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 의원연찬회, 종일 '인적청산' 공방... '계파갈등'만 확인
  • ▲ 20일 오전 경기도 과천시 공무원 인재개발원에서 진행된 자유한국당 2018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김병준 비대위원장과 김성태 원내대표 등 참석자들이 김태기 단국대 교수의 강의를 듣고 있다. 2018.08.20. ⓒ뉴시스 사진 DB
    ▲ 20일 오전 경기도 과천시 공무원 인재개발원에서 진행된 자유한국당 2018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김병준 비대위원장과 김성태 원내대표 등 참석자들이 김태기 단국대 교수의 강의를 듣고 있다. 2018.08.20. ⓒ뉴시스 사진 DB
    당의 개혁 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자유한국당 의원 연찬회가 잠복해있던 당내 갈등만 확인한 채 끝났다. 인적청산 선행 여부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당 지도부는 인적청산보다 당 가치 정립이 우선이라는 의견을 냈지만, 일부 의원들은 그동안의 당내 갈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한국당은 20일 경기도 과천시 공무원 인재개발원에서 의원 연찬회를 진행했다. 외·내부 인사의 강의 등 하루 동안 빡빡한 일정으로 채워진 연찬회가 막바지에 들어서자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준비된 강의가 끝난 직후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이 마이크를 잡고 연단에 올라서자 격한 공방이 벌어졌다. 


    인적청산 시점 놓고 왈가왈부 

    김 위원장은 연찬회에서 '선(先) 가치 정립, 후(後) 인적청산'이란 기존의 견해를 고수했다. 

    김 위원장은 한국당의 상황을 '고장 난 자동차'에 비유하고 "고장 난 자동차를 고치지 않고 '차를 고장 나게 만든 운전기사를 내보내라 잘라라 새로운 좋은 기사를 영입하자'고 한다고 차가 갈 수 있겠느냐"며 "지금은 먼저 차를 고친 후에 인적인 부분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한국당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 가치가 없다"며 "반공·안보·친기업·기득권 옹호·수구 집단에 부패와 연관됐다는 이미지만 있고 우리가 추구하는 비전과 전략은 국민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는 성장의 새로운 모델을 고민해야 한다. 국가주의의 틀을 벗어나서 자율의 영역을 확대해야 한다"며 "가치 정당의 면모를 갖추면 이에 맞는 의원들이 (당을) 주도하는 현상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인위적인 인적청산보다 자연스러운 인적 쇄신 분위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인적청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좋은 공천제도를 만들어 새로운 인재 풀을 만드는 것이 최선이다"며  "속도가 있고 경중이 있고 선후가 있다고 생각한다. 부족하더라도 이해해주고 함께 가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이런 주장에 다수의 의원이 반기를 들고 나섰다. 친박계와 잔류파 의원들이 합세해 김 위원장을 압박했다.   

    김진태 의원은 "운전수가 문제가 아니고 차가 고장났다는 것에 동의하기 어렵다"며 "차는 별로 고장 난 게 없는데 운전수가 문제다. 오늘 다뤘던 주제들을 보면 다툼이 별로 없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소득주도성장, 탈원전 정책 반대, 북한산 석탄이니 허익범 특검이니 우리 당에는 노선 차이가 있을 것도 없는데 자꾸 이념과 가치의 문제가 아니냐 접근 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며 "2년 반 전쯤 20대 총선 전에는 우리의 현재 이념과 가치를 가지고도 잘나갔고 문제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20대 총선 참패, 탄핵, 지방선거 대참패의 사건마다 당을 이끌던 리더십이 굉장히 문제였다"며 "우리가 체제 전쟁을 벌이고 대한민국의 사회주의 국가로 가느냐 마느냐 하는 절체절명의 시기에 우파 정당 하나는 제대로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자꾸 엉덩이를 들썩들썩하며 중도도 포용해야 하지 않냐 하지 말라. 제대로된 선명한 우파정당이 필요하다"며 "지금은 허익범 특검 사무실로 찾아가 항의 방문하고 서초동 법원에 가서 왜 (김경수 경남지사)영장을 기각했느냐고 따져야 할 때다. 반성이 아니라 싸워야 할 때다"고 강조했다. 

