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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박용우가 새삼 순수한 감정 純情(순정)에 젖어들었다. 영화 ‘순정’(감독 이은희, 제작 주피터필름)에서 범실(도경수 분)의 현재 모습인 형준으로 분하며 그 역시 자신이 간직한 ‘어린 용우’를 회상했다. 영화 속 연신 벅차오르는 눈물이 단순히 범실의 것만은 아닐 터다. 라디오 부스 속에서 DJ로서 찬찬히 사연을 전달한 박용우는 1991년 즈음 자신의 학창시절을 마음속으로 함께 읊조렸다. 때문에 어떻게 보면 ‘순정’은 더욱 박용우에 가까운 작품이라 볼 수 있겠다.


    “시나리오를 보고 에필로그가 참 좋았어요. 사람들이 과거의 추억을 통해서 성장하고 희망을 보는 거요. 그 추억이 사랑이든 우정이든, 결국 하늘을 보면서 미소를 짓는 그런 에필로그가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영화가 완성된 걸 보고서 머릿속으로 그린 것보다 훨씬 표현이 잘 됐다고 생각했어요.”


    누군가는 추억을 하며 안타까움에 사무치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이들은 아쉬움 가운데도 찬란한 감정을 찾고, 기쁨을 되뇐다. ‘순정’은 한 없이 애틋하지만 반짝반짝 영롱하다. 더 이상 되돌아갈 수 없음에 역설적으로 더욱 아름다운 시절이다. 과거 소년과 현재 성인이 된 한 남자의 정신적인 접점을 박용우와 도경수는 무리 없이 이었다.


    “범실과 형준은 본능적인 마음을 생각하는 부분에 있어서 가장 큰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요. 경수 씨가 범실을 연기하면서 무리하게 계산을 하지 않고 직감적으로 연기한 것 같아서 오히려 좋았어요. 억지로 하는 연기라는 생각이 전혀 안 들었고 생활 연기처럼 자연스러웠죠. 저 역시 직감으로 연기하는 걸 지향하는 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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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수 씨는 사람 자체가 여러 면으로 건강하고 맑은 친구라 생각해요. 매력적인 눈을 가졌더라고요. 덕분에 범실 그대로의 모습이 나온 것 같았어요. 형준이라는 역이 모든 과거를 다 알고 있어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영화의 감정을 다 정리해야 해서 물리적으로 난감한 분량이었죠. 다행히도 경수 씨가 하는 연기를 내가 하는 연기라 생각하고 볼 수 있을 만큼 잘 해줬어요.”


    도경수의 진실 되고 흡입력 있는 연기 위에 박용우는 자신의 개인적인 추억까지 켜켜이 얹으며, 아련하게 끓어오르는 첫 사랑에 대한 안타까움을 가감 없이 쏟아냈다. 현실적으로 보자면 2~3평 남짓의 라디오 부스에 들어가 홀로 폭발하는 애절함을 표현해야 했다. 아무리 23년간 쌓은 내공이 있다 해도 결코 쉽지 않은 연기였으리라.


    “너무 분석하려 하지 않고 일단 감정을 중심으로 그대로 연기했어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감독님과 저의 의견이 크게 다르지 않았고요. 제 추억을 떠올리면서 눈물을 많이 흘렸죠. 종이비행기, 어린이 대공원 등 어린 시절 속 추억을 떠올리며 울기도 했고요. 정말 원 없이 연기했어요. 장시간을 혼자 눈물 흘리며 연기해보니 스스로가 자랑스럽기도 하더라고요. 최대한 진심으로 비춰지게끔 연기하고 싶었어요. 편집 역시 최대한 진심에 가깝게 했고요. 아무리 표정이 일그러졌더라도 그게 더 진심이 묻어난 것 같아서 오히려 그 부분을 더 살려달라고 얘기했어요. 나는 나를 속일 수가 없어요. 진심과 가짜가 다 보이기 마련이죠.”


    온전히 학창시절로 되돌아간 박용우는 ‘순정’의 감성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었다. 아날로그와 풋풋함이 가득했던 당시를 회상하는 그의 눈빛이 순간 더욱 빛난 것은 기분 탓만이 아니었겠다. 입가에도 미소가 번진다.


