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당이 ‘4의석 홈런(全壘打)을 치겠다’고 장담했지만, 결과는 안타
  • ▲ 궈궈원: 대만 남부 타이난 (臺南) 북부 전통시장 유세를 벌이는 민진당 궈궈원 (郭國文, 중앙) 후보. 오른쪽 안경 쓴 이는 대만원주민 출신 판멍안(藩孟安) 핑둥(屏東, 대만 최남단 행정구역)현장
    ▲ 궈궈원: 대만 남부 타이난 (臺南) 북부 전통시장 유세를 벌이는 민진당 궈궈원 (郭國文, 중앙) 후보. 오른쪽 안경 쓴 이는 대만원주민 출신 판멍안(藩孟安) 핑둥(屏東, 대만 최남단 행정구역)현장
    지난 16일 4개 선거구에서 실시된 대만 입법원(국회) 위원 보궐선거에서 집권 민진당 2석, 국민당 1석, 무소속 1석의 결과가 나왔다.

    2020년 1월 실시될 대만 총통선거의 시험대이자 ‘시진핑 대만침략 전초전’(홍콩 <명보>)으로도 불린 이번 보궐선거는 사실상 반중 대만독립 성향의 민진당 완승으로 평가된다. 원래 이 4개 선거구의 의석 분포는 민진당 2석, 국민당 2석이어서, 표면적으로는 민진당이 수성(守城)에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민진당은 패배가 예상되던 대만 남부 타이난(台南)선거구에서 역전승을 거두고, 박빙이 예상되던 타이베이 근교 신베이(新北)선거구에서는 큰 표차로 승리했다. 당선자를 내지 못한 다른 두 선거구에서도 민진당 혹은 친여 무소속 후보가 선전했다. 민진당 지도부는 “드디어 지혈했다”며 선거 결과를 반겼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한류(韓流)'로 불리던 국민당의 한궈위(韓國瑜) 가오슝(高雄)시장 돌풍이 여전해, 국민당은 ‘4석 홈런(全壘打)을 치겠다’고 장담했지만 결과는 안타를 치는 데 그쳤다.

    필자는 지난 한 달간 4개 지역구의 선거운동을 모두 관찰했다. 선거 초반에는 국민당의 낙승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한류는 여전했고, 지금도 한 시장이 나타나는 곳마다 사람들은 그와 악수를 하려고 소리를 지르며 달려든다. 그의 개방적 스타일과 언변은 민진당의 지지기반인 블루칼라 계층을 상당부분 잠식했다.

    지난 11월 지방선거 당시 민진당 텃밭인 가오슝에서 그의 당선은 호남 광주에서 자유한국당 후보가 당선된 것과 마찬가지인 대이변이었다. 이번 보궐선거에서 타이난의 국민당 후보가 당선됐다면 국민당이 민진당의 텃밭을 모두 함락시킨 것이 되어 한 시장의 총통 대망론이 일 수 있었다.

    타이난선거구는 2008년 소선거구제로 개편 이후 국민당이 당선자를 내지 못했다. 타이난의 국민당 후보인 셰룽제(謝龍介) 타이난 시의원은 한 시장과 세트 정치인으로 불리는 인기 인물이다. 그는 연설을 노래 부르듯 유창하게 하는 특유의 대만어 연설 실력으로 유명하다.

    그는 출마선언 당시 시의원선거(다선거구제)에서 1등으로 당선된 지 3개월 밖에 안 된 상태였지만, 민진당 후보의 분열을 틈타 출마를 강행했다. 이어 한 시장의 지원유세 한 번으로 판세를 단숨에 뒤집었다. 필자는 셰 후보의 유세에 두 번 가봤지만, 요즘 한 시장이 나타나는 곳은 광팬들로 인해 한 시장이나 셰 후보에게 제대로 질문하기가 쉽지 않다.   

    한 시장의 첫 유세 직후 실시된 여론조사는 셰 후보와 노동부 정무차장(차관) 출신 민진당 궈궈원(郭國文) 후보, 그리고 민진당을 탈당한 2세 정치인인 무소속 첸샤오위(陳筱瑜) 후보의 지지율이 5:4:1로 나왔다. 선거 초반부터 거꾸로 민진당이 수성이 아닌 공략을 하게 됐다. 궈 후보가 후보단일화에 매달리는 것이 승산이 있어 보였다.

