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안, 자유민주 기본질서 건드리지 말아야”...장영수 교수 등 헌법 전문가들 ‘정부안’ 비판 이어져

한반도선진화재단 토론회서 헌법·경제학자들 분야별 평가, “사회주의적 색채 너무 짙다”

정호영 기자 프로필 보기 | 최종편집 2018.04.14 12:32:18
▲ 심재철 국회부의장과 한반도선진화재단(이사장 박재완)이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정부 헌법 개정안의 문제점과 대안'을 주제로 정책 토론회를 열고 있다. 왼쪽부터 박인환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용환 한선재단 사무총장, 심재철 국회부의장, 신도철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현출 건국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지난 3월 26일 문재인 정부가 발의한 '대통령 개헌안'을 두고 정치권과 학계 반발이 거세다. 정부 개헌안을 평가하고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학술세미나에서 헌법·경제학 전문가들의 쓴소리가 쏟아졌다.

심재철 국회부의장과 한반도선진화재단(이사장 박재완)은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정부 헌법 개정안의 문제점과 대안'을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심 부의장은 "문재인 정부는 개헌을 추진하면서 '자유'를 빼겠다고 시도하거나 국민 합의 없이 편향된 이념을 삽입하고 있다"며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좌파적 시각을 비롯해 최저임금 대폭인상 등 시장경제질서를 교란하며 국민 삶을 파탄시키고 있다"고 했다.

박재완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은 "3월26일 발의한 정부 개헌안은 전면 제정 수준의 내용을 담고 있다"며 "특히 헌법의 큰 틀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원칙의 훼손이 우려된다는 비판이 있다"고 말했다. 박 이사장은 "과거 바이마르 헌법이 히틀러의 전제정치를 정당화한 선례가 있다"며, 전문가들이 개헌안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두고 절차를 진행할 것을 당부했다.

이날 토론회 발제를 맡은 장영수 고려대 교수와 신도철 숙명여대 교수는 각각 자유민주주의적 관점, 시장경제적 관점에서 정부 개헌안을 평가하고 대안을 제시했다. 이현출 건국대 교수, 최준선 성균관대 교수, 박인환 건국대 교수가 토론자로 나섰다.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장영수 교수는 "헌법은 국가공동체의 근간을 정하는 최고법"이라며 "개헌은 법률 개정과는 비교할 수 없는 변화를 가져오는 일이며, 엄격한 검토를 거쳐서 신중하게 추진돼야 한다"고 했다.

장 교수의 주장처럼 헌법 개정은 국가적으로 미치는 파장이 크기 때문에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이상의 찬성을 필요로 한다. 개헌안을 두고 야당이 강력 반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청와대는 지상파 방송을 동원해, 개헌안 주요내용 발표를 3일 연속 TV생중계했다.

다만 자유한국당이 116석의 의석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여야 합의 없는 개헌안은 국회 통과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방선거를 의식한 포퓰리즘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장 교수는 "헌법은 함부로 개정해서도 안 되지만, 개정이 필요할 때 개정하지 못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라며 "새 헌법의 필요성에 국민들과 여야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점은 개헌이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는 10차 개헌을 통해 달성해야 할 가치로 △시대변화에 맞는 헌법의 필요성 △제왕적 대통령 폐해 방지 △현행 헌법 독소조항 및 문제점 해소 등을 꼽았다. 1987년 당시의 5년 단임제는 장기집권 또는 독재 우려에 대한 여야 및 국민들의 공감대로 도입됐지만, 현 상황에서는 레임덕, 임기 말 무책임성 같은 폐해가 대두되고 있다고 장 교수는 지적했다.

장 교수는 개헌에서 건드려선 안 될 근본가치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강조했다. '근본가치'란 "인류 역사를 통해 검증된 가치로, 어느 한순간의 다수가 부정하거나 변경할 수 없는 정의"라고 장 교수는 설명했다. 그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며 "헌법의 기본이념 자체를 부정한다면 이미 국가 자체의 기초가 부정되는 것과 같다"고 했다.

대통령 개헌안은 전문(前文)과 11개 장, 137개 조문, 부칙 9개 조문으로 구성돼 있다. 전문과 11개 장, 130개 조문, 부칙 6개로 구성된 현행헌법의 규모나 틀에서 큰 차이는 없다.

