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공연전문' 현송월 깜짝 등장… 직언파 리수용, 핵전문 리용호와 김정은 수행한 숨은 이유
  • ▲ 지난 4월 27일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때 대화를 나누는 리수용 노동당 국제부장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난 4월 27일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때 대화를 나누는 리수용 노동당 국제부장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싱가포르 소통 홍보부는 지난 10일 프레스센터에 모인 세계 각국 언론에 이날 도착한 북한 측 관계자들의 모습이 찍힌 사진을 배포했다. 사진 속 김정은 수행원 가운데는 예상 외의 인물들이 적지 않았다.

    美北정상회담이 북한 비핵화를 논하는 자리이므로 리용호 北외무상이나 김영철 北통일전선부장, 노광철 北인민무력상이 김정은을 수행한 것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수 년 전 외무상 자리를 리용호에게 넘기고 일선에서 물러난 것으로 알려진 리수용, 한국 공연까지 했던 ‘삼지연 관현악단’ 단장 현송월 등이 포함된 것은 한국 언론들 사이에서 의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김정은에게 직언할 수 있는 김정일의 최측근 리수용

    싱가포르 창이 공항과 김정은의 숙소인 세인트 레지스 호텔 인근에서 포착된 北외무성 관계자는 리용호 외무상, 최강일 북미국 국장 대행, 리수용 노동당 국제부장이었다. 최강일은 최선희가 외무성 부상(차관)으로 승진한 뒤 그의 일을 대신하고 있다.

    이들 중 주목해야 할 사람은 리수용이다. 리수용은 北노동당 국제부장 겸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태영호 前공사는 ‘3층 서기실의 암호’를 통해 "김정은이 집권한 뒤 다른 부서들과 달리 외무성만이 대규모 숙청을 피한 것이 리수용 덕분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태영호 前공사의 주장에 따르면, 리수용은 북한 권력층에서 핵심 가운데 핵심이다. 태 前공사는 “리수용이 언제부터 언제까지 김정철·김정은 형제를 돌봤는지 잘 모른다”면서도 “다만 그가 1990년대 초반부터 김정일을 수시로 만나며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태 前공사는 "리수용이 김정일로부터 허락받은 일 가운데에는 감히 제기할 수 없는 건의가 많았다"고 전했다. 해외에 나간 외교관과 그 가족들이 ‘초상휘장(김씨 일가 초상화 뱃지)’을 상황에 따라 뗄 수 있도록 한 것, 서유럽 주재 北외교관의 생활비를 인상한 것 등이 대표적이라고 한다. 1994년 북핵 위기 당시 스위스 주재 대사이던 리수용은 김정일에게 “우리가 국제사회에 식량 원조를 요청하면 우리 경제가 난국에 직면했다는 인상을 줄 수는 있으나 동시에 이를 매개로 서방 국가들과의 교류·접촉을 확대함으로써 외교적 고립을 타파할 수 있다”고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은 자신의 아들들을 돌보던 리수용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판단, 국제사회와의 접촉을 허락했다고 한다. 태 前공사에 따르면 국제사회의 인도적 대북지원은 물론 영국과의 수교 물꼬를 튼 사람이 바로 리수용이라는 것이다.
  • ▲ 2017년 9월 유엔 총회 연설에서 트럼프 美대통령을 맹비난하는 연설을 하고 있는 리용호 北외무상. ⓒ뉴시스-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17년 9월 유엔 총회 연설에서 트럼프 美대통령을 맹비난하는 연설을 하고 있는 리용호 北외무상. ⓒ뉴시스-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용천역 폭발 사건 때 금지된 휴대폰… 리수용 건의로 사용 가능

    2004년 4월 평안북도 룡천군역 열차 폭발 사건 당시 북한에서는 휴대전화 사용이 금지됐다. 당시 북한에서는 이 사건이 김정일을 암살하려는 시도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북한 당국은 주민들의 휴대전화 사용을 전면 금지하고 범인 색출에 나섰다. 2003년 휴대전화 사용이 허용된 이후 1,000달러가 넘는 거금을 주고 이를 마련한 주민들 사이에서 불만이 팽배했다. 하지만 언제 다시 휴대전화 사용이 가능해질지는 알 수 없었다.

    태 前공사에 따르면, 이 문제를 해결한 것도 리수용이라고 한다. 리수용은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사무총장으로부터 “휴대전화 통신망을 잘 구축하면 테러 사전 예방도 쉽고, 오히려 사회 통제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 김정일에게 전했다고 한다.

    리수용은 또한 주민들에게 휴대전화 사용을 허용하면 새로운 희망을 줌과 동시에 사회적 활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김정일을 설득했다고 한다. 그 결과 이집트 오라스콤이 북한에 진출, 첫 이동통신 회사인 ‘고려 링크’를 설립하고, 2008년부터 북한 주민들의 휴대전화 사용이 다시 가능해졌다.