    그러나 선거 1주일 전 궈 후보의 타이난 북부 전통시장 유세에서, 필자는 여론조사와 전혀 다른 모습을 목격했다. 이날 유세는 민진당 소속 대만 원주민 출신인 판멍안(藩孟安) 핑둥(屏東) 현장이 동행했는데, 한 여성운동원이 먼저 시장 상인들을 포옹하며 바람을 잡은 후 궈 후보와 판 현장이 상인들과 대화를 나누는 식으로 진행됐다. 그런데 시장 상인들의 60% 이상이 궈 후보를 열렬히 반기며 투표를 약속하는 것이었다.
  • ▲ 東森: 보궐선거 전날 타이난 선거구의 국민당 유세에서 <중국시보> (中國時報) 계열 방송사 기자(넥타이 차림 남성)가 <동삼신문TV> (東森新聞) 여기자 (중앙 노란색 스웨터 차림)를 밀어내는 모습. 동삼신문TV 제공
    ▲ 東森: 보궐선거 전날 타이난 선거구의 국민당 유세에서 <중국시보> (中國時報) 계열 방송사 기자(넥타이 차림 남성)가 <동삼신문TV> (東森新聞) 여기자 (중앙 노란색 스웨터 차림)를 밀어내는 모습. 동삼신문TV 제공
    궈 후보는 후보단일화에 대한 필자의 질문에 “탈당한 후보는 민진당에서는 비교적 적은 ‘정얼다이’(政二代, 2세 정치인)이자 20대다. 민진당 유권자들이 그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선거 결과는 필자가 시장유세에서 목격한 대로 나타났다. 민진당 궈 후보 47.1%(6만2858표), 국민당 셰 후보 44.3%(5만9194표), 무소속 첸 후보는 7.8%(1만424표)가 나왔다. 선거운동 마지막 날에도 셰 후보 유세장에 나타난 한 시장과 악수하려는 광팬이 넘쳐났지만, 이변을 뒤엎는 이변이 일어났다. 왜 이런 재역전승이 펼쳐진 것일까.

    첫째, 현재 한 시장은 내년 총통선거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달리지만, 한 시장 자신은 지금까지 모호한 태도를 보여왔다. 대만 <빈과일보(蘋果日報)> 분석에 따르면, 한 시장의 이런 태도 때문에 일부 한 시장 지지자들이 등을 돌렸다고 한다.

    둘째, 선거 중반부터 '한류' 거부반응이 일기 시작했다. 모든 선거구의 국민당 후보들이 선전물에 한 시장 사진을 삽입하고, 한 시장의 딸을 유세에 내세우는 등 '한궈위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펼치자 지역주민들 사이에서 “남의 동네 사람을 데려다놓고 우리를 무시한다”는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중국 샤먼(廈門)에서 2km 떨어진 진먼(金門, 금문도)현 보궐선거에서 반발이 심하게 나왔다. 국민당은 지지율이 평소 90%가 나오는 진먼에서 중앙정치권과 가깝지만 현지 지지도는 떨어지는 후보를 공천했다. 이 후보 역시 한 시장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도민 무시 여론이 일어나면서 선거 판세는 소지역주의로 흘렀다. 인구가 적은 진먼 부속도서 출신의 국민당 후보는 3위로 충격패를 당했으며, 친민진당 무소속 후보가 24.2% 득표로 2위를 차지하는 이변이 일어났다.

    이런 일도 있었다. 필자가 선거 1주일 전 타이난선거구의 국민당 셰 후보 유세 취재 중 계란 투척 사건이 일어났다. 현실정치에 불만을 품은 사람의 소행으로 드러났지만, 한류에 대한 반발을 상징하는 사건으로도 비쳤다.

    셋째, 한류를 과신한 국민당이 지난해 11월 당선된 시의원들을 무리하게 공천한 것이 문제가 됐다. 셰 의원 공천에 대해서도 시의원선거 유권자의 의사를 무시한다는 비난이 있었다.

    지난 1월에는 2개 선거구에서 입법위원선거가 열렸는데, 타이베이선거구의 국민당 현직 시의원이 당시 한 달 전 열린 시의원선거에서 1등으로 당선됐다는 이유로 입법위원선거에 투입됐다. 국민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된 민진당 허즈웨이(何志偉) 입법위원 비서실의 우페이위(吳培羽)는 이에 대해 “국민당 내에 마땅한 후보가 없어 현직 시의원을 공천한 것으로 안다. 허겁지겁 나오는 바람에 선거운동이 엉성했고, 이를 의아하게 생각한 유권자들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한 시장이 총통선거에 출마한다면, 시장에 당선된 지 수 개월 만에 당내경선에 뛰어들게 되는 셈이어서 같은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 총통선거 여론조사 1위 후보의 아이러니다.

    마지막으로, 대만 3대 신문 중 하나인 친국민당 신문 <중국시보(中國時報)> 계열 방송사의 한 시장 밀착취재가 문제가 됐다. 필자는 지난해 11월 대만 지방선거 당시부터 한 시장의 바로 옆자리를 항상 차지하는 <중국시보> 계열 방송사 기자들을 목격했다. 이들은 자주 3인 이상이 조를 이뤄 한 시장 혹은 셰 후보 주변을 에워쌌다. 선거운동원들의 도움을 받아 옆에 서는 일도 있었다. 이 방송사는 한류 노출도가 타 방송에 비해 높다.

