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 공동 합의문 발표, CIVD 언급 전혀 없어… 연방제 연상시키는 우려 조항 곳곳에
  • ▲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이 27일 오후 판문점에서 친교산책을 하고 있다. ⓒ사진=한국공동사진기자단
    ▲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이 27일 오후 판문점에서 친교산책을 하고 있다. ⓒ사진=한국공동사진기자단

    사상 최초로 남북 정상이 직접 공개적으로 서명하고 공동 발표한 합의문이 도출됐지만, 우리 국민이 원했던 북핵 폐기에 관한 명시적 언급은 없었다.

    오히려 △6·15 민족공동행사 적극 추진 △남북 도로·철도 연결 △군사적 긴장 행위 전면 중지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의 평화수역화 △평화협정 체결과 군축 실현 등 우려할만한 내용들이 합의문에 대거 삽입되면서, 해석을 둘러싸고 남남갈등이 극에 달할 것으로 우려된다.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은 27일 오후 판문점에서 공동선언문 서명식을 가졌다.

    지금까지 세 차례 실시된 남북정상회담에서 남북 정상이 공개적으로 공동선언문 서명 및 발표 행사를 가진 것은 처음 있는 일이지만, 그 내용은 여러모로 실망스럽다는 지적이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최대 의제는 모두의 공멸을 야기할 수 있는 북한의 핵무기 폐기였다. 완전히 검증 가능하고 비가역적인 방식(CVID)으로 북핵의 폐기가 이뤄져야 한다는 게 우리 국민의 염원일 뿐만 아니라 세계 사회의 요구였다.

    그럼에도 공동선언문에서 북핵과 관련한 언급은 공동선언문 전체 3개 조 중에서도 말미에 해당하는 3조 4항에서 아주 간략하게 언급되는데 그쳤다.

    그것도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는 애매한 서술이다. 이 문구만 봐서는 우리와 북한 중 누가 핵무기를 갖고 세계평화를 위협하고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다.

    '한반도 비핵화'라고만 표현되다보니, 정작 핵을 갖고 있는 쪽은 북한 뿐인데 우리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어떤 책임과 역할을 다해야 하는지가 의문스럽게 됐다. 자칫 주한미군의 철수나 미국 핵우산의 철회 등으로 해석될 경우, 거대한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와 관련, 판문점 현장에서도 청와대 고위관계자를 향해 공동취재단 취재진으로부터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남한의 책임은 무엇인지, 미국의 핵우산을 의미하는지 묻는 질문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비핵화 과정에 따라 우리가 취해야 할 일도 있다"며 "(미국의 핵우산을 의미하는지는) 내가 확인할 방법은 없다"고 애매한 태도를 보여 의구심을 증폭시켰다.

    이 부분은 물론 내달로 예상되는 미·북 정상회담에서 추가적으로 논의되겠지만, 미국이 큰 관심을 갖고 있는 '북핵 폐기'가 이렇듯 불만족스러운 수준에 머문 이상 미·북 정상회담의 앞날도 어두워졌다는 전망이다.

  • ▲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이 27일 오후 판문점에서 친교산책을 하고 있다. ⓒ사진=한국공동사진기자단
    ▲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이 27일 오후 판문점에서 친교산책을 하고 있다. ⓒ사진=한국공동사진기자단

    이처럼 핵심 의제인 '북핵 폐기'에 대해서는 공동선언문이 지극히 추상적으로 표현한 반면 우려할만한 내용은 대거 포함됐다.

    공동선언문 1조에서는 7·4 남북공동성명 이래 상투적으로 포함됐던 '민족 자주의 원칙'을 재천명하면서, 4항에서 "6·15를 비롯한 날들을 계기로 당국과 국회, 정당, 지방자치단체, 민간단체 등 각계각층이 참가하는 민족공동행사를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고 선언했다.

    이틀 전인 6월 13일에 지방선거가 치러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북핵 폐기도 분명치 않은 마당에 노골적으로 '남북 평화쇼' 분위기를 선거에 활용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6항에서는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와 도로들을 연결하고 현대화해서 활용하기 위한 실천적 대책을 취해나가기로 했다"고 천명했다.

    도로와 철도의 연결·접속 자체만으로는 유엔안보리와 국제사회의 제재에 직접 걸리지는 않지만, 이를 우회하거나 무력화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해주는 셈이라 논란이 예상된다. 제재 완화는 반드시 북핵 폐기 이후에 이뤄져야 한다는 게 우리 국민과 국제사회의 요구였기 때문에, 이에 반하는 합의가 이뤄진 셈이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의 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북측을 통해 백두산에 가보고 싶다"고 하자, 김정은이 경강선KTX 등을 거론하며 철도 인프라 문제를 언급했다는 점에서 우리 국민의 세금 부담으로 북한의 도로·철도 현대화에 얼마나 '퍼주기'가 결행될지도 우려 지점이다.

    공동선언문 2조 1항에서는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으로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간 북한은 한미연합군사훈련을 '한반도 군사적 긴장의 근원'이자 '충돌을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해왔다. 따라서 이 항목은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전면 중지로 해석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또, 2항에서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기로 했다"는 내용이 명시됐는데, 이는 10여 년 전에도 논란이 됐던 북방한계선(NLL) 포기 논란을 재점화해 남남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공동선언문 3조 2항과 3항에서는 각각 "단계적으로 군축을 실현해나가기로 했다"는 내용과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기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나가기로 했다"는 내용이 명시됐다.

