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20살부터 동성애 인권 운동… 2004년 병역거부해 수감… 임종석 비서실장과 잘 알아
  • ▲ 임태훈 군 인권센터 소장은 2014년 8월 서울 영등포 소재 군인권센터에서 [28사단 집단구타 사망사건 2차 브리핑]을 통해 윤 일병의 사망원인을 놓고 군 당국이 은폐를 주도 했다는 주장을 했다. ⓒ뉴데일리 DB
    ▲ 임태훈 군 인권센터 소장은 2014년 8월 서울 영등포 소재 군인권센터에서 [28사단 집단구타 사망사건 2차 브리핑]을 통해 윤 일병의 사망원인을 놓고 군 당국이 은폐를 주도 했다는 주장을 했다. ⓒ뉴데일리 DB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화제인물로 부상했다. 국군기무사가 군부대 면회객 수백만명의 개인정보를 무단 열람한 점을 비롯해, 참여정부 당시 대통령 전화 내용까지 감청한 점 등을 폭로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임태훈 소장의 발걸음은 자칭 ‘군 개혁’을 향하고 있다. 이같은 임 소장의 행보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20살 때 동성애자 인권모임서 활동

    임태훈 소장은 1976년 경북 영주에서 태어나 대구한의대학교에서 동양철학을 공부하고 성공회대학교 NGO(비정부기구) 대학원 NGO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시민단체 활동으로 잔뼈가 굵은 사회운동가로 알려졌다. 한국여성의전화 정책위원과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인권법률팀장 등을 지냈다. 그가 군인권센터를 설립한 것은 2009년이다. 이로 미뤄볼 때 임태훈 소장은 2009년 이전 ‘어떠한 계기’로 인해 자칭 '군 개혁'을 향한 행보를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2009년 이전, 그에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임태훈 소장이 20살 때였던 1996년, 동성애자 인권모임인 ‘친구사이’에서 동성애자 인권 운동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 9월 배우 홍석천씨가 커밍아웃(성소수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일)을 했을 때는, 이를 지지하는 모임에 이름을 올리고 동참했다. 그가 학창시절 성정체성 혼란을 겪던 성소수자였음을 유추할 수 있다.

    '계간 처벌규정' 바꾸기 위해 병역거부

    임태훈 소장은 성소수자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는 2004년 군형법상 '계간 처벌규정'과 동성애를 정신질환으로 분류하는 징병검사 규칙을 개정하기 위해,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를 했다. 이로 인해 2004년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아 2005년까지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그는 만기출소 2개월 전 대통령 특별사면을 받아 석방됐다. 

    '윤일병 사건' 폭행치사 폭로해

    이 사건 이후 그는 ‘군대’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된다. 출소 후인 2009년 군인권센터를 설립, 군 인권 실태 조사를 위해 숱한 병영 체험을 했다. 그의 행보는 2014년 ‘윤일병 사건’ 때 빛을 냈다. 2014년 4월 윤모 일병이 선임병들로부터 폭행을 당해 사망했다. 당시 군은 윤일병 사망 경위를 놓고 “생활관에서 만두를 먹다가 질식사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임태훈 소장이 증거자료를 수집해 “폭행을 당해 쇼크사로 죽었다”고 폭로했다.

    임태훈 소장은 지난해 8월 발생한 ‘박찬주 대장 부부 갑질 사건’ 때도 활약했다. 이 사건은 박찬주 대장의 민간인 아내가 ‘육군대장 부인’이라는 공적 지위를 이용해 공관병들에게 갑질을 했다는 의혹이다. 이 의혹을 제기한 것도 군인권센터였다.

    군대를 성정체성과 관련 시각으로 재단할 가능성

    임태훈 소장이 ‘성소수자’를 옹호하기 때문일까. 그의 행보를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분위기도 있다. 홍지만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1일 논평을 통해 “전쟁을 대비하는 군대를 성정체성과 관련된 시각으로 재단할 가능성을 경계한다”며 “군을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없는 그가 제한적, 편파적 지식만으로 군을 때리는 위험성을 방관할 수 없다”고 했다.

    "임태훈-임종석 잘 아는 사이"

    한편 임태훈 소장은 청와대 핵심인사인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과 각별한 사이인 것으로 뉴데일리 취재 결과 확인됐다. 본지는 7월 31일 ▲임태훈 소장이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의 아내와 대학원 동기이며 ▲임태훈 소장과 임종석 비서실장이 서로 잘 아는 사이라는 사실을 단독으로 보도했다.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은 학생운동권 출신 정치인으로 1989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3기 의장을 맡은 인물이다. 이후 제16대·17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의정활동 당시 국가보안법 폐지 및 북한인권법 제정 반대, 대북교류사업 등에 힘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