    이는 일부 유권자로부터 억지방송이라는 비난을 샀고, 이윽고 타 방송사와 충돌까지 벌어졌다. 같은 친국민당 계열 '동삼신문TV(東森新聞TV)' 는 최근 <중국시보> 계열 방송사 기자를 업무폭력 및 성추행 혐의로 고발했다. '동삼신문TV'가 촬영한 선거 전날 유세 동영상을 보면 <중국시보> 계열 방송사 기자가 '동삼신문TV' 소속 여기자의 가슴을 팔꿈치로 밀어내는 장면이 나온다.  
  • ▲ 신베이 (新北) 선거구의 민진당 위톈 (余天) 후보가 개표 중 표차를 벌려가자 운동원이 선거사무실에 고표당선 (高票當選) 휘호를 붙이는 모습
    ▲ 신베이 (新北) 선거구의 민진당 위톈 (余天) 후보가 개표 중 표차를 벌려가자 운동원이 선거사무실에 고표당선 (高票當選) 휘호를 붙이는 모습
    <중국시보> 계열 방송사는 반박성명을 내고 “'동삼신문TV' 기자가 원래 있던 자리를 비집고 들어서려 했다”며 맞고소하겠다고 밝혔다. 이 논란은 현재 계속 증폭되고 있다.

    문제는 <중국시보>가 대만에서는 보기 드문 친중 언론이라는 점이다. 이 신문에는 중국에 의한 일국양제 대만 통일을 지지하는 논조가 자주 보인다. <중국시보>의 모기업인 ‘왕왕그룹(旺旺集團)’은 중국에서 식품, 고급호텔사업 등을 전개 중이다. 친중 논조를 펼치지 않으면 중국에서의 사업이 곤란해질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이 한 시장과 국민당을 옹호하는 것은 중국 지도부의 의사라며 대만 내부에서 의심을 사고 있다. 홍콩 <명보>는 이에 대해 “대만 유권자들이 이제 이성을 찾고 한류를 대하기 시작했다”고 논평했다.

    중국대륙 수복이 최종 목표인 국민당은 이런 친중논란이 반갑지 않다. 그러나 <중국시보> 논란에 덧붙여, 가오슝 시정부의 중국 판다 수입 발표에 대해 중국이 부인하는 소동까지 겹쳐 한류 거품은 선거기간 계속 빠져나갔다.

    반사이익은 민진당이 가져갔다. 1% 이내의 박빙 승부가 예상되던 타이베이 위성도시 신베이(新北)시 보궐선거에서는 예상을 깨고 가수 출신 민진당 위톈(余天) 전 입법위원이 국민당 후보를 3.2%(5761표) 차로 따돌리고 당선됐다.

    앞서 소개한 진먼선거구는 후보들이 출신 마을에서 몰표를 얻는 소지역주의가 발동해, 4명의 후보가 20% 이상 득표했다. 당선된 친국민당 무소속 첸위젠(陳玉珍, 여) 후보는 3선 현의원 경력의 지역정치인 가문 출신으로, 지난해 11월 남동생 첸즈룽(陳志龍)이 시의원에 1등 당선된 데 이어 집안에 겹경사가 났다.

    대만 중부 창화(彰化)현선거구에서는 예상대로 공무원 출신의 커청팡(柯呈枋) 국민당 후보가 승리했지만, 민진당 후보가 예상을 넘는 47.7%의 득표율을 올렸다.

    지난 11월 지방선거에서 한류로 인한 대참패(지자체장 민진당 6석, 국민당 15석, 무소속 1석)를 당했던 민진당은, 올해 두 번 열린 보궐선거 결과로 인해 내년 1월 총통선거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지방선거 이후 민진당 내부 총통선거 움직임은 조용했지만, 보궐선거 승리의 흐름을 타고 민진당의 라이칭더(賴清德) 전 행정원장(총리)이 18일 총통선거 경선 출마를 선언했다. 라이 전 원장이 경선에서 전 상관인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에게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총통선거의 또 다른 잠재적 후보인 커원저(柯文哲) 타이베이 시장(무소속) 역시 지난 1월 입법위원 타이베이 보궐선거에서 타격을 입었다. 같은 선거구에서 당선된 민진당 허즈웨이 입법위원의 비서 우페이위는 “커 시장의 이미지는 ‘새정치’ ‘백색(白色)역량’이다. 하지만 타이베이선거구에서 커 시장이 지원한 젊은 여성후보가 민진당 허즈웨이 후보를 지나치게 흑색선전하는 바람에 커 시장의 이런 이미지가 많이 퇴색됐다”고 설명했다.

    중국 시진핑 주석이 지난 1월 ‘대만동포에게 고하는 글’에서 무력통일도 불사하겠다고 밝힌 것도 민진당에 민심이 쏠린 한 원인이 됐다. 중국은 과거 대만 선거 때 도발을 벌였다 민진당에 유리한 결과를 가져온 적이 몇 번 있다. 2016년 총통선거에서 트와이스 멤버 쯔위의 대만 청천백일기 동영상에 대해 중국 네티즌이 비난을 가한 것이 민진당 차이잉원 후보 당선에 쐐기를 박은 사건이 대표적이다.

    그래서 중국은 선거 전에는 되도록 도발을 자제한다. 그러나 지난해 지방선거 후 발표된 시진핑 주석의 담화가 보궐선거에서 민진당에 유리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어, 민진당에 불리하게 흘러가던 총통선거의 향후 행방을 가늠할 수 없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