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 비행경로와 반대…체코에는 김정은 삼촌이 대사로 재직, "원전 홍보" 靑 발표에 '여운'
  • ▲ 2017년 7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정상들. 맨 오른쪽이 문재인 대통령이다.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17년 7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정상들. 맨 오른쪽이 문재인 대통령이다.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문재인 대통령이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27일 출국했다. 문 대통령은 5박 8일 예정으로 체코~아르헨티나~뉴질랜드를 잇달아 방문하고 귀국하는 이례적인 일정을 짰다. 아르헨티나에서 열리는 G20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하는 문 대통령은 왜 태평양을 가로지르지 않고 서쪽으로 날아가, 동유럽에서 1박 2일을 보내는 특이한 일정을 짠 것일까. 미국을 경유할 수 없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걸까.

    동유럽 들렀다가 남미로 날아가는 '5박 8일' 특이한 일정

    청와대는 “원전 사업 수주를 지원하기 위해서” 문 대통령이 체코를 방문한다고 밝혔다. 대통령은 27일(이하 현지시간) 체코 프라하에 도착, 28일 오전에 안드레이 바비쉬 총리와 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체코가 두코바니와 테멜린에 추진하는 원전 계획과 관련, 한국 원전의 장점을 소개하며 수주전을 펼칠 것이라고 한다. 청와대는 21조 원에 달하는 거대 프로젝트에 한국 업체들도 경쟁에 뛰어든 만큼 대통령이 나선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이 원전 수주전 뿐만 아니라 2015년 체결한 ‘한-체코 전략적 동반자 관계’의 내실화를 위한 상호 교역 및 투자 확대 방안 등을 폭넓게 협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오후에는 체코에 거주하는 한국인들과 간담회를, 현지 진출한 한국기업 대표들과의 간담회를 가질 예정이라고 한다.

    문 대통령은 1박 2일의 체코 일정을 마친 뒤 G20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아르헨티나로 떠난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29일 오후에 도착해 현지 동포 간담회를 갖는다고 한다. 아르헨티나에서 문 대통령이 보내는 시간은 11월 29일부터 12월 1일까지 사흘간이다. 그동안 G20 정상회의 참석과 함께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 마르크 루터 네델란드 총리,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11월 30일 도널드 트럼프 美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은 여전히 ‘추진 중’이다.

    12월 2일에는 다시 뉴질랜드로 간다. 3일에는 팻시 레디 뉴질랜드 총독과 만찬을, 4일에는 재신다 아던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진 뒤 귀국한다. 이상이 문 대통령의 5박 8일 일정이다. 

    인천~체코~다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돌아가는 순방

    매우 특이한 이번 순방 경로를 보고 전직 외교관들은 “이해가 안 된다”고 평했다. 아르헨티나를 갈 경우에는 보통 미국을 경유해 가는데, 왜 굳이 체코를 들렀다가 아르헨티나로 가느냐는 지적이다. 혹시 미국에 가지 못하는, 말 못할 이유가 있는 걸까. 지난 9월 美뉴욕 유엔 총회에도 갔던 文대통령이 왜 미국을 거치지 않는 것인지 의문이다.


  • ▲ 인천공항에서 체코 프라하까지의 거리. ⓒ구글 맵 거리측정 결과캡쳐.
    ▲ 인천공항에서 체코 프라하까지의 거리. ⓒ구글 맵 거리측정 결과캡쳐.
    일반적으로 인천국제공항에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갈 때는 L.A. 등 미국 서부 지역을 경유해서 간다. 비행거리는 1만 9500킬로미터에 달한다. 반대로 서쪽으로, 즉 아시아 대륙을 가로 질러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서 두바이 등 중동을 경유해 가는 노선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미주 지역을 경유하는 것보다 항공료가 비싼 편이어서 많이 찾지는 않는다고 한다. 두 방향 모두 비행시간만 25시간 넘게 걸린다.

