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인-운동권, 외나무다리에서 만날 때

  •   김종인과 '친노(親盧)-친문(親文)-486 운동권'의 맞대결.
    어떻게 보고 어떻게 대해야 할까?
    운동권(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세력) 가운데서도
    '아주 근본주의적인' 부류는
    철학에 있어 전체주의적인 유형이다.
    따라서 다소 보수든 다소 진보든 아니면 중도든
    “나는 그 어느 경우라도 전체주의자만은 아니다”라고
    자임하는 사람들은 이들과 반드시 충돌할 수밖에 없게 돼있다.

    “이들과도 함께할 수 있으려니..." 했다가도 결국엔 싸우게 된다.
    왜? 전체주나 근본주의는 ‘타(他)’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걸 인정하는 순간 전체주의나 근본주의는 더 이상 지탱될 수 없다.

      이들은 1980년대 반(反)권위주의 운동 과정에서 파생한 '좌(左)쪽 끝“ 부류였다.
    그래서 반(反)권위주의이면서도 자유주의적이거나 중도좌파적인 사람들까지
    적(敵)으로 취급했다. 그 무렵 나온 '깃발'이라는 극좌 문건의 "자유주의 타도, 개량주의 타도"란 구호가 그 점을 단적으로 반영했다.

     이들은 훗날 김대중 민주당에 발탁돼 거기서 보호받고 신세지고 커가다가
    노무현이 집권하면서부터 제 세상을 만났다.
    그 후 그들은 야당의 터줏대감이라 할 동교동계를 제치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야당의 정체성이던 '중도개혁주의'마저 폐기처분하고
    선명좌파-민중민주주의와 '반(反)세계화' ‘반(反)세계시장’ 깃발을 들었다.

     그들의 이 노선은 한 때 '메뚜기 한 철'을 구가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통진당과 손을 잡고 한-미 FTA를 배척하고 제주 해군기지에 반대하고
    천안함 폭침이 북한소행 아니라고 우기는 등 극렬한 언동을 하면서부터
    민심이 그들을 급속도로 떠났다.
    대선에서도 패하고, 지방선거에서도 패하고, 여론조사에서도 뒤지고,
    집권 가능성에서 갈수록 멀어졌다.
    그들에게 속고 이용만 당하던 안철수가 떨어져 나갔고 호남민심이 냉담해졌다.

     김종인은 그래서 초빙되었다.

    전권(全權)을 줄 터이니 당을 마치 운동권 정당이 아닌 것처럼 포장해 달라는 주문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바지사장으로 영입된 김종인이
    "내가 왜 바지야?" 하며 고참 운동권과 막말 꾼을 잘라내더니
    전국구 인선에선 운동권 친구들을 C 그룹으로 분류해 아예 배제하려 했다.
    운동권으로선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더민당 중앙위원회가 김종인에게 정면으로 대들었고,
    함세웅 등 장외(場外) 운동권도 김종인을 향해 볼멘소리를 지르며 핏대를 세웠다.
    "비례대표는 약자의 몫..." 운운 하며.
    '약자'란 물론 '자기 편'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겠지만.

     운동권은 김종인을 아침엔 욕했다가, 저녁엔 구슬렸다 하고 있는 중이다.
    본심으로는 바지사장이기를 거부하며 감히 자기네 밥그릇을 빼앗아가려는
    김종인을 앉은 자리에서 물고를 내고 싶겠지만,
    그가 만약 화를 내고 “ 나 안 한다”고 뛰쳐나갔다가는 자기들도 공멸할 수 있다.

     김종인이 만약 사퇴하고
    "국민 여러분, 운동권은 정말 상종 못할 부류입니다.
    겪어보니 이들은 영 안 되겠더군요“라고 소리치며 전국을 누비기라도 하면
    그 파괴력은 아마 장난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운동권은 울며 겨자 먹기로 김종인을 당장 때려잡지는 못하고 있다.
    강금실처럼 그런 유약한(?) 더민당 주류를 향해
    “미쳐도 곱게 미쳐라”고 소리치는 사례도 물론 있지만.

     김종인 역시 급히 사퇴하기에는 집념의 심줄이 아주, 그리고 너무 질긴 사람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지난 현대정치사를 겪어 오면서 4번,
    5번씩이나 소속을 바꿔가며 비례대표, 전국구 금배지를 땄겠나?
    "일관성이 밥 먹여주느냐?"고 한 그의 말 한 마디만 봐도
    그의 저력(?)을 족히 짐작할 만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친노-친문-486 운동권과 맞붙고 있는 이 순간의 그의 배역(配役) 자체는
    그의 인격적, 정치적 본질 여하 간에 ‘선(善)기능적’ 측면을 가지고 있다.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반(反)세계시장, 반(反)세계화, 계층적 편 가르기, 포퓰리스트 경제정책... 등을 추구하는 친노-친문-486 변혁론자들은 원칙적으로
    전통야당의 족보에 ‘위장전입’ 해 있어선 안 되는 이질(異質) 분자들이다.
    따라서 그런 이질적 부류률 배척하는 김종인의 행동은 전통야당의 기준에는
    충분히 적합한, 따라서 정당한 측면을 갖는다.

     친노-친문-486은 당연히 전통야당의 족보를 떠나 따로 좌파정당을 하나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래야 좌파로서 명(名)과 실(實)이 일치하고, 겉과 속이 같게 된다.
    지금은 뻐꾸기처럼 남의 집에 들어 가 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꼴이다.

     운동권이 김종인의 체면을 적당히 세워주고 정중히 유감을 표하는 선에서
    김종인과 운동권은 다시 동거(同居)를 재개할 수 있다.
    양측이 다 지금 갈라서거나 쪽박을 깰 형편은 아닌 까닭이다.
    그러나 양측의 순탄한 장기 공존은 결국은 불가능할 것이다.
    전체주의 운동권은 언제든 ‘혁명’ ‘모반’ 숙청‘ ’쿠데타‘ ’반란‘을 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그게 그들의 존재 양식(樣式)이자 존재 이유다.

     이걸 모르고 섣불리 “그들과도 합작할 수 있으려니” 낙관했다가는
    나중에 반드시 “내가 순진했구나” 하고 후회할 것이다.
    안철수가 친노에게 두 번씩이나 속고 얼마나 후회를 했을까?
    아무리 국민의 당이 잘 안 된다 해도 안철수는
    운동권과 갈라서서 딴 살림을 차린 지금의 생활이
    그래도 훨씬 정신적으로 나을 것이다.

     김종인은 필자나 마찬가지로 정치생애와 인생 전체의 결론을 내야 할 단계에 와있다.
    모든 집착을 내려놓는 대신, 그 자신의 말대로 인격과 품위와 명예에 대한 훼손만은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 실버의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
    운동권의 꼼수는 김종인을 앞으로도 계속 화나게 만들 것이다.
    그 때 김종인이 과연 의연하게 ‘노(no)'라고 말할 수 있을지, 계속 지켜보려 한다.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 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