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 신분 검찰 출석 "마지막이길 바란다"…'퇴임은 곧 피의자' 대통령史 굳어지나
  • ▲ 14일 오전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한 이명박 전 대통령.ⓒ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14일 오전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한 이명박 전 대통령.ⓒ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는 5번째 전직 대통령이다.

    이명박(77) 전 대통령이 검찰 포토라인에 섰다. 문재인 정부 출범 309일만이다.

    '퇴임은 곧 피의자'라는 불명예 공식이 노무현 전 대통령 이래로 굳어지는 모양새다. 이대로라면 우리 대통령사(史)에서 오바마처럼 박수 받으며 떠나는 대통령은 찾아볼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14일 오전 9시 22분 서울중앙지검에 도착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참담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으며 (정치보복이) 역사에서 마지막이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현장에서 굳은 표정으로 읽어내려간 입장문은 6문장(222자)으로 짧막했다. 

    "저는 오늘 참담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무엇보다도 민생경제가 어렵고,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환경이 매우 엄중할 때 저와 관련된 일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또한 저를 믿고 지지해주신 많은 분들과 이와 관련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분들에게도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물론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습니다마는 말을 아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있습니다. 다만 바라건대 역사에서 이번 일로 마지막이 됐으면 합니다. 다시 한 번 국민 여러분들께 죄송스럽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지난 1월 17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며 검찰 수사를 반박했던 내용보다는 다소 톤다운된 뉘앙스였다.

    입장문을 읽고 검찰 청사 내부로 들어간 이명박 전 대통령은 뒤따라와 뇌물 혐의를 묻는 기자들에게 "여기(계단) 위험해요"라며 몰려드는 취재진의 안전을 챙기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이날 검찰 소환에 앞서 사저를 찾은 측근들에게 "내가 잘할 테니 용기를 잃지 말고 잘 대처하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저에는 김영우ㆍ주호영ㆍ권성동ㆍ이재오ㆍ맹형규ㆍ안경률ㆍ최병국ㆍ류우익ㆍ임태희ㆍ정정길ㆍ하금열ㆍ김두우ㆍ김효재ㆍ이동관 등 친이계 핵심 인사들이 모였다. 검찰청까지 가는 길에는 맹형규 전 행정안전부 장관과 김영우 자유한국당 의원이 동행했다.

    김영우 의원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그동안 문재인 정권은 이 전 대통령을 검찰 포토라인에 세우기 위해서 쉼없이 달려왔고 오늘 그 치졸한 꿈을 이뤘다"고 말했다.

    김영우 의원은 이어 "이 자리에서 정치보복 또는 적폐청산에 대해 언급하지 않겠다. 정치보복을 이야기한들 바위에 계란 치기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정치적 비극이 더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오전 자유한국당 회의에서도 김성태 원내대표는 "정치보복이라 말하진 않겠지만 2009년 노무현의 비극으로부터 이렇게 된 측면도 완전히 부정할 순 없다"고 에둘러 검찰 조사를 비판했다.   

    현재 이명박 전 대통령은 100억원대의 뇌물수수,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직권남용, 조세탈루 등 20여개의 혐의를 받고 있다.

    먼저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대보그룹 등으로부터 총 34억원의 불법자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국가기록원에 넘겨야 하는 청와대 문건을 다스 비밀창고로 빼돌린 혐의, 부동산과 예금 등을 차명으로 보유해 세금을 탈루한 혐의도 조사 대상에 올랐다.

    검찰은 또 삼성전자가 대납한 '다스 미국 소송비 60억원'을 이명박 전 대통령이 받은 뇌물로 보고 혐의 소명을 요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검찰은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을 구속기소했다.

    검찰은 이명박 전 대통령을 조사한 후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하지만 사실상 이명박 전 대통령을 각종 뇌물수수의 주범으로 못박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검찰이 준비한 질문지가 120여 페이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조사는 15일 새벽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검찰의 시나리오대로 조사가 흘러갈지는 미지수다.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은 문제의 핵심으로 꼽히는 뇌물 혐의와 관련, "공소시효(특가법상 10년)가 지났다"는 논리를 펼 것으로 보인다. 자신들이 받은 금품은 뇌물이 아니라 정치자금에 가깝다는 주장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 측 관계자는 "2007년에는 이 전 대통령이 당선 확정 이전이라서 공무원에게만 해당되는 뇌물 혐의를 적용할 수 없다"고 언급했었다. 정치자금법의 공소시효는 7년으로 이미 만료된 상태다.

    검찰은 2007년 받은 돈에 대해 사전수뢰 혐의를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지만, 법조계 내부에서는 당선 전에는 사전수뢰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의견이 적지 않아 치열한 법리 다툼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