    정양석 의원도 "국민들은 달라진 한국당의 선택과 행동을 기다리고 있을텐데 우리는 계속 논의만 한다"며 "우리의 바뀐 태도가 중요하다"고 거들었다. 

    박완수 의원도 "당의 기초를 튼튼히 정립하자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운전자에게도 책임이 크다"며 "과거 비대위도 당의 이념과 가치를 재정립하는 것은 많이 했지만 지도자가 바뀌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고 비판했다. 

    박 의원은 보수 이념과 가치보다 중요한 건 국민 눈높이에 맞는 건전한 상식을 가진 리더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정당"이라고 덧붙였다.

    비박계 잔류파로 분류되는 정용기 의원 역시 리더십의 문제가 당의 위기를 불러왔다고 진단했다. 

    정 의원은 "당 위기 상황의 근본 원인은 리더십의 문제였다"며 "대법관 버전이냐, 구중궁궐 버전이냐, 기업 CEO 버전이냐, 조폭 잡던 검사 버전이냐, 노동운동 버전이냐, 교수님 버전이냐 차이만 있을 뿐 일관됐다"라고 했다. 각각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와 박근혜 전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 홍준표 전 대표, 김성태 원내대표, 김병준 비대위원장을 싸잡아 비판한 것이다. 

    그는 "김 비대위원장도 '가치를 바로 세우겠다. 이 가치에 동의 안 하는 사람은 같이 갈 수 없다. 시스템으로 걸러내겠다'고 했다"며 "이것도 똑같이 '나를 따르라'는 식의 리더십이다. '뭐는 짖어도 기차는 간다'와 무슨 차이가 있겠나"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비대위 역할 또한 민주적 리더십을 태동하기 위한 산파의 역할이 되어야 한다"며 "한사람이 좌지우지하는 게 아닌 민주적인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게임의 룰을 만드는 데 집중해달라"고 당부했다. 

    이런 주장에도 김 위원장의 생각은 확고했다. 김 위원장은 "잘못된 지도자가 나오게 된 원인에는 환경과 배경도 꼭 있다"며 "지도자가 80~90% 잘못했다고 하면 환경도 10~20%도 작용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잘하면 좋은 지도자들은 저절로 나온다. 개인적으로 (좋은 지도자가 나오는)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 ◆대다수 의원들 '계파 갈등' 문제 인식 

    김병준 비대위를 비롯해 지도부는 '당 정체성 정립'이라는 과제에 초점을 맞추고 싶어 했지만, 한국당 의원들 대다수가 당의 위기 상황이 '계파갈등 및 보수 분열'에서 왔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여의도연구원장인 김선동 의원이 이날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전체 의원을 상대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당이 무엇을 잘못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당 소속 의원 95명 중 53명(55.8%)이 '계파갈등 및 보수 분열'이라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탄핵과 대선 패배에 대해 사과와 반성 없이 책임을 회피했기 때문이라거나 당 리더십과 위기관리 시스템 부재 때문이라고 응답한 의원도 각각 40명이었다.

    김병준 위원장이 강조한 '이념과 가치 부재로 인한 정체성 혼란'등 부분이 문제라고 답한 사람은 36명이었다. 막말과 거친 언행으로 품격상실 33명, 공천 논란을 비롯한 인재 발굴과 육성에 소홀해 세대교체에 실패 32명이 있었다. 

    사실상 다수의 의원들이 계파 갈등을 문제점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문제의 핵심에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새누리당 분당 사태'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큰 줄기에서 보면 친박계와 비박계의 싸움이지만, 탄핵 정국에서 새누리당 잔류파와 바른정당 분당파로 갈라설 당시 깊어진 감정의 골이 터져나온 것으로 보인다. 

    한국당 일각에서는 연찬회 전부터 "대통령 탄핵 사태를 정리하고 가야한다" "복당파에게 보수 분열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날 잔류파 한 중진 의원은 기자와 만나 "복당파가 전면에 나서서 잡고 힘들면 안 된다"며 "남아 있던 사람들은 뭐가 되겠느냐"고 한탄했다. 

    또 다른 중진 의원도 "탄핵 사태를 정리하고 가야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러나 9월 정기국회를 앞두고 있어 계파 갈등을 전면에 꺼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다만 어떤 식으로든 계파 갈등을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의원들이 세력을 형성할 조짐도 보이고 있어, 향후에도 '인적 청산'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끊이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