그러나 이번 개헌안은 개별 조항의 변화 폭이 상당하다는 게 장 교수를 포함한 다수 헌법학자들의 견해다. 몇 개의 조문을 묶어 하나로 만든 조문도 있고, 새로운 항을 신설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대통령 개헌안 17조는 현행헌법 16~18조를 한 조항으로 묶었고, 1개항으로 구성됐던 71조는 6개항으로 확장됐다.

장 교수는 "문제는 굳이 헌법에 두지 않아도 되거나, 헌법에 두지 않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볼 수 있는 조항을 다수 헌법에 올려두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개헌안에는 현 정부의 성향을 보여주는 것도 많고, 일종의 과시처럼 느껴지는 것들도 있다. 이러한 조항을 헌법에 담는 것은 헌법의 본질에 맞지 않으며, 헌법에서 배제하고 법률로 규정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헌법만능주의에 빠져서 어떤 사항이든 헌법에 명시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고 의미 있는 것으로 착각할 경우, 사회적 기본권을 세계 최초로 규정했던 1919년 바이마르 헌법처럼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장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바이마르 헌법'이 채택한 '사회적 기본권' 조항은 자유민주주의라는 근대 헌법의 핵을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해, 독일의 민주주의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헌법이 헌법가치를 파괴하는’ 모순이 벌어지면서, “민주주의를 훼손 혹은 파괴하는 민주주의까지 보호해선 안 된다”는 ‘방어적 민주주의’론이 등장했다. 1949년 독일 기본법은 이런 폐해를 인정, 사회적 기본권 관련 조항을 전부 삭제했다.

장 교수는 "개헌안을 보면, 법률로 정하면 충분한 것을 굳이 헌법에 명문화하려는 게 적지 않다. 그들 중 상당수는 진보 색깔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며, "진보정권의 개헌안이라 그렇다면, 보수정권이 들어서면 또 헌법을 바꿔야 하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5·18, 부마항쟁 등) 헌법 전문(前文)에 역사적 사건을 나열하는 것도 논란 대상이지만, 33조 3항의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평가기준과 관련해 법률로 구체화해야지, 헌법에 규정할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 33조 4항 노동조건, 128조 2항의 토지 공공성 제한 규정도 마찬가지다."

장 교수는 △이념 편향성을 극복한 국민 공감대 형성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 극복 및 분권 실현 △21세기 대한민국 발전을 위한 협치 개헌안 등을 바람직한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헌법은 기본적 방향을 규정하고 세부 사항은 법률로 정해야 한다. 헌법 조항의 과도한 구체화는 헌법의 유연한 해석을 곤란하게 만들며 결국 헌법 수명 자체를 단축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장 교수는 분권과 협치에 대해서도 뼈있는 대안을 제시했다.

"민주화 이후 30년을 보면 결국 대통령의 승자독식 구조다. 여대야소의 경우 여당 통제가 불가능하며 야당은 극한투쟁에 나서고, 여소야대의 경우 야당이 여당의 발목을 잡아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얘기가 나온다. 대통령이 실패해야 야당이 성공하기 때문이다. 제도 자체가 선의의 경쟁이 불가능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누가 더 못하는가가 아니라) 누가 더 잘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협치이며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분권이다.“

▲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발제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시장경제적 관점'에서 대통령 개헌안을 살핀 신도철 숙명여대 교수는, 대통령 개헌안 '제9장 경제' 부분을 통째로 삭제할 것을 주문했다.

신 교수는 "지금 한국에 필요한 개헌은 경제자유를 위한 개헌임에도, 문재인 정부는 상생, 공정, 사회적 경제 등 미사여구를 앞세워 오히려 국가개입을 강화하는 개헌안을 내놓았다"고 비판했다.

문재인 정부의 노동 정책은 △공공일자리 확대 △비정규직 정규직화 △최저임금 대폭 인상 △근로시간 단축 △복지예산 증대 등으로 강성노조·노동계 입장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 신 교수는 "하나같이 반(反)자유시장, 국가개입적 정책"이라며 "대통령 개헌안은 이런 정책 기조와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평등이념에 기초한 국개 개입 확대는 국가경제의 활력을 크게 떨어트린다. 열심히 일하고 아이디어를 개발토록 하는 인센티브 시스템이 회복돼야 한다. 경제가 발전할수록 시장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현실에서 보면 이번 개헌안은 퇴행적이며 시대착오적인 이념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속칭 진보정치권과 언론을 통해 국민들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제관념들, 예를 들어 △중소기업 및 골목상권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의 대기업 규제 △지역 간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한 균형발전 정책 △교육기회 평등을 위한 평준화 교육 △농민 및 노동자 보호정책 △서민들에 대한 복지 확대 등에 대해서도 신 교수는, “착취와 소외 없이 다함께 잘 사는 사회를 만들자는 사회주의 평등이념과 맞닿아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고 했다.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노동법은 전투적 기득권 노조의 옹호 수단으로 전락했다. 비자발적인 정규직이 양산됐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세계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교조적인 수도권 규제는 외국인 투자를 가로막고 국내 기업을 해외로 몰며 국가경쟁력을 저하시키고 있다. 골목상권 보호를 위한 각종 규제는 선진 유통기법의 도입을 막고 소비자 불편을 가중시키며 경쟁력 있는 기업의 탄생과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 복지는 지금 상태로도 지속가능하지 않은데 확대의 목소리만 들린다."

