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절 전야(前夜)의 서글픈 넋두리
    ‘낀 나라’ 신세에, 적전(敵前) 분열까지...

    이 덕 기 / 자유기고가

    우여곡절 끝에 나름 ‘강력한’ 대북 제재 결의안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채택되려나 보다.

    하지만 대북 제재 결의안이 통과된다 해도 결코 마무리 단계나 끝이 아니다.

    새로운 시작일 뿐이다.

    이번 대북 제재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미-중 간 모종의 줄다리기와 거래가 있었을 것’이라는 점은 익히 짐작되고도 남음이 있다. 사드(THAAD) 배치와 이 땅의 평화협정 문제가 미묘하게 부각되고 있다고 한다.

    그 두 나라에게는 ‘국가 이익’이 걸린 문제이지만, ‘낀 나라’ 신세인 이 나라로서는 단순한 사안이 아니다. 사활’(死活)과 ‘존망’(存亡)의 문제다. 앞으로의 정세는 어떻게 변할까? 이 나라는 뭘 어떻게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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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엊그제 모(某) 일간신문의 사설(社說) 끝 부분이다.

    “... 평화협정은 북이 주장하는 주한미군 철수, 북-미 수교 등과 연동돼 있어 한국으로선 북핵 해결 전에는 받아들일 수 없는 사안이다. 최상의 한미관계만 강조하는 이 정부가 모든 경우의 수에 대비한 전략을 갖고 있는지 걱정스럽다. 이승만 대통령은 한미방위조약 체결 전에는 결코 휴전할 수 없다며 ‘반공포로 석방’을 단행함으로써 뜻을 관철시켰다. 박 대통령은 그만한 「카드와 전략」을 가지고 있는가.”

    아주 훌륭한 지적이다. 단지 이 신문만이 아니라, 이 나라 언론들과 ‘많이 배운’ 전문가들은 혜안(慧眼)을 가졌다. 그리고 부지런히 떠들어댄다.

    「카드와 전략」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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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색당쟁(四色黨爭)이 역사책에나 나오는 게 아니라는 걸 요즘 알았어.”

    어느 모임에서 들은 얘기다. 참석자들 모두가 웃었다.

    사색당파(四色黨派)에 속해 정쟁(政爭)에 몰두했던 당시 조선의 정치인들과 국민들[특히 양반네들]은 장래를 예측할 수 있었을까? 후세들이야 역사라는 걸 통해서 그 결과를 알고 있지만, 그 당사자들은 아마 모르긴 몰라도 크게 의식하지 않았을 듯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조선 말기인 1875년 ‘운양호(雲揚號) 사건’ 이래, 1905년 ‘을사늑약’까지 꼭 30년간을 돌이켜 보자.

    동학란과 청일(淸日)전쟁이 그 기간 후반에 있었다. 역사책을 통해 결과를 알고 보는 30년은 긴 역사의 흐름에서 보면 잠깐의 시간이다. 그러나 실제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에 있어 30년은 무척 긴 세월이고 그 장래와 결과를 실감(實感)하기는 불가능하다. 역사 공부는 그래서 필요하다.

    그 장래와 결과, 즉 망국(亡國)을 예측·실감(實感)할 수 없었을 당시 조선과 대한제국의 정치인·국민들은 그 30년 간 무엇을 했는가?

    망국(亡國)의 매운 설움을 겪으면서야 드디어 많은 백성(百姓)들이 깨닫고, 한 목소리를 냈다.

    “吾等(오등)은 玆(자)에 我(아) 朝鮮(조선)의 獨立國(독립국)임과 朝鮮人(조선인)의 自主民(자주민)임을 宣言(선언)하노라...”, “대한독립 만세!”

    하지만, 이미 때 늦은 절규(絶叫)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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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설날 이후에 ‘몰디브 여행’을 둘러싼 시에미와 메누리 간의 편지 시리즈가 깨톡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자식을 패 죽인 부모의 끔찍한 기사도 언론에 보도되었다. 가족 공동체(共同體)의 해체를 보는 듯하여 씁쓸하다. 이런 와중에 ‘자기 애 새끼 패서 죽이는 것’조차 “사회구조적 문제가 원인” 운운하며, 책임을 이 나라에 전가하는 언론과 전문가도 있었다. 아주 그럴듯하게...

    ‘법외(法外) 노조’ 판결을 받고서도 아주 당당하게 법원의 판단과 정부의 조치가 잘못됐다고 오히려 강짜를 부리는 ‘선생님 노동자’들이 있다. 시도(市道)의 선출직 교육 수장(首長)이라는 자들과 ‘불법’(不法)의 짝짝꿍을 한다. 그들이 교단에서 이 나라의 미래를 가르치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이 나라 젊은이들의 가장 큰 화두(話頭)는 태어날 때 물고나온 ‘수저’의 재질이고, ‘지옥[HELL] 조선’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이를 부추기면서 젊은이의 감정에 빌붙어 명성과 글값이나 올리려는 야삽한 ‘배울만큼 배워처먹은 얼간이’들의 갖가지 행태다. “젊은이들아! 열심히
    노력하라고 말하는 자는 거짓말쟁이란다. 노력보다는 이 사회를 뒤집어 엎는 게 빠르단다!”

    여러 진통 끝에 완공된 제주 서귀포의 해군기지 앞에서는 아직도 평화를 내세워 “결사 반대!”를 외치는 신부·수녀들이 있다. 그 평화가 과연 누구의 어떤 평화일까? 또한 주기적으로 서울 한복판에서 “이 나라는 망해야 한다!”며 깽판·굿판을 벌이는 귀족 노동자들과 목사·중·신부들도 있다.

