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호 35호 전재> 시사 초점
    선거 민주주의의 한계를 보게 되는가

    = 20대 총선과 대한민국의 위기 =

    김 용 삼  / 미래한국 편집장

  • ▲ 군부세력은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30년 간 경제부흥에 전력투구를 했다(자료사진)
    ▲ 군부세력은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30년 간 경제부흥에 전력투구를 했다(자료사진)

    노태우 정부 말기에 일본의 한국 전문가 다나카 메이(田中明)는 『한국정치를 투시한다』라는
    흥미로운 저서를 발간했다. 이 책에서 다나카 메이는 “한국의 정치는 드디어 ‘예외’의 시대를
    마감하고 ‘정상’의 시대인 1961년 군사쿠데타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내용인즉 한국의 전통 정치는 왕조 시대 이래 지배층 양반 가문(보수적 부르주아)들의 권력 다툼의 역사였으며, 그 맥은 해방 후 「한국민주당」으로 이어졌다. 이런 풍토를 물리력으로 뒤엎고 나타난 군부 세력들이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30년 간 경제부흥에 전력투구를 했다.
    이것은 문치(文治)의 나라 한국 역사에서 볼 때 지극히 예외적인 시기였으므로,
    이제 30년 무치(武治)의 시대(박정희 18년+전두환 7년+노태우 5년)가 끝나면 
    한민당의 적자인 양 김(金) 씨가 집권하여 옛날식 문치의 시대로 돌아갈 것이란 내용이었다.

    문치의 시대란 한 마디로 말하면 정치 만능 시대다.
    도끼 자루가 썩든 말든, 나라가 거덜이 나든 말든 권력을 향한 일편단심의 줄기찬 투쟁 시대가
    도래했음을 일본의 한국정치 전문가 다나카 메이는 정확하게 꿰뚫어본 것이다.
    희한하게도 한국은 인권이 유린당하고 국민의 참정권을 제약 당했다는 군사독재가 판을 치던
    시기에 경제가 급속 성장을 하여 국민들의 살림형편이 좋아지고 소득이 늘어 중산층이 탄탄하게 형성됐다. 이것은 누가 뭐래도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historical fact)이다.

    4차 산업혁명, 제대로 대비하고 있나

    지금 세계의 산업 재편 과정을 보면 미증유의 혁명 상황을 방불케 한다.
    컴퓨터와 정보통신기술(ICT), 인공지능과 빅 데이터(Big Data)의 결합, 사물인터넷과 3D 프린터, 인간을 닮은 로봇, 생명공학, 드론과 자율주행차 등의 융복합으로 지금까지의 산업 경쟁력, 신기술, 고용, 제조업 역량은 물론 국력에 이르기까지 현기증 나는 변혁의 물결에 휩쓸려 있다.

    한국은 제3차 산업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정보화 혁명시기에는 비교적 능동적으로 대응했다. 1980년대 초부터 전전자 교환기(TDX-1)와 4메가 D램, CDMA 기술 상용화 등에 성공하여 비교적 선방을 해 왔다. 당시 우리의 구호가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는 것이었고,
    그런 사전 노력과 준비는 국가적 성공을 거두는 계기가 되었다. 

  • ▲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자료사진)
    ▲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자료사진)


    불행하게도 그것으로 끝이었다.
    현재 한국이 처한 경제 부진 현상은 단순히 글로벌 경제의 침체로 인한 충격파가 그 본질은 아니다. 한국은 지난 50년 동안 범국가적인 총력전을 전개하여 변화무쌍한 격변이 요구하는 시스템적 변혁을 성공적으로 이뤄낸 데 반해, 최근의 변화에는 선제 대응은커녕 멱살 잡힌 채 질질 끌려가며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데서 오는 불협화음이다.

    제4차 산업혁명의 한복판에 서 있는 우리가 처한 현실은 시간과 공간이 압축되어 변화의 속도가 대단히 빠른 것이 특징이다. 잠시 한눈을 팔다가 타이밍을 놓치면 지금까지 쌓아왔던 범국가적 성장 동력을 한꺼번에 잃어 돌이킬 수 없는 패배의 나락으로 빠져들게 된다.
    선각자들, 전문 연구자들은 한국이 현재와 같은 시스템을 변혁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는 한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성장신화를 재현할 수 없다고 비관적 전망을 내놓는다.