    핵문제 전문가로 부상한 리용호

    현재 北외무상인 리용호는 駐영국 대사를 지낸 인물로 핵문제 전문가이자 미국의 대외정책에 정통한 인물이라고 한다. 태 前공사는 “강석주 당시 北외무성 제1부상이 리용호를 6자 회담 대표가 아니라 영국 대사로 발령 냈다는 것은 북한이 이미 정세 파악을 끝냈다는 것을 의미했다”고 설명했다. 핵무기와 관련한 국제사회 분위기, 국제협약 등에 있어 리용호가 전문가였다는 뜻이다.

    리용호는 駐영국 대사로 있던 2005년 7월 21일 ‘연합뉴스’를 통해 “남조선 프로선수에게 골프를 배운다”는 소식이 알려진 뒤에도 무사했다고 한다. 당시 보도된 기사 내용은 “자타가 공인하는 대미 전문가로 알려진 리용호의 부친은 김정일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리명제 前노동당 조직지도부 부부장”이라는 것이었다. 신분노출이 되서는 안되는 서기실장의 이름과 가족관계가 드러나 김정일이 노한 것으로 알려졌다. 

    태 前공사는 “리명제는 한 때 노동당 서기실 실장을 지냈다”고 덧붙였다. 최근 싱가포르에서 조 헤이긴 美백악관 부비서실장과 실무 협의를 했던 김정은의 최측근 김창선이 현재 맡고 있는 자리다.
  • ▲ 지난 10일 싱가포르 세인트 리지스 호텔에 도착하는 현송월 삼지연 관현악단 단장.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난 10일 싱가포르 세인트 리지스 호텔에 도착하는 현송월 삼지연 관현악단 단장.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리용호는 북한이 1차 핵실험을 실시한지 한 달이 지난 2006년 10월 귀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부터 그는 미국과의 본격적인 핵 대결을 지휘하는 일을 맡은 것으로 전해졌다.

    태 前공사에 따르면, 리용호는 1990년 유엔의 초청으로 미국에서 6개월의 군축전문가 과정에 참가했다고 한다. 리용호는 이때부터 미국 내 씽크탱크를 돌아보고 미국 학자들이 쓴 핵 협상 관련 책들을 구해 밤을 새가며 공부했다고 한다. 1993년 3월 북한이 핵비확산조약(NPT)을 탈퇴하면서 한반도 핵 위기가 터졌을 때 북한 내부에서 중심을 잡은 것이 리용호였다고 한다.

    김정은이 이런 리용호를 수행원으로 지목해 싱가포르 美北정상회담에 데려간 것은 충분히 합리적인 결정이다.

    현송월은 싱가포르에 왜 왔나

    리수용과 리용호, 최강일이 김정은을 수행해 싱가포르에 간 것은 당연해 보인다. 미국을 찾아 트럼프 대통령과 만났던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그를 수행했던 김성혜 통일전선부 통일전선책략실장,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폐기의 실무 책임자가 될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수행한 것도 이해가 된다. 김여정 또한 실질적인 ‘서기실장’ 역할을 맡기에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현송월은 대체 왜 싱가포르에 나타난 걸까.

    이를 두고 일부 언론은 “현송월이 美北정상회담 만찬 등에서 공연을 선보이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놨다. 그러나 현재 미국과 북한 간의 관계는 ‘만찬을 즐기며 축하 공연을 볼 만한 상황’이 아니다. 트럼프 美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이 이상한 태도를 보이면 1분 만에 자리를 박차고 나올 것이라고 엄포를 놨고, 북한은 정상회담이 2~3일 가량 이어질 것이라는 외부 세계의 예측과 달리, 회담 당일 오후 2시 싱가포르를 떠날 것이라고 잠정적으로 결정한 상태로 알려져 있다.

    이런 분위기에 과거 미국과 북한이 직접 소통하던 시절의 사례를 떠올려 보면 한 가지 답이 나온다. 바로 美北정상회담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해낸 뒤 미국 내 순회공연을 추진하는 것이다. 북한 예술단이 미국에서 첫 순회공연을 가진 때는 2001년 2월이다. 당시 8명으로 구성된 북한 예술단은 미국 워싱턴 D.C, 뉴욕, 시카고, 휴스턴, 로스앤젤레스에서 순회공연을 가졌다. 이 순회공연은 미국 내 친북 성향 단체로 알려진 ‘재미동포전국연합회(KANCC)’가 주최하는 형식이었다. 당시 공연은 체제 선전용 음악 등으로 인해 소수의 한국계 미국인만 관람, 흥행에 참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2018년 1월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에서 열린 북한 예술단 공연은 17년 전과는 크게 다른 모습이었다. 김정은 또한 현송월이 이끄는 예술단이 미국 현지에서 순회공연을 가지는 것이 체제 선전과 보장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0일(현지시간) 美온라인 매체 ‘악시오스’가 美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미국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북한과 문화교류를 하는 방안도 의제로 삼고 있다”며 “美北정상회담이 성공적일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체조선수 또는 예술단을 초청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한 것도 이 같은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