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민주파 후보 에드워드 이우(姚松炎) 前의원 진영 간부인 쳉(鄭) 씨 인터뷰
  • 지난 3월 11일, 홍콩 입법회 보궐선거가 4개 선거구에서 실시됐다. 범민주파와 친중파가 2석씩 나눠가지는 결과가 나왔다.

    2016년 총선 후 취임 선서에서 반중 행동을 벌인 범민주파 및 독립파 의원 6명이 제명(2명은 현재 항소 중)된 데 따른 이번 선거는 당초 민주화 바람을 타고 범민주파의 4석 석권이 예상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범민주파의 완패나 마찬가지였다.

    홍콩의 선거는 속칭 ‘6:4 원칙’이 있다. 어떤 선거를 하든 범민주파와 친중파의 득표 비율이 최소한 6:4로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선거는 이변이었고, 범민주파가 승리한 2개 선거구조차도 3~7%차에 불과한 신승(辛勝)이었다.

    홍콩 현지 언론들은 이번 결과를 두고 2014년 우산 시위에 따른 민주탄압 분위기에 편승한 범민주파의 안이한 선거 전략과 일부 범민주파 및 독립파의 과격행동이 패배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그런데 선거 종반에 금품살포와 흑색선전이 난무하며 ‘사상 최악의 선거’라는 비판이 범민주파 쪽에서 제기됐다.

    이런 혼탁 양상은 과거 홍콩 선거에서 거의 없던 일이라고 언론들은 전했다. 필자는 이번 선거에서 1%차로 석패한 범민주파 후보 에드워드 이우(姚松炎) 前의원 진영 간부인 쳉(鄭) 씨를  만나 선거운동에 대한 자초지종을 들었다.

    필자: 이번 보궐선거가 사상 최악의 선거라는 비난이 있다. 이에 대해 설명해 달라:

    쳉: 이번 선거는 사실상 중련판(駐홍콩 중국인민정부 연락판공실)의 각본 감독에 의해 일부 정부기관과 언론 그리고 친중파 정당과 후보들이 연출한 관권선거라고 본다. 곳곳에서 금권선거가 자행됐고, 흑색선전이 난무했다. 이는 지금까지의 홍콩 선거에서는 거의 없던 일이며 명백한 불법이다.

    필자: 불법 사례를 들어 달라.

    쳉: 친중파의 불법 현수막과 벽보가 난무, 훼손되곤 했지만 그건 약과다. 어느 날 자원봉사자들과 유세를 위해 모였는데, 광동어(홍콩 공용어)가 아닌 복건어(중국 중동부 복건성 언어)를 쓰는 사람들 수십 명이 오더니 우리를 돕겠다고 했다. 외모로 보아도 명백한 중국인들이었다.

    중국인 여행객들이 간혹 선거운동을 돕는 일은 있었지만, 이렇게 많은 중국인들이 돕겠다고 온 것은 처음이어서 의아했다. 그런데, 곧 그들의 리더로 보이는 사람이 오더니, 잘못 왔다고 화를 내면서 친중파 후보 유세장으로 그들을 데리고 가는 것이었다.

    필자: 이런 일이 자주 있었나?

    쳉: 여러 번 있었다. (홍콩 공용어인) 광동어와 영어를 전혀 못하는 중국인들이 벙어리 상태로 선거전단을 나눠주는 일이 허다했다. 친중파는 그들의 지지 기반인 중국 각 지방의 홍콩 향우회를 통해 중국인들을 조직적으로 동원한 것으로 보인다. 범민주파 후보 진영에도 중국인 선거 운동원은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여행객이거나 자발적으로 도우러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필자: 중국인이 홍콩에서 선거운동을 하는 것은 홍콩법 혹은 (선거제도가 없는) 중국법 위반이 아닌가?

    쳉: 홍콩과 중국 양쪽 모두 이에 대한 명확한 규정은 없다. 중국인이 홍콩을 포함한 영외에서 중국 민주화 운동을 하는 것은 중국법 위반인건 맞다. 그러나 선거운동은 홍콩 내부 문제이지 중국과는 상관이 없다. 범민주파를 도운 중국인들은 중국에서 문제가 될 지도 모른다고 들었으나, 실제로 문제가 됐다고 들은 적은 없다. 반면 친중파를 도와도 중국에서 무사한 건 확실하다.

    필자: 이들은 순수한 자원봉사자들인가?

    쳉: 범민주파의 경우는 거의 그렇다. 일반적으로 애국주의 성향이 강한 중국인들이 자발적으로 우리캠프에 온 사실 자체가 진정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친중파의 경우 일부에게 금전적 대가가 있다고 들었다.

    필자: 그 예를 들어달라.

    쳉: 1인당 300~500 홍콩 달러(한화 약 4만 1,000원~6만 8,000원)가 건네졌다고 들었다. 복건성에서 온 그 사람들이 돈 준다니까 뭐하는지도 모르고 홍콩에 온 것 아닌가. 일반 선거운동원에게 금전을 지불하는 행위는 명백한 선거법 위반이다. 금권 시비를 피하기 위해 중국에서 현금을 직접 주거나 중국 내 계좌로 입금하는 수법을 썼다고 들었다. 이런 건 홍콩 당국이 추적할 수 없다.
  • 필자: 중국인 선거 운동원 숫자가 얼마나 되나?

    쳉: 정확히는 모르나 친중파의 전체 선거운동원 4~5,000여 명 중 수백 명은 되는 것으로 본다.

    필자: 다른 금권선거의 예를 들어달라.

