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정말 많이 참았다"면서도 "국편위에 맡기자"… 논란 차단 시도
  •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22일 청와대 5자 회동을 마친 뒤 국회본청으로 돌아오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22일 청와대 5자 회동을 마친 뒤 국회본청으로 돌아오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예상대로의 수순이었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최고위원·원유철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이종걸 원내대표가 함께 한 22일의 청와대 5자 회동이 이렇다할 합의점을 만들어내지 못한 채 종결됐다.

    청와대에서 돌아온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는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의 역사 인식이 상식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어 절벽을 마주한 것과 같은 암담함을 느꼈다"고 포문을 열었다. 이종걸 원내대표도 이날 회동 결과를 브리핑할 때 "냉장고에서 더운 밥을 꺼내려 한 것 같다"며 "마치 국민 일상에서 벗어난 섬에 다녀온 느낌"이라고 비난했다.

    이러한 결과는 어느 정도 예상됐던 측면이 있다. 청와대와 야당은 회동 직전까지 모두발언의 공개, 대변인의 임석(臨席) 여부를 놓고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

    정치권 관계자는 "합의 없이 각자 할 말만 하는 회동이 될 것이라는 것을 다들 염두에 둔 것"이라며 "회의 초반의 모두발언 공개나 회의가 끝난 뒤 브리핑을 염두에 둔 대변인 임석을 신경 쓰는 것은 어떤 실질적인 합의를 이끌어내기보다는 '내가 이렇게 말하고 왔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예상대로 양측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를 둘러싸고 치열한 힘겨루기를 벌였다.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는 "거의 토론 수준으로 발언이 진행됐다"고 했고, 새정치연합 유은혜 대변인도 "전체 시간의 40%가 할애됐다"고 전했다.

  • ▲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와 유은혜 대변인, 이언주·박수현 원내대변인이 22일 청와대 5자 회동을 마친 뒤 국회본청으로 돌아오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와 유은혜 대변인, 이언주·박수현 원내대변인이 22일 청와대 5자 회동을 마친 뒤 국회본청으로 돌아오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선공(先攻)은 문재인 대표가 가했다. 문재인 대표는 "국정교과서 추진을 중단하고 경제살리기와 민생 안정에 나서야 한다"며 "친일·독재 미화 시도를 중단해야 한다"고 포문을 열었다.

    이에 지난 18일 이래로 문재인 대표로부터 선친의 전력(前歷)까지 거론당하며 일방적으로 매도당하고 있는 김무성 대표가 발끈했다. 김무성 대표는 "어떻게 그런 (친일·독재 미화 시도라는) 말을 할 수 있느냐"며 "지금까지 정말 많이 참았는데 이제 좀 그만하라"고 다그쳤다.

    양당 지도부의 공방을 지켜보던 박근혜 대통령은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노력이 정치적 문제로 변질됐다"면서도 "국민 통합을 위한 올바르고 자랑스런 역사교과서가 필요하다"고 가세해,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을 접을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문재인 대표는 '교과서 국정화를 중단하라'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했다. 또,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도 '비난을 그만하라'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만들겠다'는 자기 할 말을 했다. 서로가 자기 할 말을 했고, 회동은 합의 없이 끝났다.

    예상됐던 결말, 많은 사람들은 '불통의 벽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정도의 언급을 예견했지만 문재인 대표는 오랜 시간을 두고 표현을 고른 듯 '암담한 절벽'을 마주했다고 말했다.

  •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최고위원이 22일 청와대 5자 회동을 마친 뒤 국회본청으로 돌아와 취재진과 문답을 주고받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최고위원이 22일 청와대 5자 회동을 마친 뒤 국회본청으로 돌아와 취재진과 문답을 주고받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예견된 결과를 맞이한 문재인 대표가 향후 꺼내들 카드는 무엇일까.

    정치권 관계자들은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가 정상적인 원내 운영을 하며 서명운동이나 시민불복종 등 장외 활동도 계속 병행할 것으로 내다봤다. 회동 직후 "국정화 문제를 중단시키기 위한 노력은 끝까지 해야겠지만, 국회 일정을 전면 중단한다든지 예산심사를 거부한다든지 하는 생각은 전혀 없다"며 "할 일을 해 나가면서 국정교과서를 반대하겠다"고 밝힌 문재인 대표의 방침은 이러한 맥락이다.

