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간 '충호' 37호(2017 신년호) 전재>



    지식과 재산과 재주와 지위를 어디에 쓸 것인가
    ‘쓸모있는 얼간이’와 ‘무정형(無定形) 공작’

       이 덕 기 / 자유기고가

      북한의 핵실험 성공이나, 장거리미사일 또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의 시험 발사
    소식이 들리면 왠지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그러다가도 신문이나 TV에서 “북한 고위층의 잇단 탈북” 소식을 접하면, 소화 불량과 원인 모를 두통(頭痛) 증세가 온다.
    “대북 선제[예방] 타격”이라는 단어에는 머리카락이 쭈뼛 서고, 가슴이 타들어가는 분노가 솟구친다. 이 나라 남해안을 태풍이 휩쓸고 지나가면 인재(人災), 특히 ‘대통령 탓’이라고 성토하지만, 북한에서 수해(水害)가 났다 하면 “당장 쌀을 보내야 한다!”고 길길이 날뛴다.

  •   이 나라에는 이런 증상을 보이는 군상(群像)들이 꽤 많다.
    상당수는 많이 배우고, 가질 만큼 가졌고, 그럴듯한 사회적 지위·명망을 누린다. 자신이 외국[대부분 미국]에서 유학했거나, 자식들이 유학·이민·취업 등을 위해 미국 또는 유럽에 머무는 경우도 허다하다.

      지난 시절 ‘천안함’ 폭침이 북한의 도발로 밝혀지는 과정에서 “[미국이 폭파하고 남한 정부가 조작한] 진상 규명에 나선 개인들의 헌신, 누리꾼과 익명의 과학자들의 호응이 있었다... 천안함에 대한 충분한 증거도 없이 북한의 소행으로 단정해서 국제사회까지 가지고 나갔으니, 그건 우리가 [북한에] 미안하다고 해야 한다.”고 주장한 학자가 있었다.

      또한 “일부 탈북자 집단의 도발적 반북(反北) 행위를 당국이 묵인하거나 음성적으로 지원하는 양상은 개탄해 마땅하다.”는 지적도 했다.
      미국의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철학 박사를 취득한 문학평론가이며, 각종 선거 때마다 수시로 ‘원탁회의’를 구성하여 정치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정부의 조사 결과를 지켜봤지만, 0.0001%도 납득할 수 없었다... 이건 사기다. 세상이 허위로 돌아가고 있다.”고 소리를 높였던 이른바 ‘철학자’는 아주 독특하다. TV방송에 출연해서 입에 게거품을 물고 중국의 고전을 강의하는 게 특기이다.

      북한 주민들의 참상(慘狀)에 대해 “국가 최고지도자에게 모든 걸 책임지라고 하는 것은[문제가 있다]... [헐벗고 굶주리는 실상을] 파편적으로 들려오거나 소문으로 알 수가 없죠... 일일이 지적해서 남북관계에서 무슨 기여를 합니까?”라고 되묻는다. 그러면서도 1970, 80년대에 왜 남녘 민중의 고통에 대해서는 시(詩)를 읊어댔느냐는 질문에는 “그건 내가 여기에 살고 있으니까요. 상황 논리이지요.”라고 당당하게 답한다.
      겉으로는 이미 “마음을 비웠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노벨 문학상에 대한 욕망을 주체하지 못한다는 걸 많은 국민들은 모르지 않는다. 북한 주민들의 고통과 세습독재의 만행에 의도적으로 눈감으면서, 인류 보편적 가치 실현을 위해 최고의 노력을 보여준 이들에게 주는 값진 상을 탐낸다. 그는 시인(詩人)이다. 얼빠진 이들은 ‘국민 시인’이라고도 부른다.

      북한의 핵미사일을 방어하기 위해 이 나라에 ‘사드’(THAAD)’를 배치하기로 했다.
    그러나 배치 예정지역 일부 주민들이 반발을 한다. 이곳을 찾아다니면서 ‘사드’ 배치를 비웃고,
    이를 결정한 이 나라 정부와 군(軍)을 조롱하며 웃음을 판 광대가 있다.
      북한 정권의 직접 지령에 의해 조직·활동했던 지하당인 ‘통일혁명당’의 최고위급을 싸부[師父]로 모셨었다.

  •   이외에도 유사한 사례를 이 나라 곳곳에서 수시로 볼 수 있다.