    이들이 바라는 나라는 과연 어떤 나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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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니 뭐니해도 이 나라에는 ‘국개 판’[나라의 개(犬) 판]이 있다.

    조선시대의 ‘사색당쟁’(四色黨爭)이 결코 먼지나는 역사책에서만 존재하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박(朴)자 타령과 노(盧)자 타령에, TK목장과 호남벌의 결투·전투까지 다양하다.

    더군다나 최근에는 이 나라의 존망(存亡)이 양놈과 뛔놈의 흥정으로 전락할 조짐마저 있음에도, 국민의 안전을 판돈으로 야바위판을 벌려놓았다. 필리버스터 말따먹기 시간 늘리기 경쟁과 함께, 울고 불고 생쑈를 벌이고 있다.

    이렇게 국민들을 실컷 농락한 후에 지들끼리 히히덕 거린다.

    비릿한 자화자찬(自畵自讚)과 화장실에 가서 웃는 소리가 국민들의 분통을 자극하는 줄도 모른다. 

    여기에다가 북녘 세습독재, 즉 적(敵)의 꼭두각시 같은 짓거리를 서슴없이 저지르면서도 여전히 큰 소리를 친다.

    이외에도 가진 자, 못가졌다고 입이 쑥 나온 자, 배웠다는 자, 못 배운자 등등이 뒤엉켜서 큰 소리에 난장판(?)이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기회주의를 바닥에 깔고 ‘나르시시즘’[Narcissism], 패배주의, 허무주의, 그리고 ‘신사대주의’[新事大主義:큰 나라는 물론 적(敵)도 섬기는 풍조]까지 온통 뒤죽박죽이다.

    이것이 이 나라가 그렇게 원하고 추구했던 ‘민주화’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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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민주화’된 이 나라가 작금에 닥친 존망(存亡)의 위기를 헤쳐나갈 외교와 대적(對敵)의 「카드와 전략」이 있느냐? 많은 언론과 여러 ‘전문가’들이 국군통수권자에게 묻고 있다.

    물론 북녘의 4차 핵 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응하여 대북 제재를 위한 「카드와 전략」을 쓰고·펼치고 있긴하다.

    이승만 대통령의 ‘반공포로 석방’은 가히 세기(世紀)의 전략적 결단이었다.

    그와 견주거나 비교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語不成說)이지만, ‘개성공단 전면 중단’과 ‘사드(THAAD) 배치 논의 시작’ 이후의 여러 일들을 되짚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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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드와 전략」이 단지 정쟁(政爭)의 대상과 이유가 되고, 그에 휩쓸리는 국민들도 적지 않다.

    국군통수권자를 일방적으로 두둔하고 싶지도 않고 그럴 마음도 없지만, 어떤 카드를 내놓건, 무슨 전략을 펼치건 “곧바로, 이유를 불문하고, 대안(代案)도 없이” 국민 분열의 호재(好材)로 삼는 세력이 있다.

    아무리 뛔놈과 양놈의 목젖을 누를 카드가 있다한들, 자유통일을 이끌 담대(膽大)한 전략이 있다한들 무슨 소용인가. 작금의 엄혹한 정세 하에서도 대북 정책을 싸잡아 ‘총선 전략’이라고 몰아세우는 정치세력과 이에 동조하면서 비아냥거리는 국민[특히 배워처먹었다는 지식인]들이 득시글거리는 이 나라에서 말이다.

    더구나 이 나라 일부 언론과 전문가들도 그 ‘해안’[害眼/결코 ‘혜안’(慧眼)일 수 없다]을 아주 잘 활용하여 무책임한 ‘양비론’(兩非論)으로 불을 키운다. 그 ‘우월적 지위’(?)와 ‘자기 지식 과시’를 즐기기나 하려는 듯이...

    결국 그 「카드와 전략」이라는 것은 무엇이든 내미는 순간, 상대와 적(敵)의 비웃음과 주먹다짐으로 되돌려 받을 수 밖에 없는 형편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와중에서 그나마 위안이라면, 위의 신문 사설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나라 ‘건국 대통령’의 선견(先見)과 결단, 그리고 위대함을 인식·인정하는 부류들이 조금씩이나마 늘어가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조선의 ‘사색당쟁(四色黨爭)’이 단순한 ‘사실’(史實)이 아닌 ‘현실’(現實)임을 증명하는 정치인들과 이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하는 국민들에게는 역사를 말하는 것조차도 이미 사치가 되어버렸다.

    하여 여기까지의 넋두리도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나 다름없다.

    3년 모자란 100년 전 탑골공원을 시작으로 이 땅에 한 목소리로 메아리쳤던 ‘독립 만세’의 외침... 그건 결코 환희의 노래가 아니었다. ‘독립 만세’를 부를 때는 이미 ‘국민’이 아니었다.

    현재도 그 때와 마찬가지로 ‘국민’(國民)이 아닌, 그저 ‘백성’(百姓)으로서 ‘독립 만세’나 준비해야 할 날을 넋 놓고 맞아야 하는가?

    아! 대한민국 만세(漫世)? 망세(亡世)?? 망만세(亡漫世)???...

    “슬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게 하는 건 온전히 그 나라 국민의 몫이다!”


                                                 <더   끼>

    # 만세(만화세상:漫畵世上) / 망세(亡:망할 망, 世:세상 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