    새정치연합의 한 의원은 "당 지지율이 새누리당의 절반 정도에 머무르고 있는 상황에서 50대50으로 구도를 이끌어낼 수 있는 이슈라면 나쁘지 않다"며 "서울 등 수도권에서는 더욱 유리한 여론으로도 가져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총선까지 길게 가져가는 것도 괜찮다"고 자신했다.

    당내 기획통으로 분류되는 또다른 의원은 "상임위에서 각료나 기관장이 문제성 발언을 했을 때 그게 우리 당에만 기분 나쁠 뿐 여론 흐름에 유익함이 없으면 정회를 낸 다음에 사과를 받더라도 복귀하지 않고 해당 인사를 돌려보낸다"며 "반면 그런 발언을 계속 이끌어내는 게 오히려 여론 조성에 유리할 것 같으면 일단 정회는 하겠지만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더라도 복귀하는 게 전략"이라고 귀띔했다.

    이 의원이 이러한 비유를 한 것은,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관련해 새정치연합이 의사 일정 전면 거부 등 '극한 투쟁'을 선택해 국면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가면서 가부간에 빠른 해결을 강요하는 전술을 쓰기보다는, 정상적인 의사 일정을 진행하면서 이 이슈를 가급적 긴 호흡으로 총선까지 끌고 가려는 전술을 쓸 것이라는 암시를 한 것으로 해석된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이슈에 관련해 야권은 결집하고 있는 반면 여권은 흩어지는 듯한 모양새가 보이는 것도, 문재인 대표가 이를 길게 가져갈 것이라는 전망을 뒷받침한다.

  • ▲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박지원 전 대표가 각각 서울 광화문과 목포 평화광장에서 한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피케팅을 하고 있다. ⓒ김한길·박지원 전 대표 페이스북 캡쳐
    ▲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박지원 전 대표가 각각 서울 광화문과 목포 평화광장에서 한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피케팅을 하고 있다. ⓒ김한길·박지원 전 대표 페이스북 캡쳐

    새정치연합 김한길·안철수·박지원 전 대표 등 당내 비노(非盧)계 중심 인사들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이슈가 부상한 뒤부터 반대 운동에 열을 올리고 있다. 박지원 전 대표는 지역구인 전남 목포에서까지 서명 운동을 하고 있고, 김한길 전 대표도 이날 광화문 광장으로 나아가 피케팅에 앞장섰다. 안철수 전 대표와 무소속 천정배 의원도 성명을 통해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를 부르짖고 있다.

    비노(非盧)로 분류되는 재선 의원은 "11월쯤에 다시 한 번 문재인 체제를 향한 공세가 있을 것으로 봤는데, 그 때 뭔가를 꾀하려면 지금 당의 지지층이 결집하고 있는 이 사안에 대해 확실한 행동을 보여줘야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서도 "이 사안이 길어지면 공세를 취하기 어려운 포지션이 될 수 있다"고 곤혹스러운 심경을 내비쳤다.

    반면 새누리당에서는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일부 의원과 단체장들이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 중에는 당직을 맡고 있는 사람도 있다.

    김무성 대표가 이날 회동에서 문재인 대표를 향해 강공을 펼치면서도 "역사교과서는 국사편찬위원회에 맡기고, 국회는 민생과 경제를 살리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같은 상황 인식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내년 4·13 총선을 진두지휘해 승리로 이끌어야 할 책임을 가지고 있는 김무성 대표로서는, 어차피 입법사항이 아니어서 문재인 대표가 왈가왈부해봤자 실력저지할 수단이 없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가 총선 때까지 이어지는 것보다는 이 사안을 빨리 정리하고 민생경제 화두로 넘어가는 것이 좋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50대50으로 쌍방의 지지층이 결집하게 되는 이슈는 지리멸렬한 야권 상황과 여야 양당의 정당 지지율 등을 감안하건데 야당으로서는 손해보는 셈법이 아니다"라며 "김무성 대표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더 이상 국회가 신경쓸 일이 아니라 국사편찬위원회에 맡겨야 한다'고 선을 그은 것은 나름 최선의 한 수"라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