    쳉: 친중파가 외곽단체를 통해 주로 노인들을 대상으로 무료 건강 검진권이나 경로잔치 초대권을 살포하는 식이다. 이 초대권의 잔치날은 선거 당일(홍콩은 선거 당일에도 선거운동이 가능하다)인데 12시에 점심먹고 친중파 후보 찍으라는 의미다. 친중파는 중국과 연관된 사업가들이 지지 기반이라 범민주파보다 재력이 있어 이런 일이 가능하다. 친중파가 득표력 열세에도 불구하고 유세장에 범민주파보다 항상 많은 청중을 동원하는 비결도 재력에 있다.

    필자: 이런 금권선거가 예전에는 없었나?

    쳉: 이번처럼 노골적이지는 않았다. 홍콩은 영국 통치 시절부터 ICAC(부패감시기구)가 선거부정을 엄격하게 감시해 왔다. 시민들의 의식수준이 높아 금권선거를 벌일 여건이 원래 없었다.

    필자: 이런 금권선거가 앞서 말한 중련판(駐홍콩 중앙인민정부 연락판공실)이 주도했다는 얘긴가?

    쳉: 그렇다. 이런 일을 초선인 친중파 후보 혼자 돈으로 해결했다고 믿기 어렵다. 이는 중련판이 기획한 관권선거의 일부분일 뿐이다.

    필자: 관권선거의 근거를 들어 달라.

    쳉: 범민주파의 에드워드 이우 후보는 2016년 총선에서 직능비례대표로 당선된 후 취임 선서문에 ‘행정 장관 직선제를 위해 투쟁한다’를 대입해서 낭독하다가 제명됐다. 보궐선거에서 그는 카우룬 웨스트(九龍西) 선거구의 범민주파 경선에서 후보로 선출 된 후 선거관리위원회가 등록 마감 당일까지 그에게 입후보 자격 심사결과를 통보하지 않았다.

    결국 심사 탈락에 대비해 경선 차점자가 부랴부랴 마감일에 등록했다가 등록 1시간 후 이우 후보가 적격 판정을 받자 차점자가 바로 후보 사퇴하는 촌극이 빚어졌다. 이러는 바람에 이우 후보의 선거홍보물 인쇄 등 선거 전략에 심각한 차질이 생겼고, 시간 부족으로 ‘낙하산 후보’ 비난까지 들어야 했다.

    반면 친중파 후보는 마감 일주일 전에 등록과 함께 적격 판정을 동시에 받아 선거운동을 일찍부터 조직적으로 전개할 수 있었다. 선관위의 이런 조치는 우연이 아니고 사전 계획된 것으로 우리는 본다.

    또한 친중파가 장악하고 있는 TV매체의 비협조도 관권선거의 한 예이다. 보통 선거 때는 후보자 TV토론이 매일같이 방송되지만 이번 보궐선거는 토론 중계가 현저하게 줄었다. 홍콩에서는 TV토론이 선거에 주는 영향이 크다. 범민주파 탄압 때문에 벌어진 보궐선거인 만큼 민주탄압이 이슈화 될 것을 우려한 나머지 친중파가 방송국에 압력을 넣은 것이다.

    그나마 선거 종반에 중계된 토론도 친중파가 범민주파 후보의 학생시절 행적을 문제 삼는 흑색선전을 유포하는 무대로 활용했다. 이게 원인이 되서 선거 막판 후보 유세에 상대방 선거운동원이 방해하러 몰려와 고성을 지르며 충돌하는 혼탁 양상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처음 보는 일이었다. 이 모든 것은 중련판의 각본 하에 유기적으로 일어난 일이지, 우발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필자: 중련판에 대해서 설명 해 달라.

    쳉: 사실상 중국 정부의 홍콩 총독부로 인식되고 있다. ‘홍콩 정부는 중련판의 허수아비’ ‘일국 양제 파괴기관’이라는 별칭이 있다(필자 注: 중련판은 홍콩의 영국 통치 시절 ‘신화통신사 홍콩분사’라는 이름으로 홍콩의 중국 영사관 역할을 담당했고, 2000년 현재의 이름으로 개명했다. 외교부 홍콩 특파원 공서, 인민 해방군 駐홍콩 부대와 함께 홍콩 주재 중국 정부 3대 기관 중 하나다).

    중련판은 예전부터 행정장관 선거 등 홍콩의 정치행사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해 왔다. 2014년 친중파 계열 정당의 모금파티에서 쟝샤오밍(張曉明) 당시 중련판 주임은 1,380만 홍콩 달러(약 18억 8,300만 원)를 한꺼번에 공개 기부한 일이 있다. 거액 정도가 아니고 외계인이 뿌린 것 같은 액수인데, 나중에 금권 선거하라고 준 돈이 아니겠는가. 이번에 친중파 후보의 공개된 선거비용만 약 300만 홍콩달러(약 4억 900만 원)이다. 이러니 친중파가 돈 걱정을 하겠는가. 이에 반해 우리 진영의 공식 모금액수는 약 30만 홍콩달러(약 4,090만 원)에 불과했다.

    필자: 중국은 선거제도가 없어서 선거판을 이해하는 중국 고위 관료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이들이 홍콩에 와서 관권선거를 기획할 능력이 있다고 보나?

    쳉: 1997년 주권반환 이후 중련판이 선거판을 서서히 배워나가서 이번 보궐선거 때 그간 ‘갈고 닦은 실력’을 발휘했다고 보면 된다. 자금 지원, TV매체 동원부터 흑색 선전같은 세부사항까지 하나의 목표를 향해 치밀하게 기획했다고 본다. 범민주파의 상황오판도 있었지만, 중련판의 이런 각본 없이는 범민주파와 친중파의 ‘6:4 원칙’이 깨지는 이변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진 것은 뼈아프지만, 그보다 동아시아 최고의 청렴도를 자랑하던 홍콩에 앞으로 ‘더러운 선거’가 점점 확산될까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