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과 만남 자체에는 ‘조건’ 없지만 만나서 요구할 조건과 의제들은 계속 거론돼
  • ▲ 오는 5월 트럼프 美대통령과 김정은 간의 회담이 열릴 예정이다. 이 회담에서 트럼프 美대통령이 다뤄야 할 의제에 대한 제안이 계속 나오고 있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오는 5월 트럼프 美대통령과 김정은 간의 회담이 열릴 예정이다. 이 회담에서 트럼프 美대통령이 다뤄야 할 의제에 대한 제안이 계속 나오고 있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5월에 이뤄질 것이라는 트럼프 美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간의 회담 개최에는 전제 조건이 없다. 이는 미국 정부가 여러 차례 확언한 사실이다. 그러나 트럼프 美대통령이 본 회담에서는 김정은에게 이런 요구를 해야 한다는 제안은 쏟아져 나오고 있다. 트럼프 美대통령이 이런 제안을 모두 받아들일지는 알 수 없지만 핵심적인 제안들만 반영한다고 해도 김정은은 난감함 입장에 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핵심적인 제안이 핵무기 및 탄도미사일을 검증가능하게 완전히, 되돌릴 수 없게 폐기하는 것, 화학무기와 생물학 무기도 핵무기와 같이 폐기하는 것, 북한 정치범 수용소를 폐지하고 수감자들을 석방하는 것, 외국인을 비롯해 납북자들을 모두 고국으로 돌려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핵무기뿐만 아니라 대량살상무기는 모두 폐기해야

    북한의 핵무기 및 탄도미사일과 관련 시설까지 모두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은 美정부가 거듭 밝힌 내용이다. 최근 美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에 내정된 존 볼튼 前유엔 대사는 북한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및 관련 시설 등을 舊소련 국가 또는 리비아 방식으로 완전히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볼튼 前대사가 주장하는 방식은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관련 시설을 상대 국가에 맡기지 않고, 미국이 직접 관련 무기와 시설을 찾아낸 뒤 모두 美본토로 실어 와서 폐기한다는 의미다. 김정은에게 이런 방식은 북한의 모든 곳을 미국에게 개방한다는 의미여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내 정치권과 안보전문가들은 핵무기와 함께 다른 대량살상무기의 폐기도 회담 의제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지난 23일 ‘미국의 소리(VOA)’ 방송은 테드 요호 美하원 아시아태평양 소위원장의 인터뷰를 보도했다. 테드 요호 美하원의원은 인터뷰에서 “미국은 북한과의 회담에서 핵무기뿐만 아니라 화학무기 문제도 심각하게 다룰 것”이라고 밝혔다.

    “대북제재 완화와 관련해 미국이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의 조건들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있느냐”는 질문에 요호 美하원의원은 “많은 것들이 있을 것”이라면서 “미국은 아직 북한의 화학무기를 다루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요호 美하원의원은 “저희는 북한이 5,000톤 이상의 화학무기를 가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면서 “이런 모든 문제들이 (회담에서) 고려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요호 美하원의원뿐만 아니라 북한의 완전한 핵폐기를 주장하는 전문가들 또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핵무기뿐만 아니라 화학무기, 생물학무기 같은 대량살상무기 폐기를 요구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 ▲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서 탈출한 사람들이 그린 그림. ⓒ뉴데일리 DB.
    ▲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서 탈출한 사람들이 그린 그림. ⓒ뉴데일리 DB.
    정치범 수용소 폐지 포함해 북한인권문제 거론해야

    미국 내에서는 물론 해외에서도 트럼프 美대통령에게 요구하는 회담 의제도 있다. 바로 북한인권문제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지난 21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북한 정치범 수용소 해체를 거론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당시 ‘자유아시아방송’은 “북한인권 전문가들은 북한이 (미국과의 회담에서) 미국인 몇 명을 풀어주는 식이 아니라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완전 철폐를 포함해 북한 주민들의 열악한 인권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면서 몇몇 북한인권 전문가들의 주장을 인용했다.

    그렉 스칼리튜 美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의 회담이 북한인권 문제를 거론하기에 중요한 기회”라며 “정치범 수용소를 빨리 해결해야 김씨 일가와의 대화도 어느 정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비인간적인고 반인륜적 범죄를 자행하는 정권과 어떻게 협상을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美워싱턴 D.C.의 로펌 ‘폴리 혹(Foley Hoag)’의 토마스 바커 변호사는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게 핵포기뿐만 아니라 정치범 수용소의 철폐를, 그것도 완전하고도 검증가능한 방법으로 철폐하고 모든 정치범의 석방을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20만 명 안팎으로 알려진 정치범들의 전원 석방과 함께 북한 주민들에게 서구식 인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하면 김정은이 받아들일 가능성은 매우 낮아진다.