    군축 과정에 있어서는 우리나라에 주둔하고 있는 동맹군 주한미군의 감축도 필연적으로 협상 테이블에 오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전환되면, 외국군이 국내에 주둔해 있을 명분이 사라진다. 평화협정 자체에 제3국 군대의 한반도 철수가 명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북한의 핵폐기 이행은 불분명한 반면 우리는 미국의 핵우산 제공도, 주한미군의 주둔도,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실행도, 서해 북방한계선도 모든 것을 포기하고 벌거벗겨진 채 핵위협 하에 그대로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 ▲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이 27일 오전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갖고 있다. ⓒ사진=한국공동사진기자단
    ▲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이 27일 오전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갖고 있다. ⓒ사진=한국공동사진기자단

    다음은 이날 판문점에서 발표된 남북 정상간 공동선언문 전문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평화와 번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한결같은 지향을 담아 한반도에서 역사적인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뜻깊은 시기에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진행했다.

    양 정상은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음을 8천만 우리 겨레와 전 세계에 엄숙히 천명했다.

    양 정상은 냉전의 산물인 오랜 분단과 대결을 하루 빨리 종식시키고 민족적 화해와 평화번영의 새로운 시대를 과감하게 일어나가며 남북관계를 보다 적극적으로 개선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확고한 의지를 담아 역사의 땅 판문점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1. 남과 북은 남북 관계의 전면적이며 획기적인 개선과 발전을 이룩함으로써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잇고 공동번영과 자주통일의 미래를 앞당겨 나갈 것이다.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온 겨레의 한결같은 소망이며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의 절박한 요구이다.

    ⓛ 남과 북은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 자주의 원칙을 확인하였으며 이미 채택된 남북 선언들과 모든 합의들을 철저히 이행함으로 써 관계 개선과 발전의 전환적 국면을 열어나가기로 했다.

    ② 남과 북은 고위급 회담을 비롯한 각 분야의 대화와 협상을 빠른 시일 안에 개최하여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문제들을 실천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세워나가기로 했다.

    ③ 남과 북은 당국 간 협의를 긴밀히 하고 민간교류와 협력을 원만히 보장하기 위하여 쌍방 당국자가 상주하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개성지역에 설치하기로 했다.

    ④ 남과 북은 민족적 화해와 단합의 분위기를 고조시켜 나가기 위하여 각계각층의 다방면적인 협력과 교류 왕래와 접촉을 활성화하기로 했다.

    안으로는 6·15를 비롯하여 남과북에 다같이 의의가 있는 날들을 계기로 당국과 국회, 정당, 지방자치단체, 민간단체 등 각계각층이 참가하는 민족공동행사를 적극 추진하여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밖으로는 2018년 아시아경기대회를 비롯한 국제경기들에 공동으로 진출하여 민족의 슬기와 재능, 단합된 모습을 전 세계에 과시하기로 했다.

    ⑤ 남과 북은 민족 분단으로 발생된 인도적 문제를 시급히 해결하기 위하여 노력하며, 남북 적십자회담을 개최하여 이산가족·친척상봉을 비롯한 제반 문제들을 협의 해결해 나가기로 했다.

    당면하여 오는 8·15를 계기로 이산가족·친척 상봉을 진행하기로 했다.

    ⑥ 남과 북은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번영을 이룩하기 위하여 10·4선언에서 합의된 사업들을 적극 추진해 나가며 1차적으로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와 도로들을 연결하고 현대화하여 활용하기 위한 실천적 대책들을 취해나가기로 했다.

    2. 남과 북은 한반도에서 첨예한 군사적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전쟁 위험을 실질적으로 해소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해 나갈 것이다.

    ① 남과 북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으로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했다.

    당면하여 5월 1일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 행위들을 중지하고 그 수단을 철폐하며 앞으로 비무장지대를 실질적인 평화지대로 만들어 나가기로 했다.

    ② 남과 북은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어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고 안전한 어로 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실제적인 대책을 세워나가기로 했다.

    ③ 남과 북은 상호협력과 교류, 왕래와 접촉이 활성화 되는 데 따른 여러 가지 군사적 보장대책을 취하기로 했다.

    남과 북은 쌍방 사이에 제기되는 군사적 문제를 지체 없이 협의 해결하기 위하여 국방부장관회담을 비롯한 군사당국자회담을 자주 개최하며 5월 중에 먼저 장성급 군사회담을 열기로 했다.

    3. 남과 북은 한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하여 적극 협력해 나갈 것이다.

    한반도에서 비정상적인 현재의 정전상태를 종식시키고 확고한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역사적 과제이다.

    ① 남과 북은 그 어떤 형태의 무력도 서로 사용하지 않을 때 대한 불가침 합의를 재확인하고 엄격히 준수해 나가기로 했다.

    ② 남과 북은 군사적 긴장이 해소되고 서로의 군사적 신뢰가 실질적으로 구축되는 데 따라 단계적으로 군축을 실현해 나가기로 했다.

    ③ 남과 북은 정전협정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④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

    남과 북은 북측이 취하고 있는 주동적인 조치들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대단히 의의 있고 중대한 조치라는데 인식을 같이 하고 앞으로 각기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로 했다.

    남과 북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위해 적극 노력하기로 했다.

    양 정상은 정기적인 회담과 직통전화를 통하여 민족의 중대사를 수시로 진지하게 논의하고 신뢰를 굳건히 하며, 남북관계의 지속적인 발전과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향한 좋은 흐름을 더욱 확대해 나가기 위하여 함께 노력하기로 했다.

    당면하여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가을 평양을 방문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