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사고 없었다" ↔ 靑 "안전 고려해 탈원전" 딴소리… 文, 정상회담서 '원전' 언급안해
  •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체코 프라하에 도착한 모습. ⓒ청와대 제공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체코 프라하에 도착한 모습. ⓒ청와대 제공
    체코를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안드레이 바비쉬 체코 총리와 회담하면서 "체코 정부가 향후 원전건설을 추진할 경우 우수한 기술력과 운영·관리 경험을 보유한 우리 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과정에서 "한국은 현재 24기의 원전을 운영 중에 있고 지난 40년 간 원전을 운영하면서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정작 국내 탈원전 기조에 대해서는 "좁은 국토에서 원전이 밀집돼 있는 일종의 안전성 문제도 상당히 많이 고려가 되고 있다"고 말하는 등 원전에 대해 일관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원전은 한-체코 의제 아니었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체코 현지 시각으로 28일 안드레이 바비쉬 체코 총리와의 회담 결과 내용을 브리핑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프라하 시내 호텔 M층 카린 룸에서 진행된 체코 총리와의 회담에서 "바라카 원전의 경우도 사막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도 비용 추가 없이 공기를 완벽하게 맞췄다고 했다"며 "체코 정부가 향후 원전건설을 추진할 경우 우수한 기술력과 운영·관리 경험을 보유한 우리 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안드레이 바비쉬 총리는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사업의 성공 사례를 잘 알고 있으며, 한국 원전의 안전성에 관한 기술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며 "예정보다 지연되고 있는 다른 나라의 원전건설 사례들을 잘 알고 있다. 우리도 준비가 아직 마무리되지 못했다"고 언급했다.

    우리 정부는 당초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남미를 순방하는 과정에서 기착지로 LA를 먼저 고려했었다. 그러다가 체코로 돌연 방향을 바꾼 터라,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된 상황이었다. 언론들은 체코를 기착지로 삼은 이유에 대해 '원전'을 주요 이유로 꼽은 상태였다. 이는 문 대통령이 체코로 떠나기 전 청와대가 '원전 세일즈'를 언급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날 문 대통령과 체코 총리의 발언을 보면 표면적으로는 우리 정부가 예상대로 원전 수주를 언급하고 체코 측이 화답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과정에서 잠시 혼란이 있었다.

    〈한국경제〉는 문재인 대통령이 체코에 도착한 28일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현지 발언을 인용해 "원전이 총리와의 면담 의제가 아니라고 청와대가 말을 바꿨다"고 보도했다. 또 한때 체코 현지 동포기업인과 간담회 또한 일정상의 이유로 취소됐다고 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청와대는 '우리 정부는 처음부터 일관되게 체코 원전 수주를 목적으로 간다고 못박지 않았다'라는 입장이었다. 현지 동포 기업인과 간담회 역시 처음부터 확정된 일정이 아니었다는 반응이었다. 현지 기자들에게 제공된 안내 역시 '조율 중이던 일정이 열리지 않는 것으로 결정됐다'였다.

    그러나 〈한국경제〉 등이 "체코 방문 의미가 퇴색됐다"는 등의 보도를 내놓자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체코 총리 회담 시 한국의 뛰어난 기술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체코에서 추진되는 원전사업에 우리도 참여할 수 있도록 당부할 예정"이라고 입장을 다시 정리했다. 경제인 간담회와 관련해서도 "우리 기업인과 재체코 경제인들이 참석해 체코 현지 경제활동에 대한 의견을 개진할 예정"이라고 했다.

    양국정상, 모두 발언에서 '원전' 언급 안해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체코 총리와의 모두 발언에서는 원전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체코 독립 100주년을 축하한다. 올해는 프라하의 봄 50주년이기도 한데, 자유와 민주를 향한 체코 국민들의 뜨거운 열망과 불굴의 의지를 전 세계에 보여 주었다"며 "(우리 정부) 또한 내년이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된다. 이런 점에서 양국은 참으로 공통점이 많다"고 했다.

    이어 "양국 관계는 앞으로 더욱 크게 발전할 수 있는 잠재력이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며 "총리님과 함께 양국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더더욱 이렇게 발전시켜 나가고자 하는 그런 희망을 가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안드레이 바비쉬 체코 총리 역시 한국과 관련해 여러 현안을 언급하면서도 '원전'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바비쉬 총리는 "한반도 긴장 완화, 그리고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 것을 높이 평가한다"며 "또 체코와 한국과의 관계는 특히 경제 분야에서 아주 활발하게 이루어져 왔다. 한국기업들이 체코에 진출해서 많은 투자를 했는데 현대자동차의 투자 같은 경우에는 14억 US 달러 규모로 체코에서 이루어지는 가장 큰 해외투자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이스라엘을 국빈 방문 중이어서 문재인 대통령과 만남이 불발된 밀로시 제만 체코 대통령이 대신 보내온 서한에도 원전 문제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다. 밀로시 제만 체코 대통령은 "과학, 연구, 혁신, 스타트업 또는 기타 첨단기술 분야에서 양국 간 협력 촉진을 극대화하기 위해 대통령님과 함께 노력해 나갈 수 있다면 영광"이라며 "현재의 개선된 한반도 안보 상황을 만드신 대통령님의 담대한 외교적 성과에 대해 축하 말씀을 드린다.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한반도 비핵화 달성 방안이 곧 도출되어 항구적인 긴장 완화로 이어지고, 나아가 한반도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삶이 개선될 것으로 굳게 믿는다"고 했다.

    '원전' 문제 여전히 오락가락하는 靑

    회담 이후 원전 수주 문제에 대한 청와대의 반응 또한 톤이 높지 않았다. 청와대는 이후 기자들로부터 원전 세일즈 관련 결과를 어떻게 판단하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원전 부분에 대한 사업 추진 또는 우리 기업들의 참여 부분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판단해야 할 요소들이 여러 가지 있다. 그래서 사실 제가 여러분께 바비쉬 총리의 언급을 다 말씀드릴 수가 없다"며 즉답을 피했다.

    청와대는 그러나 한국에서의 탈원전 기조에 대해 묻는 기자의 질문에 "우리가 에너지 전환 정책을 쓰는 것과 원전 수출은 별개의 이야기"라고 선을 그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특히 한국적 상황, 좁은 국토에서 원전이 밀집돼 있다는 일종의 안전성 문제도 상당히 많이 고려가 되고 있다"고 답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체코 총리와의 회담 과정에서 "한국은 현재 24기의 원전을 운영 중에 있고, 지난 40년간 원전을 운영하면서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었다"고 못 박았음에도 불구하고 안정성 문제를 여전히 거론한 것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서도 "사고의 단위를 어느 정도로 보느냐에 따라 관점은 달라진다"며 "해외 언론에서 인지하고 기억할 만큼 큰 사고가 없었다는 말씀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원전 문제에 대한 일관된 입장을 여전히 내놓지 못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