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상상력, 권선징악 구도 우습게 보는 한국 사회 특성이 가장 큰 원인
  • ▲ 스타워즈 에피소드 7 '깨어난 포스' 프리미어 행사를 위해 만리장성을 점령한 '스톰 트루퍼'. ⓒ美CNN 보도화면 캡쳐-월트디즈니 중국 지사 공개
    ▲ 스타워즈 에피소드 7 '깨어난 포스' 프리미어 행사를 위해 만리장성을 점령한 '스톰 트루퍼'. ⓒ美CNN 보도화면 캡쳐-월트디즈니 중국 지사 공개

    전 세계가 ‘스타워즈’ 열풍으로 뜨겁다. ‘스타워즈’의 광팬들이 많은 미국은 물론 유럽과 일본, 심지어는 중국에서도 ‘스타워즈’ 열기가 뜨겁게 불고 있다. 그런데 서방 문화를 적대시하는 이슬람 국가나 북한이 아님에도 ‘스타워즈’ 열기가 시들한 나라가 있다. 바로 한국이다.

    21일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주 박스오피스 1위는 한국 영화인 ‘히말라야’가 차지했다. 개봉 첫 주 153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개봉 나흘 만에 관객 100만 명을 돌파, ‘국제시장’이나 ‘변호인’과 같은 흥행 돌풍을 일으킬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편 ‘스타워즈’의 경우 지난 18일(현지시간) 개봉한 뒤 미국과 캐나다에서만 사흘 동안 2억 3,8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4,134개 스크린에서 상영을 했다고는 하나 북미 지역 역대 최고 흥행수입을 벌어들였다는 점은 ‘스타워즈’의 열기를 반영해준다.

    ‘스타워즈’가 20일(현지시간)까지 전 세계에서 벌어들인 수입은 5억 1,700만 달러에 달한다. 참고로 ‘스타워즈’는 지난 18일(현지시간) 개봉 첫날에만 북미 지역에서 5,700만 달러의 수입을 올려 사상 최고 기록을 갱신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스타워즈’가 사상 최대의 흥행 기록을 세운 2009년 영화 ‘아바타’의 기록 27억 8,800만 달러를 갱신할 것이라는 예측도 내놓고 있다.

    전 세계가 열광하는 ‘스타워즈’의 한국 흥행기록은 지금까지 107만여 명의 관객이 관람한 정도. 앞서 언급한 ‘히말라야’보다 50만 명가량 적은 숫자다.

    한국 언론들은 ‘스타워즈’가 한국에서 맥을 못 추는 이유를 두고 “지나치게 미국적인 스토리여서” “덕후나 볼 영화라서” 등의 이유를 내세우고 있다. 일각에서는 “한국 문화계를 좌익들이 점령하고 있어서”라는, 다소 정치적인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스타워즈’의 배경이나 구성, 소재를 살펴보면, 다른 이유 때문으로 보인다.

    ‘스타워즈’의 스토리는 지금으로부터 2만 년 전 태양계로부터 멀리 떨어진 은하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배경으로 한다. 조지 루카스 감독이 처음 ‘스타워즈’를 만들었을 때는 모두 9편의 에피소드로 엮여 있었다.

    하지만 루카스 감독이 에피소드 4부터 내놓은 이유는 당시의 특수촬영 기술이 영상을 제대로 만들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 나온 영화들도 에피소드 5와 6이었다. 조지 루카스 감독은 20년이 지난 뒤에야 스타워즈 에피소드 1~3편을 제작한다. 그로부터 다시 10년이 지난 후에야 에피소드 7 ‘깨어난 포스’가 나온 것이다.

    이처럼 38년 동안 발표된 영화를 놓고, 미국과 캐나다뿐만 아니라 영국을 비롯한 유럽과 일본, 심지어 러시아, 중국까지도 ‘스타워즈’에 뜨거운 환호를 보낸다. 이 나라들의 공통점은 국민들이 과학기술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이다.

    북미에서는 ‘스타워즈’ 만큼 인기를 얻고 있는 공상과학영화가 ‘스타트렉’이다. ‘스타트렉’ 팬층은 매우 두터워 ‘코믹콘’에서 마블스나 DC의 콘텐츠만큼이나 큰 인기를 끈다. ‘스타트렉’은 ‘미국적인 스토리 전개’ 외에도 공상과학소설적인 접근 방식으로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다. 게다가 이 드라마(또는 영화)에서 선보인 기술들이 수십 년 뒤에는 현실로 나타나 더 많은 관심을 끌었다.

