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포스트 “中, 대만에 군사압박-유화책 하이브리드 전략 사용”…한궈위도 넘어갈까
  • ▲ 한궈위 가오슝 시장 기사가 실린 신문ⓒ허동혁
    ▲ 한궈위 가오슝 시장 기사가 실린 신문ⓒ허동혁
    내년 실시되는 대만 총통선거 여론조사 1위를 달리고 있는 국민당 소속 한궈위(韓國瑜) 가오슝(高雄) 시장의 지난 3월 22~28일 홍콩, 마카오, 중국 선전 및 샤먼 방문을 두고 중화권에서 ‘매국노 투어’라며 논란이 일고 있다.

    한 시장은 방문 도시들과 총액 53억 대만 달러(약 1954억 원)에 달하는 농수산물 판매 경협을 체결했다. 그러나 한 시장이 경협과 상관없는 부처인 홍콩 및 마카오의 중국 정부 출장소에 해당하는 중앙인민정부 연락판공실(이하 중련판, 中聯辦) 주임 및 중국 정부의 대만 업무를 관장하는 대만 판공실 주임과 회동한 것이 문제가 됐다.

    필자는 3월 22~24일 한궈위 시장의 홍콩 및 마카오 방문 일정에 동행했다. 한 시장이 가는 곳마다 많은 대만, 홍콩, 마카오 및 중국기자들이 취재 경쟁을 벌였으며, 일본 및 영국 기자들도 보여 그의 주목도를 실감케 했다. 한펀(韓粉)으로 불리는 지지자들도 홍콩에서는 보기 힘든 대만 청천백일기를 들고 다니며 그를 응원했다.

    그는 홍콩에 도착하자마자 중련판을 방문했다. 중련판은 홍콩에서 ‘총독부’로 불리는 기관으로, 일국양제가 보장된 홍콩 내정에 간섭하고 각종 선거에 개입한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홍콩 경제 및 무역과는 상관없는 부처다. 중련판 주임과 회동 사실이 전해지자 홍콩인들이 먼저 반응했다. 페이스북에 실린 홍콩 언론의 중련판 방문 기사에 ‘중련판이 뭐하는 곳인지 알고 간 거냐’ ‘홍콩인들을 무시한다’ 같은 항의 댓글이 쏟아졌다.

    홍콩 언론과 정치인들은 그 다음날 더 격하게 반응했다. 친중파 계열이지만 중련판에는 비판적인 홍콩 성보(成報)는 “가오슝 시장 한궈위가 대만을 팔아치웠다”는 제목을 1면 톱으로 달았다. 홍콩의 이런 소동을 본 대만인들이 그제야 항의하기 시작했다. 집권 민진당 계열 언론을 중심으로 ‘농산물을 팔러 간다더니, 대만을 팔아 치우는 매국노(賣臺奴) 짓을 하고 다닌다’는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한 시장이 홍콩 도착 다음날 마카오에 가서도 마카오 중련판 주임을 만나자 대만 정치인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절정은 방문 3일째 중국 선전(深圳)에서 중국 대만 판공실 류제이(劉結一) 주임을 만나면서다. 대만 판공실은 대만인들에게 대만 침략의 선봉기관으로 인식돼 있다.

    대만 관리가 중국을 방문해서 중국 관리를 만나려면 대만 행정원(정부)의 중국 업무 관장부서인 대륙위원회(大陸委員會)에 사전 신고해야 한다. 대륙위원회는 한 시장의 중국에서의 행적에 대해 “한 시장이 회동 전날 갑자기 류제이 대만판공실 주임을 만나겠다고 알려왔다. 이에 대해 한 시장은 사후 설명을 해야 한다. 홍콩 및 마카오 중련판 주임 회동은 대륙 밖이므로 신고사항이 아니다”고 밝혔다.

    논란은 날이 갈수록 커져갔다. 한 가오슝 의회 민진당 의원은 한 시장을 외우죄(外遇罪, 외환죄)로 고발했다. 4월 1일 가오슝 시의회의 질의응답에서 민진당 의원들은 한 시장에게 청나라 황제가 입던 곤룡포를 선물하며 “중국이 주장하는 일국양제를 찬성하냐”고 따졌다. 이윽고 첸밍퉁(陳明通) 대륙위원회 주임위원이 한 방송에서 “한 시장이나 개 돼지 짐승이나 뭐가 다른가”라고 비난하는 일이 벌어졌다.

    비난이 점점 거세지자 한 시장은 평소의 유쾌한 스타일을 깨고 격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시의회 본 회의 답변과 기자 회견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중국 관리와 야합을 한 적이 없다. 만나서 웃으며 식사한 게 뭐가 나쁘냐” “중화민국을 사랑하며, 일국양제를 지지하지 않는다” “가오슝은 적이 없다. 누구나 환영한다”고 항변했다.

    문제는 한 시장과 중국 고위 관리의 회동은 중국 최고 지도부의 승인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중국은 내년 1월 실시되는 총통 선거 여론조사 1위를 달리고 있는 한 시장을 우호적인 인물로 이미 판단하고 이런 방문 이벤트를 기획했을 수 있다.

    홍콩 및 마카오에 한 시장을 취재하러 몰려든 중국 기자들이 이를 증명한다. 이들은 중국정부 통제 하에 움직이는 기자들이며, 방문기간 내내 한 시장에게 우호적인 질문을 쏟아냈다.