    한 시절 세계인들의 희망이자 ‘경이와 기적의 나라’였던 대한민국이
    왜 절망적인 나라로 전락하고 있는가.
    정치가 고장 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치 고장의 주된 원인은 무엇인가.
    유권자들이 그런 정치인들을 선거로 선출했기 때문이다. 20대 총선이 유권자들의 선택의 적나라한 이면을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 ▲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해산 당했던 정당에 몸담았던 인물도 의회에 다시 진출하게 되었다(자료사진)
    ▲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해산 당했던 정당에 몸담았던 인물도 의회에 다시 진출하게 되었다(자료사진)

    운동권 퇴출에 실패한 20대 총선

    필자는 수차에 걸쳐 지면을 통해 20대 총선은 미래를 향해 뛰고자 하는 대한민국의 발목을 잡고 있는 운동권 정치인들을 퇴출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주장한 바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번 총선에서 운동권 정치인 퇴출은 실패했다. 오히려 선거를 통해 그들의 정당성이 입증됐고, 새로운 운동권 후보들이 수혈되어 진영이 더욱 강화됐다.

    심지어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해산됐던 구 통합진보당 소속이었던 김종훈(울산 동구), 윤종오(울산 북구) 두 후보가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됐다. 운동권 정치의 실상이 무엇인지를 유권자들은 20대 총선에서 잠시 잊은 것일까?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정치, 김무성 대표의 옥새 도주와 공천 과정에서의 특정인 찍어내기 등등 집권여당의 공천파동은 대한민국이란 체제 내에서의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정당 내의 주도권 싸움이었다.

    반면에 전대협을 중심으로 한 NL 주사파, 반(反)기업·반(反)시장적 사회주의 추종세력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본질서로 하는 체제의 문제와 직결된다. 이제 20대 국회가 개원하면
    19대 못지않게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
    대한민국을 공산혁명으로 뒤엎고자 했던 세력들, 반국가사범,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실현하려 했던 사람들,
    법치를 부정하는 반(反)기업·반(反)시장·재벌 해체론자들,
    주한미군 철수론자, 친북주의자들의 국가 자해 내지는 국가 자살적 입법 활동을
    우리는 처절하게 감상하게 될 것이다.

    운동권 퇴출이라는 절체절명의 기회를 내부 싸움으로 허망하게 망쳐먹은 새누리당도 문제지만, 운동권 핵심세력들이 포진해 있는 정당,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해산 당했던 정당에 몸담았던 인물들을 다시 당선시켜준 유권자들의 선택도 문제다.
    유권자들은 새누리당의 저질스런 권력투쟁을 응징하기 위해 나라 망쳐먹는 데 앞장섰던 운동권 출신, 반국가적 정당 출신들을 선택한 셈이니, 이것은 악(惡)의 세력을 물리치기 위해 거악(巨惡)과 손을 잡은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 ▲ 유권자들은 새누리당의 저질스런 권력투쟁을 응징하기 위해 나라 망쳐먹는데 앞장섰던 운동권 출신들을 선택했다(자료사진)
    ▲ 유권자들은 새누리당의 저질스런 권력투쟁을 응징하기 위해 나라 망쳐먹는데 앞장섰던 운동권 출신들을 선택했다(자료사진)

    누구를 탓할 것인가

    지난해 가을 여의도에서 열린 한 야당 인사들의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그 때 한 야당 의원이 이런 말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삽질 정권’이니 뭐니 온갖 욕을 얻어 먹어가면서 4대강 사업이라도 했다.
    물론, 우리 당은 반대했지만 MB의 고집불통은 알아줄 만 했다.
    박근혜 정부는 임기 동안 뭘 했나? 4대강이 아니라 4대 또랑이라도 치워야 할 것 아닌가.”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억울한 측면이 없지 않을 것이다. 뭔가 일 좀 해 보려 하면 입법 권력을 손에 쥔 국회가 관련법 입법에 협조하지 않음으로써 행정부의 손발을 묶은 사례가 한두 건이 아니다. 이건 양식 있는 유권자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대 총선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집권여당이 참패한 이유는 무엇인가.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총선 직전 국정수행 지지도가 40% 선을 유지했다.
    박 대통령은 이런 지지율을 바탕으로 기회가 날 때마다 ‘국회 심판론’을 제기했다.
    야당 입장에서는 ‘선거 여왕’ 박근혜와의 대결은 악몽 그 자체였다.
    2012년 총선 및 대선, 2014년 6월의 지방선거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보궐선거에서 연전연패했기 때문이다.
    선거에서 ‘박근혜’라는 인물의 폭발력을 익히 알고 있는 야권은 박 대통령을 정면 공격할 경우
    오히려 역효과가 발생한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다. 때문에 야권은 박 대통령이 ‘국회 심판론’으로 질타를 가할 때마다 야권은 아웃복싱 하듯 의도적으로 피하면서 ‘정권 심판론’이라는 프레임을 피해갔다.