    이와 유사한 요구는 최근 폐막한 유엔 인권이사회 총회에서도 제기됐고, 여기에 EU와 일본, 호주 등 대다수 나라들이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 ▲ 2017년 11월 방일 당시 일본인 납북자 가족들과 만난 트럼프 美대통령.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17년 11월 방일 당시 일본인 납북자 가족들과 만난 트럼프 美대통령.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납북자, 일본만의 문제 아니라 국제적 문제

    마지막은 납북자 석방 문제다. 이 주제는 일본 정부가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난 25일 日교도통신은 “고노 다로 日외무장관이 3월 중순 미국을 방문해 5월로 예정된 美-北회담의 전제 조건으로 중거리 탄도미사일 포기와 일본인 납북자 석방 문제를 거론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美정부는 비현실적이라며 난색을 표했다”고 보도했다.

    日교도통신에 따르면, 고노 日외무장관은 방미 중에 마이크 폼페오 美국무장관 내정자, 제임스 매티스 美국방장관, 존 설리번 美국무부 부장관 등을 만나 일본 정부가 희망하는 조건을 전달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美-北 정상회담 이전에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한반도 비핵화, 일본 영토에 다다를 수 있는 중거리 탄도미사일 폐기, 국제원자력에너지기구(IAEA) 사찰 수용, 일본인 납북자 문제 해결, 화학무기 폐기 등의 약속을 북한으로부터 받아내야 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日교도통신에 따르면 美정부는 고노 日외무장관의 설명을 이해한다고 답하면서도 美-北 회담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우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통신은 “오는 4월 중순 방미하는 아베 신조 日총리 또한 트럼프 美대통령에게 이 같은 생각을 전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美정부 또한 백악관 정례 브리핑을 통해 “북한과의 회담에서 비핵화와 한미연합훈련 수용 이외의 전제 조건을 내세울 계획은 없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그러나 日교도통신의 보도는 “미국이 일본의 요청을 회담 전제조건으로 내세우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것이지 회담의 의제로도 삼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다. 특히 일본의 요청 가운데 납북자 문제는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 중국, 프랑스, 이탈리아, 말레이시아 등도 연관이 있는 문제다.
  • ▲ 6.25전쟁 이후 납북당한 사람들의 가족들은 여전히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6.25전쟁 이후 납북당한 사람들의 가족들은 여전히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납북자 문제 가장 큰 피해자는 한국…17만 6,000여 명

    2011년 5월 12일(현지시간) 美북한인권위원회는 워싱턴 D.C 소재 내셔널 프레스 클럽에서 ‘납북자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북한 정권에게 납북당한 사람이 전 세계적으로 18만 2,000여 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6.25전쟁 당시 8만 3,000여 명을 강제로 끌고 갔고, 1950년대 후반부터는 ‘북송 사업’을 통해 조총련 소속 재일교포 등 9만 3,000여 명을 북한으로 끌어들인 뒤 탄압했다. 6.25전쟁 이후 납북된 한국인 수도 500명이 넘는다고 밝혔다.

    북한은 이들 외에도 일본인 20여 명, 조선족으로 추정되는 중국인 200여 명, 프랑스인 4명, 레바논인 4명, 말레이시아인 4명, 이탈리아인 3명, 네델란드인 2명, 태국, 루마니아, 싱가포르, 요르단, 기니 등에서 각각 1명씩을 납치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한다.

    이처럼 북한 정권에 의해 납북당한 사람의 문제는 일본보다는 오히려 한국과 중국이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문제다. 게다가 유럽과 동남아, 중동 국가도 피해 국가이므로 국제사회의 여론을 등에 업고 김정은 정권을 압박하기에 좋은 주제다.

    트럼프 美대통령이 북한과의 회담에서 이런 요구 조건들을 내놓는다면 김정은이 단 하나라도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이 미국과의 회담을 깨버리면 트럼프 美대통령은 문재인 정부를 향해 “북한이 비핵화를 한다고 당신네가 말했지 않느냐”고 책임을 물을 것이고, 그 이후 미국의 대북전략은 한국을 ‘스킵(Skip)’한 채 매우 강경하게 나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