    “당시 상황에 맞춰 흘러나온 노래를 ‘추억의 노래’라 기억하고 있죠. 한 예로, 이별의 상황에서 들린 전혀 다른 가사의 노래를 저는 ‘이별 노래’라고 기억하는 것 같아요. 그 때는 ‘별밤’같은 라디오 음악프로가 굉장히 인기 있었어요. 무려 이경규 씨가 신인 코미디언으로 나오던 시절이었어요.(웃음) 그 때 들었던 음악이 아직까지도 기억에 많이 남죠. 이문세의 ‘소녀’도 좋아했고, 봄여름가을겨울, 김광석의 음악도 좋아했고요. 그 때는 부모님들이 TV를 못 보게 하니까 혼자 이불 속에서 몰래 라디오를 들었어요. 이어폰을 딱 끼고 들으면서 공개방송을 녹음할 정도였어요. 그 때는 방송을 듣기만 하는데도 왜 그렇게 좋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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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에게 91년은 방황했을 때였고, 스스로에게 처음 질문을 하던 때였어요. ‘네가 원하는 게 뭐야’라는 고민을 가장 많이 한 것 같아요. 위태위태한 선택들이 많았는데, 다행히 그 시기를 잘 헤쳐 나갔고 연기자가 될 수 있었어요. 꿈에 대한 본능에 충실했던 거죠. 뭔지는 정확하지 않은데 왠지 이런 느낌이면 좋을 것 같다고 판단했어요. 큰 막연함에서 점점 정돈이 되는 것 같았어요.”
     

    이와 함께 박용우는 영화 같은 첫 사랑의 기억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의 첫 사랑은 또 한 편의 ‘순정’이었다.


    “왠지 계속 생각나고 그런 기분을 처음 느낀 게 중학교 때였어요. 저희 학교에선 가을 운동회 때마다 포크댄스를 했거든요. 전교생들이 모두 모여서 반 별로 춤을 추는데, 돌아가면서 모든 학생들과 춤을 추게 되는 거죠. 모든 얼굴을 볼 수 있는 행사였어요. 한 번은 그렇게 돌아가면서 춤을 추다가 짧게 단발머리를 한 여자애를 보고 첫 눈에 반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스타워즈’ 다스베이더 같은 머리를 했지만, 그 애가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웃음) 얼굴만 한 번 보고 나중에 제가 직접 그 애를 찾아다녔죠. 나중에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찾기도 했어요. 근데 막상 나중에 또 만나보니 추억은 추억으로 간직해두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프로그램에서 찾은 뒤에 한 번 식사를 같이 했는데, 상상하던 일이 현실이 되니 괜히 쑥스럽고 어색하더라고요. 예전의 그 느낌과도 많이 달라졌고요.”


    이뤄지지 못한 첫 사랑의 추억, 꿈에 대한 방황과 갈등. 보통의 10대가 거칠 경험을 딛고 일어선 박용우는 이제 보통이 아닌 연기자가 됐다. ‘순정’은 추억하는 것 자체로도 값진 의미로 다가올 수 있지만 큰 의미로는 성장의 영화이기도 하다. 더 이상의 성장은 없을 거라 생각하는 어른이 어린 시절의 자신을 되돌아보고 한 층 더 큰 어른으로 자라나는 과정을 담았다. 베테랑 연기자 박용우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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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은 배우로서의 책임감을 고민하는 중이에요. 배우로서 책임감을 가질 필요가 있겠더라고요. 단순히 공인으로서의 책임감이 아니라 심적인 책임감인 건데, 아직 고민을 더 해봐야할 것 같아요. 프로이트의 본질적인 판단을 봐도 저의 이러한 생각이, 이미 가슴 속에 품도록 예견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해요. 저의 생각과 판단이 점점 그 쪽으로 움직이는 것 같아요.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건 중요한데, 평생 살아도 정확한 답은 모를 거라고 봐요. 하지만 질문을 한다는 건 의미 있고 가치는 있는 과정이죠. 그래야 도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의미가 있으려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할 필요가 있어요. 연기적으로도 그렇고, 사랑, 우정 등에 있어서도 그렇고요.”


    “앞으로도 도전적인 작품을 하고 싶어요. 똑똑하게가 아니라 지혜롭게 말이죠. 그렇게 살면 재밌을 것 같아요.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환자가 치유를 받아서 조금이라도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싶어요. 그러려면 제가 악역을 할 수도 있을 테고 평면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겠죠. 작품에 의미가 부여된다면 어떠한 캐릭터라도 좋은 캐릭터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