  • ▲ 유권자들은 새누리당의 저질스런 권력투쟁을 응징하기 위해 나라 망쳐먹는데 앞장섰던 운동권 출신들을 선택했다(자료사진)


    여당의 경우 박 대통령이 만들어낸 프레임을 성공시키기 위해선 스스로 국회의원으로서의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쇄신·혁신과 기득권 포기를 외치며 유권자 앞에 석고대죄하는 전략으로 나갔어야 한다. 그러나 나타난 현상은 기대와는 정반대였다.
    특히 김무성 대표의 패착은 오픈 프라이머리를 고집한 데 있었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오픈 프라이머리를 하게 될 경우 기득권을 가진 현역 의원들이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변화와 개혁을 바라던 유권자들에게 배신감만을 안겨줄 뿐이란 점을 왜 몰랐던 것일까.

    여당은 야권의 분열현상에 열광한 나머지 너무 자만하고 현실에 안주하다가 대세를 그르쳤다.
    그 결과 이번 총선에서 여당은 이슈나 프레임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맥 빠진 선거를 치르게 되었다. 프레임이 사라지고 보니 상대적으로 여당 내 분란이 돌이킬 수 없이 중요한 이슈가 되어 스스로의 발목을 붙잡는 결과가 되었다.

    반면에 야권은 자기들끼리 프레임을 만들어 이슈를 선점해버렸다. 더불어와 국민의당으로 분열되어 유권자가 누구에게 더 많은 표를 줄 것인지, 호남은 어느 정당을 선택할 것인지 등등 유권자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게다가 후보자 투표와 정당 투표라는 투표 방식이 흥미를 더하는 요소로 작용함으로써 이슈 선점에 성공했다.  
    그 결과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보다 훨씬 낮은 33.5%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 ▲ 히틀러가 집권한 것은 쿠데타나 혁명의 방법이 아니라, 민주선거를 통해서였다(자료사진)
    ▲ 히틀러가 집권한 것은 쿠데타나 혁명의 방법이 아니라, 민주선거를 통해서였다(자료사진)

    2017년 대선이 더 문제다

    이번 총선 결과에 대해 “위대한 국민의 심판”이라고 평하는 시각도 있다. 결과만 놓고 보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유권자들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히틀러가 집권한 것은 쿠데타나 혁명의 방법이 아니라 민주선거를 통해 집권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뿐만 아니라 세계 역사상 유권자들이 선거를 통해 엉뚱한 인물을 지도자로
    당선시켜 거덜이 난 사례는 부지기수다. 이것이 선거 민주주의가 가진 한계다.

    한국 사회의 다수 유권자들이 중도좌파 정당인 더민주와 국민의당에 새누리당 보다 더 많은 표를 주어 입법권력이 중도좌파로 넘어갔다. 여세를 몰아 내년 연말 대선에서 야권은 정당연합이나 합당, 정책연합을 통해 좌익성향의 반대한민국적 가치관을 가진 인물을 단일후보로 내세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총선에서 승리한 더민주와 국민의당이 가장 먼저 한 일은 19대 국회 내에 임시국회를 열어 세월호 특조위 활동 기한 연장 등을 위한 세월호법 개정과 국정교과서 폐기 논의, 세월호 특검 추진이었다. 그들 눈에 경제활성화를 위한 입법은 안중에도 없는 모양새다.

    20대 국회의원 당선자 및 정당들의 경제성향을 분석한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시장경제지수로 볼 때 새누리당은 중도파, 더민주와 국민의당은 중도좌파, 정의당은 좌파 정당으로 분류되었다. 중도우파나 우파 성향은 존재하지 않는 20대 국회가 어떤 입법 활동을 할 것인지는 눈을 감고도 상상이 가능하다.

    유권자들이 좌파 정당을 선택하고, 좌파적 성향의 인물을 국가 지도자로 선택한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쿠데타로도, 혁명으로도 막을 수 없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이 없는 현실이
    암울한 생각을 더욱 증폭시킨다.
    새누리당은 과연 20대 총선에서 어떤 교훈을 얻었는가.
    그리고 우파는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앞이 보이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