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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이 한창인 1월, 꽁꽁 얼어버린 마음을 따뜻하게 녹일 감성 멜로가 찾아왔다. 영화 ‘나를 잊지 말아요’(감독 이윤정)와 만난 배우 정우성은 한층 깊어진 눈빛으로 관객들의 심금을 울린다. 액션과 판타지는 득세하지만 멜로는 잃어버린 극장가. 이 시기에 찾아온 정통 멜로가 새삼 반갑다. 정우성과의 인터뷰가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진행됐다.

    “이윤정 감독의 단편을 먼저 봤을 때, 멜론데도 불구하고 멜로 이상의 톤 앤 매너가 있어서 신선했어요. 감독님이 정우성이란 배우를 어릴 적부터 좋아해서 시나리오를 건네고 싶었지만 선뜻 그러기가 힘들었다고 하더라고요. 함께 영화계에 있는데도 나를 어려워하고 동료의식을 가지지 못하는 부분에 큰 충격을 받았어요. 그래서 단편을 장편 시나리오로 써보자고 제안했죠. 장편 시나리오를 보니 개성 있고 참신하더라고요. 그렇게 작품에 참여하게 됐어요.”

    정우성은 ‘나를 잊지 말아요’의 주연 배우 뿐만 아니라 제작자로 참여해 영화에 더욱 애착을 가졌다. 앞서 이윤정 감독은 동명의 단편을 장편으로 제작하기 위해 미국 ‘킥스타터 캠페인 페이지’에서 클라우딩 펀딩에 도전했고, 후원금 3만 달러 이상을 모았다. 그렇게 첫 메이저 감독 데뷔를 앞둔 이윤정에게 정우성은 손을 내밀었다.

    “선배가 먼저 다가가고 싶었어요. 후배들이 꿈에 대해서 소심하고 위축돼 있는 모습을 보니 너무 안타까웠어요. 저는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영화 작업을 할 때 주저함이 없었거든요. 후배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일들에 접근하길 원했어요. 저도 이제 구세대가 되어 가잖아요. 어떻게 보면 구세대와 신세대의 소통의 단절이 된 것 같았고, 저를 접근 가능한 현실적인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안타까웠죠.”

    “‘나를 잊지 말아요’는 버젓이 작은 영화에다가 신인 감독 연출이라서 가장 큰 메리트로 작용할 수 있는 부분은 정우성이 주연으로 참여한다는 거더라고요. 마이너 영화를 더욱 성장시키려면 선배들이 함께 참여하는 게 큰 힘이 될 거라 생각했어요. 어느 정도의 작업 환경이 조성돼야 그들이 메이저로 왔을 때 물질적, 시간적인 부분에서 미스가 없겠다고 생각했죠. 언제부턴가 메이저 영화에는 스태프들이 훈련이 안 된 상태에서 들어오더라고요. 연기 측면을 넘어 촬영 전반에 있어서 선배로서 도움을 주며 일을 선도해야겠다 싶었어요.”

    정우성은 꾸준히 영화 작업 환경 전반을 예의주시하는 중이다. 이는 그가 제작자로 나섰기 때문만은 아니다. 데뷔 때부터 그를 인도한 선배가 딱히 없었다는 점이 오히려 정우성을 선각자로 만들었다. “독립 예술 영화는 개인의 돈으로 작업하며 감독 특유의 작품성을 표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마이너 영화는 저예산으로 제작되며 상업성을 띠는 점이 다르다.”며 열변을 토하는 그의 눈빛이 영화와는 다른 측면으로 또랑또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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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허함을 목표로 연기하다 보니 그러한 눈빛 연기가 나온 것 같아요. 석원이 자기 방어 기제가 있는 인물이잖아요. 자기의 나약한 성격을 이겨내지 못해서 자꾸 회피를 하는데, 그에 대한 불안함을 현실적으로 표현해내는데 중점을 뒀어요. 저와 김하늘 씨의 ‘케미’도 흥미로우실 거예요. 두 배우의 캐릭터 감정을 각자가 얼마나 매력적으로 표현했는지를 관객 분들이 봐주셨음 해요. 사실 ‘나를 잊지 말아요’는 진영의 영화이기 때문에 여배우의 역할이 큰데, 하늘 씨가 작품을 선택해 준 게 고마울 정도였죠. 왜 이제 와서야 하늘 씨와 작업을 했을까 싶을 정도로 재밌게 작업했어요. 하늘 씨는 그녀가 가진 외적인 이미지의 형태를 모두 깨는 여배우더라고요. 작업을 하는 부분에서는 철저하지만 그렇다고 까다롭지는 않고 털털했어요. 필요한 상황이 생기면 뭐든 받아들일 줄 알고 감수할 줄도 알더라고요. 로맨틱 코미디를 많이 해서 그런지 표현의 폭이 굉장히 넓었어요.”

    김하늘과 만난 정우성의 반응은 굉장한 호감으로 차 있었다. 영화 ‘바이 준’ ‘동감’ ‘동갑내기 과외하기’ ‘그녀를 믿지 마세요’ 등과 드라마 ‘해피투게더’ ‘피아노’ ‘로망스’ ‘신사의 품격’ 등으로 멜로 퀸의 자리를 꿰찬 김하늘,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새드무비’ ‘호우시절’을 통해 쓸쓸하고 촉촉한 눈빛으로 짙은 멜로를 선보여 왔던 정우성. 멜로라면 내로라하는 두 사람이라 그런지 정우성과 김하늘의 만남은 그 자체로 낭만이었다. 기대한 것처럼, 두 사람이 그려낸 사랑은 한층 다른 결로 완성됐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감독 이재한)와는 또 다른 이야기였고, 배우 입장에선 기억에 대한 코드를 하나 더할 수 있다는 게 흥미로웠어요. 기억에 대한 전혀 다른 풀이와 사랑의 감정을 다뤄서 부담감은 없었어요. 카메라 앵글은 석원을 쫓아오지만 진영의 영화가 되길 바랐어요. 미스터리적인 요소를 더 살릴 수도 있었지만 딱 알맞은 정도로 편집이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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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판타지’라고 생각해요. 첫 눈에 반하는 게 사랑이라고도 하잖아요. 요즘에는 점점 사회 환경이 가혹해지다 보니 사람들이 자신들의 사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아채지 못하는 것 같아요. 사실 사랑만큼 자신을 치유해주는 감정은 없다고 보거든요. 예전엔 ‘이뤄지지 않는 사랑’을 강요받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은 평범한 사랑이 다 판타지 아닌가요? 손을 잡고 길을 걷고 행복해하는 순간들, 그런 찰나가 얼마나 값어치 있는 시간이에요. 사랑은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근본적으로 음양의 법칙도 참 중요하게 생각하잖아요.(웃음)”

    정우성은 진지하고도 소신 있게 자신만의 ‘사랑학 개론’을 펼쳤다. 새삼스러운 정의임에도 의외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는 우리 또한 ‘사랑’ 없이는 살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리라. ‘정통 멜로’가 부재한 박스오피스의 현 상황에서 우리가 잠시 잊고 지낸 ‘멜로 감성’의 확장이 다시금 기대되는 순간이다.

    “멜로는 꾸준히 찾고 있었어요. ‘나를 잊지 말아요’를 작업하며 위험할까라는 걱정은 없었어요. 대부분의 영화인들은 자기가 어떤 작품을 하든지 모든 작품에 다 의미가 부여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