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올인'의 함정]① 일본과 척지고 미국과 불신… 중-일 의도에 휘말려
  • ▲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日총리.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日총리.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19년 1월 1일, 한국 언론들은 김정은의 신년사를 생중계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같은날 나왔어야 할 문재인 대통령 신년사는 2일에야 나왔다.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 등은 김정은의 신년사를 두고 매우 긍정적인 분석과 평가만 내놓고 있다. 이런 청와대와 여당이 유독 한 나라에 대해서만은 쌍심지를 켜고 대응한다. 바로 일본이다. 일본 또한 이에 질 새라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다.

    화해재단 해산→일제 강제징용 배상→한일 ‘레이더’ 갈등

    한국 정부는 지난 11월 한일 양국이 협의해서 세운 ‘화해와 치유 재단’의 해산을 발표했다. ‘화해와 치유 재단’은 한일 양국이 2015년 12월 협의에 따라, 일본이 내놓은 10억 엔(한화 약 102억 원)을 기초로 일제 성노예 피해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재단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2017년 12월 여성가족부가 재단 설립과 운영에 대한 감사를 맡았고, 2018년 11월 결국 해산 결정을 내린다. 그리고 일제 성노예 문제를 재점화 하겠다는 뜻을 밝힌다.

    같은 달 29일 대법원은 일제시대 강제징용 배상 재판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다. 신일철주금(新日鐵住金)이라는, 맥아더 군정 시절 4개로 쪼개진 신일본제철의 후신 기업에게 배상하라는 판결이었다. 신일철주금은 물론 일본 정부는 韓대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했다. 그러나 원고 측 대변인단은 2019년 1월 2일 한국 내 신일철주금 자산 압류를 신청했다. 다른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대법원 판결에 따라 국내 미쓰비시 자산에 압류를 신청했다.

    2018년 12월 20일에는 한국 해경 경비함과 해군 구축함이 독도 북동쪽 200km 한일공동관리수역 끝자락에서 표류하던 북한 목선을 구조하던 중 日자위대 초계기와 조우한 일이 있었다. 이때 韓해군 구축함이 日자위대 초계기를 향해 사격통제 레이더를 겨눴느냐 겨누지 않았느냐를 두고 양국은 열흘 넘게 대립하고 있다. 지난 12월 28일 日방위성이 자위대 초계기가 촬영한 영상을 공개한 것이 “아베 총리의 지시”라는 보도가 나오자 청와대도 국방부에게 ‘강력한 대응’을 지시했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아베 日총리는 지난 1일 인터뷰에서 한국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 ▲ 2018년 10월 30일 강제징용 피해배상 관련 대법원 재판 직전 기자회견 모습.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18년 10월 30일 강제징용 피해배상 관련 대법원 재판 직전 기자회견 모습.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아베 “강제징용 배상 이미 끝난 문제…韓 국제법 지켜라”

    아베 日총리는 1일 아사히TV와의 인터뷰에서 “강제징용 노동자 문제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최종 해결됐다”며 “(강제징용에 대한 배상은) 국제법으로 봐도 있을 수 없는 판단이어서 향후 상황에 따라 국제재판을 비롯해 모든 선택을 두고 대응해 나갈 것”이라는 강경한 입장을 내비췄다. 韓구축함과 日초계기 간 ‘레이더 문제’에 대해서도 “화기관제 레이더를 조준하는 것은 위험한 행위”라며 “(한국은) 재발 방지책을 확실히 마련해 달라”고 촉구했다.

    “레이더 문제로 한일 관계가 흔들리고 있고, 개선의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진행자의 질문에 아베 총리는 “한국 정부가 일본의 요청을 받아들이기를 바란다”면서 “한국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책임 있는 행동을 취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산케이 신문과의 ‘신춘대담’에서도 한국에 대한 불만은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그는 “한국은 1965년 체결한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일본과의 관계를 정상화했고, 일본의 경제지원을 받아 고도 경제 성장을 이뤘다”고 말하면서 “국가 지도자가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동시에 모두가 만든 국제적인 룰을 지키는 것은 국제사회의 기본”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아베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美대통령의 미국제일주의와 김정일을 언급한 것이라는 풀이가 지배적이었지만, 일각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지적 아니냐는 주장도 내놨다.