    또한 한 시장의 중국 입국 이후 중국 당국은 홍콩을 포함한 외국 기자들의 접근을 불허했다. 홍콩 중립 계열 신문사의 중국 국적 기자는 필자에게 “방문 일주일 전에 대만 판공실에 취재 신청을 했지만, 아무런 대답도 없다가 한 시장 방문 하루 전 갑자기 ‘이미 늦었다’는 연락이 왔다”고 밝혔다. 일본 유력지의 기자도 필자에게 비슷한 고충을 털어놨다.
  • ▲ 3월 24일 마카오 대학을 방문중인 한궈위(韓國瑜) 대만 가오슝 시장. ⓒ허동혁.
    ▲ 3월 24일 마카오 대학을 방문중인 한궈위(韓國瑜) 대만 가오슝 시장. ⓒ허동혁.
    필자가 이에 대해 가오슝 시정부 신문국(공보국)에 문의했지만 “대만 판공실에 물어보라”는 답만 돌아왔다. 이는 한 시장의 중국 방문 자체가 완전히 중국의 통제 하에 놓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은 내년 1월 대만 총통선거에서 유화노선을 펼치는 국민당 후보가 당선되길 원한다. 파격적인 스타일로 지난해 11월 민진당 아성인 가오슝 시장에 당선된 이변을 일으킨 한궈위는 현재 총통선거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가오슝은 지난해 타이중(臺中)에 인구수를 추월당해 대만 제3도시로 전락했다. 요즘 가오슝에 가보면 도시 인프라는 완벽하지만 거리에 사람과 차가 보이지 않는다. 가오슝 도시경제 재건이 급선무인 한 시장에게 중국이 경협을 미끼로 접근 했을 수 있다.

    그러나 지난 3월 입법위원(국회) 보궐선거의 국민당 패배로 한류(韓流)가 한풀 꺾인 상황에서, 한궈위 시장이 정말로 총통선거에 출마하기까지는 난관이 많다. 첫째, 그는 가오슝 시장 임기를 시작한지 3개월밖에 되지 않아, 정말로 출마한다면 시정 포기 부담을 져야 한다.

    둘째, 한 시장의 총통 출마여부에 대한 애매한 태도가 문제다. 한 시장은 홍콩 및 마카오 방문 중 필자의 총통 선거 출마여부 질문에 대해 일관해서 “관심 밖이다”를 되풀이했다.

    그런데 4월 1일 가오슝 시의회 질의응답에서 “총통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이 자리에서 맹세하라”는 민진당 의원들의 요구에 명확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런 모호한 태도로 지지자들이 점점 등을 돌리고 있다고 대만 언론들은 분석하고 있다.

    셋째, 한펀(韓粉)으로 불리는 한 시장 광팬들의 사회문제화다. 한펀은 한 시장에 대한 비난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 등 점점 과격화되고 있다. 3월 28일 한 시장이 귀국하는 가오슝 공항에서 한펀과 반대 시위 인파 사이에 충돌이 벌어졌다.

    4월 2일에는 한 시장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 한 민진당 여성의원 페이스북에 한펀으로 추정되는 네티즌이 “온 가족을 죽여버리겠다”고 포스팅 한 사건이 벌어졌다. 한펀의 과격성을 보여주는 이 사건은 한 시장의 요청으로 현재 경찰 수사 중이다.

    이와 관련, 국민당 후보가 내년 총통선거 에서 당선된다면 사실상 마지막 민주선거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첸밍퉁 대륙위원회 주임위원의 발언을 <워싱턴 포스트>가 3월 28일자 칼럼에서 소개했다. 군사 압박과 유화의 하이브리드 전략을 펼치는 중국의 일국양제 통일방안에 국민당이 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중국이 이 하이브리드 전략을 향후 다른 자유 국가들에게도 들이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어 한궈위 시장의 중국대륙 방문이 중국의 하이브리드 전략에 대한 국민당의 호응방식을 보여준 명백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 칼럼이 나온 지 3일 만인 3월 31일 중국 J-11 전투기 4대가 대만 영공을 침범하여 F-16 전투기 4대 등 총 6대의 대만 전투기가 출격해 10여 분간 대치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양안 공군기 대치는 2011년 이후 처음이다.

    대만과 외국 언론들은 이 전투기 대치 사태를 3월 27일 대만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이 하와이에서 발표한 미국의 M1 에이브람스 탱크와 F-16V 전투기 60대 구입 계획에 대한 중국의 대답으로 보고 있다.  

    중국은 대만 선거기간 중 민진당에 유리한 결과를 가져오는 군사도발을 더 이상 벌이지 않는다. 지난 1월 중국 시진핑 주석의 ‘대만 동포에게 고하는 글’을 통해 무력통일 불사를 언급한 것이 1월과 3월 보궐선거에서 민진당에 유리하게 작용할 정도로, 대만 표심은 중국의 도발행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향후 9개월 동안 선거가 없는 지금 군사도발을 벌여 총통선거 직전까지 적당한 공포심을 조성하는 것이 중국의 의도일 수 있다.

    한편 국민당은 중국 전투기의 대만 영공 침범에 대해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에 별다른 적대감을 보인 적이 없는 한궈위 시장이 중국의 삼엄한 통제 하에 고관들을 만나고 와서 “즐겁게 웃으며 식사했다”고 둘러대고 있다. 이는 <워싱턴 포스트>가 주장하는 중국의 하이브리드 전략과 국민당의 호응방식의 한 예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