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얼 교수, 경제사적 관점에서 50~60년대 산업화 '새로운 해석' 제시
  • 제76회 이승만 포럼 강연자 명지대 김두얼 교수 ⓒ뉴데일리 공준표 기자
    ▲ 제76회 이승만 포럼 강연자 명지대 김두얼 교수 ⓒ뉴데일리 공준표 기자

    이른바 ‘한강의 기적’의 단초가 된 1960년대 고도 경제성장이, 1950년대 이승만 정부의 경제정책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학계의 연구결과가 나왔다.

    박정희 대통령 집권기 이뤄진 눈부신 산업화와 경제발전의 밑바탕에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밑그림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김두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20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제76회 '이승만포럼'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김두얼 교수는, 1960~80년대의 경제발전을 ‘군사정권이 추진한 수출주도 경제 정책의 결과’로 보는, 주류 역사학계의 통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초중고 교과서나 기존 학자들의 연구에 두루 나타난 통념은, 오로지 1960년대 군사정권의 주도 아래, 수출지향적인 정책이 시행됐고 산업화가 이뤄졌다고 평가하지만, 이런 사관(史觀)의 시각에서 본다면, 이승만 대통령이 집권한 1950년대는 ‘암흑시대’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경제 성장 첫 시작은 1950년대”

    김두얼 교수는 실증적 경제 데이터를 제시하며 주류학계의 통설을 반박했다. 그는 한국은행과 통계청이 발표한 '1950년대 경제성장률, 연평균 전력생산률, 1인당 GDP 증가율' 자료를 근거로 “1950년대 경제 성장률이 1960년대보다 비교적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국내 경제는 분명히 ‘성장’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의 주장대로 1950년대 '경제성장률'은 평균 5.3%를 기록했다. 김 교수는 “학계에서는 국가가 3% 성장률만 유지해도 경제대국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50년대의 경제성장률은 결코 낮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한국 경제의 발전이 1950년대 이미 싹을 틔웠다는 사실은, 전력생산량 데이터 분석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1950년대 전력생산량은 13.1%로, 60년대와 큰 차이가 없다.

    실증적 경제 지표를 검토한 김 교수는 “우리나라의 고도성장이 시작된 시기는 이미 널리 알려진 대로 1960년대 전반임을 확인할 수 있으나, 지속적 경제성장이 시작된 시기는 1950년대 중엽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설명했다.

  • 한국 전쟁 이후 전력생산량, 실질 GDP 성장율 ⓒ통계청, 한국은행
    ▲ 한국 전쟁 이후 전력생산량, 실질 GDP 성장율 ⓒ통계청, 한국은행


◆“산업화의 출발점 역시 1950년대로 보는 것이 적절”

기존의 통설적 견해는 우리나라 산업화의 시작점을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행된 1960년대로 본다. 경제성장을 정치적 기준으로 분석하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이를 반박해 “50년대에도 60년대와 같은 산업화가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산업화 진행도를 나타내는 대표적 수치인 제조업생산지수, 경공업-중공업 산업생산증가율, 제조업종업사증가율을 제시했다.

실제로 이들 경제지표를 보면, 한국 경제는 50년대부터 뚜렷한 성장세를 보인다. 생산지수는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전반이 거의 같은 수준을 나타냈다.

특히 국제연합(UN)이 발표한 경공업·중공업 생산증가율의 경우 연평균 20%에 근접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제조업 종업원 수도 1950년대와 1960년대를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수치가 비슷하다. 김 교수는 “1950년대부터 산업화가 지속적으로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했다.

  • 1950년대 중공업·경공업 산업생산률, 한국이 가장 높다 ⓒ국제연합(UN)
    ▲ 1950년대 중공업·경공업 산업생산률, 한국이 가장 높다 ⓒ국제연합(UN)


    ◆ 1950년대도 1960년대 못지않게 ‘수출지향적’이었다

    김두얼 교수는 박정희 대통령 정권 시절에 이르러 비로소 수출지향적 경제정책이 추진됐으며, 그 이전에는 우리 경제가 수출 능력 자체를 갖고 있지 못했다는, '통설'이 가진 오류를 지적했다.

    그는 “GDP대비 수출비중, 제조업수출지수 등 수출 관련 경제지표가 1960년대 들어 급격히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1950년대에도 해외진출을 시도했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그 예로 방직산업의 해외 진출을 꼽으면서, "6.25 전후 복구시기 미국의 원조가 민간 사업부분으로 흘러들어가 내수를 튼실하게 키웠고, 1960년대 수출지향정책의 밑거름으로 작용했다"고 평가했다.

  • 1950년대 무역관련 정책 도입시기 ⓒ최원오(2010) '한국에서 수출지향공업화 정책의 형성과정'
    ▲ 1950년대 무역관련 정책 도입시기 ⓒ최원오(2010) '한국에서 수출지향공업화 정책의 형성과정'


    ◆1950년대, 수출 진흥 법제도 제정

    김두얼 교수는 "수출확대를 위한 제도가 도입된 시점을 확인해보면 박정희 대통령의 정책은 1950년대 이승만 정부가 추진한 정책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수출을 장려하기 위한 법제는 대부분 1950년대 만들어졌다. 대표적으로 수출보상금제, 수출장려보조금제, 수출진흥기금융자법 등은 각각 1955년, 1956년, 1959년 도입 또는 제정됐다.

    김두얼 교수 연구결과의 결론은, 고도 경제성장을 이룬 박정희 대통령의 수출주도 경제정책을, 이승만 대통령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적 변화에 따라 경제성장을 분석한 기존연구와 달리 김 교수의 '경제사'(經濟史) 연구는, 경제적 지표에 집중해 현상을 설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번 연구는 ‘발전론’ 학자인 로스토우(Rostow)나 쿠즈네츠(Kuznets)의 학풍을 따랐다. 경제학에서의 ‘발전론’은 정권 또는 정책의 변화보다 경제적 변수를 조망한다.

    연구 배경에 대해 김두얼 교수는 “최빈국이었던 한국이 이룬 경제성장을 올바르게 바라보자는 목표를 가지고 연구에 임했다고”고 밝혔다.

    김 교수는 UCLA에서 ‘19세기 미국의 경제’를 분석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UC Davis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을 거쳐 명지대 경제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번 연구 결과는 지난해 12월 한국연구재단 등재학술지(KCI)인 '경제발전연구'에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