    한일 갈등 통한 한미일 공조균열, 日과 中이 원하는 바

    한일 간 갈등은 이처럼 명백하게 드러나지만 한미 동맹의 균열은 국내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외신을 보면 한국이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과도 멀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한국 언론에서 ‘한미일 대북공조 균열’을 검색하면, 2017년 9월 일본 언론들의 오보에 대해 美백악관이 “삼국 간 공조에 균열을 야기할 수 있다”며 비판한 내용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한국어로 서비스되는 ‘미국의 소리’나 ‘자유아시아방송’을 보면, 2018년 4월 이후로 美정치인들과 씽크탱크 전문가들이 문재인 정부의 남북경제협력사업 추진, 남북군사합의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 ▲ 2017년 11월 5일 日사이타마현의 한 골프장을 찾은 도널드 트럼프 美대통령과 아베 日총리. 손에 든 모자는 일본이 제작한 것으로 '동맹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뉴시스-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17년 11월 5일 日사이타마현의 한 골프장을 찾은 도널드 트럼프 美대통령과 아베 日총리. 손에 든 모자는 일본이 제작한 것으로 '동맹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뉴시스-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북한 비핵화에 대한 한미일 공조의 균열이 본격적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 9월 남북군사합의 때부터다. 당시 한국 정부는 남북군사합의를 하기 6주 전에 미군 측과 논의했다고 주장했지만, 이후 마이크 폼페오 美국무장관이 남북군사합의 전날 강경화 외교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뭐하는 거냐”며 격하게 항의한 사실이 日니혼게이자이 보도로 드러났다. 강경화 장관도 국회에서 이 사실을 시인했다. 우여곡절 끝에 미국은 남북군사합의를 인정했지만 한국과 미국 간의 거리감은 계속 커졌다. 남북철도·도로연결 또한 공동조사와 ‘착공식’은 제재 예외 인정을 받았지만 그 다음 단계는 북한 비핵화 이후에 가능하게 됐다.

    비슷한 시기 일본은 영국과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해·공군에게 주둔할 자리를 내준다. 엄밀히 말하면 주일미군 기지와 자위대 기지였지만,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이행을 위한 합동작전을 명목으로 미국의 최우방국들과 함께 대북감시작전을 펼치는 것이어서 미국과의 관계 강화에는 상당한 도움이 됐다.

    日의 노골적인 친미, 그 궁극적 목표는 ‘지역패권’

    지난해 11월에는 새로 만드는 ‘방위계획대강’에 F-35 스텔스기 100대 추가 도입, 레이저 등 탄도미사일 요격무기 개발, 헬기 호위함의 항공모함 개조 등의 내용을 담아 동아시아에서 미국을 대리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히 드러냈다. 만약 ‘파이브 아이즈’라 불리는 미국과 주요 동맹국이 이를 수용하면 일본의 군사력 강화는 순풍을 타게 된다. 동시에 상대적으로 대북압박에 적극적이지 않은 한국은 북한과 한반도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뒷선으로 내몰리게 된다.

    한국이 대북압박과 북한 비핵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미국과 강력하게 공조를 한다면, 일본과의 갈등이 문제가 안 될 수 있지만, 미국의 의심을 받는 상태에서 일본과도 감정적 대립을 계속한다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현재 아베 정권을 지원하는 세력은 신도 세력들이 후원하는 ‘일본회의’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일본을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지역패권 세력’으로 만들고자 한다. 그 목표의 가장 큰 걸림돌은 미국과 끈끈한 동맹인 한국, 미국의 도움 아래 통일된 한국이다. 중국 또한 한국이 미국 영향권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지금 한국은 이런 일본과 중국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한국이 북한 비핵화라는 큰 과제를 뒤로 하고, 남북관계 개선에만 급급하면, 일본·중국의 의도에 휘말려 미국, 일본과의 대결 구도를 만들게 되고, 결국 한반도 전체가 주인을 잃는 비극을 겪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