    이른바 학자· 정치인을 비롯하여 광대·풍각쟁이·아나운서, 그리고 신부·목사·중들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고위 공직자와 판사·검사·변호사도 예외는 아니다.
      이들 중 대부분은 “어떤 평화도 전쟁보다는 낫다.”는 신념을 갖고 있으며, 기회가 있을 때면 그걸 공개적으로 주창한다. 아예 세습독재자에게 무릎을 꿇은 게 낫다는 식의 논리도 들이댄다.
      북한의 입장에서, 정확히는 세습독재자의 눈으로 북한 정권이 벌리거나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바라보자는 ‘내재적 접근’을 강조하기도 한다. 북한의 핵무장은 미국의 위협 때문이니 북한 체제의 존립을 보장하면 문제가 풀린다고 떠벌인다.
      “북한의 붕괴와 귀순을 직접 거론하시면, 김정은 위원장을 압박하는 게 아니라 선전포고 아닌가.”라는 ‘대북 햇볕 지상주의’ 정치가의 말에 고개를 연신 끄덕이기도 한다.
      특히, 상당수는 공식·비공식 석상을 막론하고 북한의 세습독재자들을 지칭할 때, 비록 ‘님’자는 붙이지 않더라도 꼬박꼬박 ‘주석’, ‘국방위원장’, ‘노동당 위원장’이라고 부른다. 이 나라 전·현직 대통령들에 대해서는 거의 동네 강아지 부르듯 한다. 구체적인 건 민망해서 생략한다.

      이런 과정에서 연이은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이나 인권 탄압과 폭압 정치가 부각되어 북한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공분(公憤)이 높아 가면, 위의 말과 행동들을 의식적으로 자제(?)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대신에 이 나라 정부에 대한 공세로 쾌감과 심리적인 안정감을 찾는다. 한마디로 친북을 잠시 비켜두고 반(反)대한민국 모드에 열중하는 것이다.
      이럴 때 주로 사용되는 단어들이 있다. 독재, 인권, 민주화, 자주, 민생, 소통, 통합, 안전, 환경, 생명, 독점, 부패, 헬조선, 흑·금수저 등등...

  •   ‘쓸모 있는 얼간이’(Useful Idiot)란 말이 있다.
    레닌(Lenin)에 의하면, “충성스럽거나 순진하거나 또는 스스로 합리화하여
    정치놀음[혁명 또는 반역]에 이용되는 자”들을 통칭한다.

      그 누구의 특출한 분석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1948년 8월 15일 건국된 대한민국’의 역정을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로 냉소해야만 진보적으로 여겨지고, 그래야만 ‘의식·개념 있는’ 자로 대접받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이런 가운데 이들의 짓거리는 아마도 아래 세 가지 범주에 거의 포함된다고 보면 된다.

      첫째가 뚜렷한 목표를 내다보며 의식적으로 북한 또는 사회주의 노선을 추종하고 동조하는
    자들이 있다.
      둘째는 ‘소영웅심’ 또는 과시욕에서 친북‧반미·반(反)대한민국 및 반정부 언동을 일삼는 소위
    ‘얼치기’들이다. 자신에게 붙여지는 “개념 있는 OOO”이란 호칭이 너무 듣기 좋고 자랑스럽기도 하다.
      셋째는 북한의 실체와 우리사회의 현실을 잘 안다. 그러면서도 ‘장삿속’으로 돈벌이와 이름값
    올리기를 위해 이 나라를 헐뜯고 ‘진보(進步) 팔이’를 한다. 특히, 경험에 의해 계몽된 적이 없는 젊은이들에게 끊임없이 추파를 던진다. 이들은 상당한 부(富)와 명예를 축적한 상태에서 자신의 이익과 관련하여 양면성과 위선(僞善)도 불사한다. 물론 기회주의 처신은 필수이다.

      대체로 자신이 갖고 있는 끼와 열정을 공동체 파괴와 조국 폄하(貶下)에 활용하면서 희열을
    느끼거나 돈벌이를 하는 ‘정신분열증 환자’들이라고 보면 된다. 더 나아가서 그것이 자기에게
    주어진 소명인 양 착각하는 ‘나르시스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상황이 이러하지만,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 있다.
    많은 국민들은 이 ‘쓸모있는 얼간이’들 뒤에 북한 세습독재자의 짙은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음을 직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지간해서는 그들은 말과 짓거리로 인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걸려들지 않는다. 물론 간첩단 사건 등에 연루된 사례도 찾기 어렵다. 북한이 대남 적화(赤化)공작의 대상으로 직접 포섭했다는 흔적도 별로 없다.