    문 대통령의 해외순방경로는 어떨까. 인천공항에서 체코 프라하까지 거리는 약 8200킬로미터, 비행시간은 12시간 정도 걸린다. 프라하에서 다시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의 거리는 1만 1800킬로미터, 비행시간은 17시간가량이다. 인천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가는 경로보다 500킬로미터 가량 더 비행해야 한다. 연료 주입을 위해 프랑스나 스페인에 한 번은 들렀다 가야 한다. 이 두 번의 비행에 걸리는 시간은 29시간으로, 인천에서 아르헨티나까지 갈 때에 비해 4시간 이상 더 소요된다. 지구 자전 반대편으로 비행하면 시차 적응에 유리하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12시간이 넘는 비행은 어느 방향으로든 힘들다.

    문 대통령은 과거 해외순방을 다녀오면 피로가 누적돼 휴가를 냈다. 이번 해외순방은 과거 어느 때에 비해서도 더 긴 여행이다. 왜 이렇게 힘든 일정을 짰을까. 체코에 굳이 가야하는 이유가 뭘까.

    김정은 삼촌 김평일이 대사로 있는 체코

    문 대통령의 체코 방문은 비공식 방문이다. 언론들은 청와대를 인용해 “문 대통령의 프라하 방문은 아르헨티나로 가기 전에 경유하는 성격이 짙다”고 전한다. 그게 전부일까.


  • ▲ 2017년 2월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암살당한 뒤 국내에서도 김평일에 대한 관심이 커졌었다. ⓒ연합뉴스TV 당시보도 화면캡쳐.
    ▲ 2017년 2월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암살당한 뒤 국내에서도 김평일에 대한 관심이 커졌었다. ⓒ연합뉴스TV 당시보도 화면캡쳐.

    체코는 과거 공산국가일 때는 북한과 좋은 관계였지만 지금은 아니다. 체코 정부는 2017년 10월에는 “북한이 부채 260만 달러(한화 약 29억 4000만 원)을 30년 넘게 갚지 않고 있다”고 밝히며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기도 했다. 외신 보도를 찾아보면 체코는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도 성실히 이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이런 체코에 대체 뭐가 있을까. 정말 원전 뿐일까. 일부 탈북자들은 체코에 김정은의 삼촌 김평일 대사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평일은 김정일의 이복동생이다. 생김새나 행동이 김일성과 비슷해 과거에는 후계구도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김정일이 권력을 잡은 뒤에는 1998년부터 17년 동안 폴란드 대사를 지냈다. 말이 대사이지 사실상 연금 상태나 다름 없었다.

    그런 김평일이 2015년 2월 체코 대사로 자리를 옮겼다. 같은 해 7월에는 평양에서 열린 제43차 해외주재 대사대회에 참석해 김정은과 만났다. 북한은 김평일이 김정은과 찍은 사진을 ‘노동신문’ 1면에 실었다. 과거 ‘곁가지’라 불리며 목숨마저 위태로웠던 김평일이 조카 김정은에게 공식직으로 인정받는 장면이었다. 당시 조선일보는 '대북소식통'을 인용해 “김평일이 2014년 북한에 한 번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과 비밀접촉 시도하나" 관측도

    일부 탈북자들은 “노동신문 1면에 김정은과 찍은 사진이 실렸다는 것은 충성맹세를 했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다”면서 “그런 김평일이 대사로 있는 체코에 대통령이 왜 가려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북한 비핵화마저 남북관계 개선의 소재로 생각하는 문재인 정부가 북한과 모종의 접촉을 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반면 한국 사회에서는 “김정은은 권력 장악을 위해 자기 이복형까지 암살하는데 삼촌이라고 살려두겠느냐”면서 북한과 김평일 간의 연결고리는 없다는 지적이 많다. 이는 체코 현지 언론의 시각과 비슷하다. 김정남이 말레이시아에서 암살당했던 2017년 2월 체코 언론들은 “김정은이 김평일을 죽이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청와대의 설명처럼 문 대통령이 체코에 가는 이유는 순전히 원전 수주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로 가는데 비교적 수월한 미주 지역을 거치지 않고 굳이 동유럽을 들르는 것, 그것도 해당 국가를 ‘비공식 방문’한다는 점 때문에 문 대통령의 이번 순방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