신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 개헌안은 국가개입의 강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는 경구가 떠오른다"고 비판하며, △경제민주화 개념 및 토지공개념 강화 △주거권 및 건강권 신설 △동일노동 동일임금 및 노사 대등결정원칙 도입 △노동3권 적용대상 확대 등을 대통령 개헌안의 독소 조항으로 꼽았다. 

이어 그는 "제9장 경제 부분을 삭제하는 대신 '제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서 '국가는 개인의 경제상 자유와 창의를 존중할 것, 모든 국민은 계약의 자유를 가지고 국가는 자유로운 거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할 것'을 명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순기능을 설명하면서, 사회주의적 색채가 짙게 밴 대통령 개헌안이 안고 있는 문제를 거듭 강조했다.

“사유재산제도와 계약자유의 원리가 기초로 작동하면서 나라를 발전과 번영으로 이끈다. 이를 위한 헌법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통치자의 자의적 권력행사로부터 개인의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다."

토론자로 나선 3명의 교수도 발제자와 같은 의견을 나타냈다. 새 헌법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정부의 과도한 시장개입과 이념 편향,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해서는 비판적 입장을 취했다.

이현출 건국대 교수는 "정치권의 타협을 이루기 위해서는 대통령 발의보다는 국회가 주체가 돼 여야합의로 발의해야 한다"며 "기본권, 정부형태, 지방분권 등 여야합의 가능성 및 국민 공감대가 높은 부분에 집중하는 전략이 주효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대통령중심형 분권제(이원정부제)에서 대통령의 권한으로 논의된 외교, 통일, 국방에 기획재정 분야를 추가하면 대통령, 총리간 권한 불균형 문제가 해소될 수 있으며, 이러한 권한을 단계적으로 교차시켜 협치를 제도화하는 방안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준선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헌법에 경제조항을 두고 있는 나라는 선진국 중에서 찾기 어렵다"며 "경제에 대해서는 국가가 개입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최 교수는 "헌법 경제조항은 자유시장경제를 바탕으로 기업가 정신을 고취시키고, 노력이 정당하게 보상받는 정신과 이상을 담으면 충분한데, 개헌안을 보면 그런 취지를 벗어나 이미 서구에서 실패한 사회주의 경제를 실험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며, "지나치게 자세한 헌법 조항도 최고법으로서의 헌법 위상을 격하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제56조 국민발안제’, '제126조 국토와 자원의 지속 가능성 확보의무 강화'를 반시장경제적 조항으로 소개했다. 이들 조항이 현실화된다면 “경제를 망치는 표퓰리즘적 대기업 규제법안이 범람하고, 국민들의 사유재산이 본질적으로 침해당할 수 있다”는 것이 이유다.

개헌안 제130조에 명시된 '사회적 경제'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최 교수는 "시민참여를 바탕으로 공익적 가치를 창출하는 경제활동을 말한다고 하지만, 개념 자체가 모호하고 범위도 명확하지 않다"며 "헌법에 자유민주주의 경제체제를 표방하면서 사회적 경제를 동시에 강조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평가했다.

박인환 건국대 교수는 "대한민국의 현행 대통령제는 미국 대통령제보다 더 많은 권력이 대통령에게 집중돼 있어 제왕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며 대법원, 헌법재판소, 감사원 등 주요 기관장에 대한 대통령의 임명권을 제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와 함께 박 교수는 소모적 이념 갈등을 막고 국가 정체성을 보호하기 위한 방안으로 '헌법수호청' 설치를 제안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이종배, 전희경 자유한국당 의원 등 약 30여명의 의원을 비롯해 학계, 시민단체 대표 등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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