  • ▲ 영국 런던은 스타워즈 에피소드 7 '깨어난 포스' 프리미어 행사를 트라팔가 광장에 53m 짜리 광선검 형상을 켰다. ⓒ마셔블 닷컴 화면 캡쳐
    ▲ 영국 런던은 스타워즈 에피소드 7 '깨어난 포스' 프리미어 행사를 트라팔가 광장에 53m 짜리 광선검 형상을 켰다. ⓒ마셔블 닷컴 화면 캡쳐

    영국의 경우에는 1963년 11월부터 방영을 시작한 ‘닥터 후’가 다시 부활해, 영어권 국가들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2개의 심장을 가진 시간여행자 부족 ‘닥터 후’를 주인공으로 다양한 공상과학적 소재를 바탕으로 드라마와 영화를 만들었다.

    중국의 경우 아직은 특수촬영기술을 활용한 공상과학 영화를 만들어내지는 않고 있지만, 미국 헐리우드에서 제작하는 여러 공상과학 영화에 막대한 자본을 대고 있다. 덕분에 미국이 만든 공상과학영화-최근에는 ‘마션’이 있다-에서 中공산당의 역할이 매우 커지고 있다.

    일본의 경우 ‘특촬물’로 불리는 괴수영화 등은 1950년대부터 이미 만들어냈지만, 영화계 자체 자본의 한계와 일본어 콘텐츠의 시장성 등을 이유로 주로 애니메이션을 통해 공상과학 콘텐츠를 만들어 내고 있다. 워쇼스키 형제가 ‘매트릭스’ 시리즈를 만들 때 참고했다는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공각기동대’나 안노 히데야키 감독의 ‘에반게리온’이 잘 알려진 사례다.

    러시아 또한 21세기 들어 공상과학 영화 제작에 공을 들이고 있다. 스토리와 콘텐츠 표현의 정서가 아직은 서방 진영과 잘 어울리는 편은 아니지만, 점점 발전하고 있다.

    이들 나라는 모두가 과학기술이 인간의 삶을 더욱 편리하고 풍족하게 만든다는, 자국의 국력을 키우는데 보탬이 된다는 생각을 바탕에 깔고 있다.

    또 하나의 공통적인 특징은 ‘권선징악적 스토리’를 “나쁘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는 언제부턴가 ‘권선징악’을 믿지 않게 됐다. 이를 십분 활용해 돈을 버는 ‘지식인’들이 사회 곳곳에서 맹활약을 하면서, 한국에서 인기 있는 콘텐츠는 배신, 음모, 복수 등을 동반한 권력투쟁, 개인적 이익 쟁취 등을 그리거나 남녀 간의 사랑, 섹스를 묘사한 게 대부분이다. ‘휴먼스토리’라고 부르는 것도 대부분 자기희생을 묘사해 ‘감성에 호소’하는 데서 그친다.

    수 년 전부터 문화계 사람들을 만날 때면 한국의 문화 콘텐츠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 ‘권선징악’을 그린 스토리는 “진부하다”고 평가하고, 미래를 향한 시도나 과학기술과 관련된 콘텐츠는 만들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다. 해 본 적이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라고 했다. 

  • ▲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 7 '깨어난 포스' 중 공화국의 X윙 전투기 장면. ⓒ스타워즈 트레일러 유튜브 캡쳐
    ▲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 7 '깨어난 포스' 중 공화국의 X윙 전투기 장면. ⓒ스타워즈 트레일러 유튜브 캡쳐

    즉 ‘스타워즈’가 유독 한국에서 큰 인기를 얻지 못하는 이유는 ‘제다이’가 일본 사무라이를 닮아서라거나 ‘포스’가 동양무술의 ‘기’를 말해서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과학기술과 미래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반면, 모든 관심을 정치와 사회적 문제에다 쏟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혹자는 “그럼 인터스텔라 열품은 뭐냐”고 물을 것이다. 그건 다르다. 한국에서 ‘인터스텔라’가 ‘대박’을 친 것은 이 영화를 보고서는 자신도 물리학에 대해 잘 알게 됐다는 것, 즉 “나 잘났다”고 SNS에 자랑하기 위해 사람들이 너도 나도 몰려가면서 나타난 일시적 현상에 불과했다.

    이런 사회 분위기가 바뀌지 않는 이상, 과학기술의 다음 단계, 미지 세계로의 탐험을 이야기하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공상과학 영화가 ‘주류 문화’로 편입되기는 어려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