조를 요구했지만 홍콩은 소극적으로 대응해 왔다. 이미 다른 논란으로 번진 만큼 하루속히 단발성 사안으로 대만의 사법당국과 협조해 찬을 대만으로 송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일국양제가 점점 퇴색 돼가고 있는 홍콩에서 도주범조례는 중국이 원하는 대로 적용될 가능성이 많다. 논의 중인 법안은 행정장관이 심의 없이 직권으로 행사할 수 있어, 많은 대만인들이 홍콩에 입국하자마자 중국으로 끌려 갈 수 있는 공포의 법안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대만 대륙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 3월 언론인터뷰에서 “도주범조례가 통과되면 홍콩에 여행 주의보를 발령할 것”이라고 밝혔다.

    홍콩의 외국인들은 도주범 조례가 통과되면 홍콩의 국제금융 및 무역기능에 혼란을 야기할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미국상공회의소 홍콩사무소는 지난 3월 성명에서 ‘이 법안은 홍콩의 국제도시 위상을 위축시킬 수 있다’며 법안 수정을 호소했다. 또한 도주범 조례 반대 시위에는 수많은 서양인들이 보였는데, 시위에 참가한 한 서양인 변호사는 TV인터뷰에서 “홍콩의 금융업계 종사자들이 중국의 알수 없는 법 때문에 압송될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도주범 조례의 통과를 예상하고 이미 몇몇 인사가 홍콩을 떠나는 등 불안은 계속 확산되고 있다. 2017년 중국 시진핑 주석의 사생활을 다룬 서적을 홍콩에서 판매했다는 이유로 중국 공안에 의해 중국으로 납치됐다가 풀려난 코즈웨이베이 서점(銅鑼灣書店) 경영자 람윙키(林榮基)는 지난 4월 도주범 조례에 의해 중국에 압송될 우려 때문에 대만으로 이주했다. 그는 현재 대만에서 새 서점 개점을 준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