      그 이유가 표면적으로는 비교적 간단하다.
    이 나라 공안기관과 사법부가 지난 시절부터 ‘색깔론’ 공세에 하도 당해서 트라우마에 시달리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또한 명망가와 ‘비판적 지식인’에 유독 약한 속성이 있어 본체만체한 적도 있다면 있다. 잘 못 건드리면 괜히 분란이 일어날 게 뻔한 만큼, 그저 알고도 대충 넘어 가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면 과연 이런 이유만 있을까?
    전향(轉向)한 남파(南派) 공작원이 직접 들려준 내용이다.

      북한의 대남공작 지도부는 남파 공작원들에게 이런 지시를 내린다고 한다.
      “남조선에서 대남공작 일꾼보다 더 일꾼스럽게 활약하는, 즉 대남혁명 전략·전술에 맞춤형으로 일하시는 ‘애국·통일’ 인사들 중에는 포섭이 필요하지 않은 분들이 계시다. 이분들을 포섭한다고 접촉·접근을 했다가 흔적이 남거나 노출[들통]이 되어 사달이 나면, 오히려 혁명 역량에 커다란 손실을 가져 온다. 그리고 애써 조직[지하당]에 인입(引入)시킬 시도도 하지마라. 지켜보면서 성원만 보내면 된다.”

      이것이 이름 하여 ‘무정형(無定形) 공작’이다. 그 ‘말과 짓거리’들이 입맛에 딱 맞을진대,
    티를 내면서까지 자기편임을 확인·광고할 필요가 있겠는가 말이다.
    멀찌감치에서 관리만 하면 된다.

  •   결과적으로 이 나라의 ‘쓸모있는 얼간이’들은 북한 세습독재자와 영혼의 ‘이인삼각’(二人三脚)을 맺고 있는 ‘끈 달리지 않은 꼭두각시’에 다름 아닌 신세가 되어 있는 것이다.
    말 그대로 “모르면 바보, 알면 반역자”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쓸모 있는 얼간이”, 즉 ‘무정형 공작’의 대상들이 맞닥뜨리게 될 운명의 모습을 역사는 증명한다. ‘쓸모 있는’ 자들인 만큼 ‘쓸모가 없어지면’ 퇴장이 불가피하다. 역사의 순리(順理) 속에서도, 또는 혁명이나 반역이 성공한 후에도 한 결 같이 헌신짝이 되고 만다.

      과거 분단된 독일에서도 이른바 서독(西獨)의 ‘진보적인 지식인’들 중 상당수가 동독(東獨) 정권의 본질과 그 사회의 현실을 간과한 채, 인권·환경 문제와 대미(對美)·대서방(對西方) 외교정책 등을 잇슈로 서독 정부에 대해서만 비판 공세를 이어갔다. 그러나 이들이 알게 모르게 동독 정보기관[슈타지]에 의해 조종되고 있었다는 사실이 통일 이후에 들통 나게 된다.

      월남전(越南戰)이 한창이던 시절 자유 베트남에서 이른바 ‘민주화·평화 운동’과 반미투쟁에 앞장섰던 지식인·정치인·종교인 등은 월남의 공산화와 함께 월맹 정권에 의해 가장 먼저 처형되었다.

  •   멀리 다른 나라 말고도, 이 땅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필히 기억해야 하지 않겠는가.

      해방 이후 남로당(南勞黨)의 주역이었던 박헌영·리승엽·이강국 등은 월북하여 김일성과 함께 6·25남침전쟁을 일으켰지만, 정전협정이 체결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종파분자’(宗派分子)로 몰려 제거되었다. 전쟁 중 북한군이 후퇴할 때 함께 월북했던 최승희·임화·김순남 등 예술인들은 출신 성분과 해방 전(前)의 일본 유학(留學) 경력이 빌미가 되어 숙청당하고 말았다.

      “하늘이 아직 나쁜 자를 놓아두는 것은 복되게 하려는 것이 아니고, 그 죄악이 짙기를 기다려 벌을 내리려는 것이다.” (天之假助不善 非祚之也 厚其凶惡而降之罰) 중국 고전(古典)에 나오는 경구(警句)라고 한다.

      이 나라에 태어난 덕에 누리고 있는 그 많은 지식과 적지 않은 재산, 그리고 사회적 지위를
    어디에 어떻게 써야하는지 다시 성찰하고, 단호하게 결심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닌가 한<다.                   <더 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