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특종' 스틸컷
    ▲ ⓒ'특종' 스틸컷

     

    ‘특종’ 기자 뿐 아니라 일반인이 들었을 때 얼마나 가슴 뛰는 단어인가. 그렇게 ‘특종: 량첸 살인기’(감독 노덕)는 제목부터 시선을 압도한다. 특종인데 게다가 살인사건과 관련된 것이란다. 최근 자신이 속한 보도국의 광고주 주변인과 관련된 비리를 야심차게 보도했다가 해고 위기에 처한 허무혁(조정석)은 우연찮은 기회에 연쇄살인사건이라는 시체냄새를 맡고는 ‘특종’을 직감, 눈이 뒤집힌다. 일생일대의 특종을 터뜨린 허무혁은 곧 그것이 오보임을 알게 되지만, 그가 보도한대로 실제 살인사건이 일어날 또 다른 위기에 봉착한다.



    진실을 전달해야 할 기자가 거짓을 전했을 때의 심정은? 자괴감은 말할 것도 없고 쥐구멍에 숨어들어가 소멸되고 싶기까지 하다. 고해성사 하자면, 필자 역시 작성한 기사 중 사소한 정보가 잘못된 것임을 뒤늦게 깨달은 경험이 몇 번 있다. 급히 ‘수정’과 ‘새 기사 작성’이라는 방편을 쓴 바 있지만, 이미 작성된 기사를 본 단 한 명이라도 되는 대중은 그것이 팩트인 줄 착각한 채 자신들의 뇌 한 켠에 정보(가 아닌 글)를 저장해 놓았을 것이다. 그렇게 ‘똥글’로 전락한 기사는 그 사람들의 시간, 온갖 기회비용 등을 낭비하게끔 하는 죄를 저지르게 된다. 해당 기사가 ‘특종’인 경우엔 중범죄에 해당될 터.



    대형사건 중범죄자가 된 허무혁은 기자로서의 ‘가오’(顔, 일본어 ‘체면’의 속어)와 더불어 본인과 가정을 안정적으로 영위하려 필사적인 몸부림을 친다. 시종 당황스럽고 놀라운 상황을 겪는 허무혁 덕에 조정석의 동그랗고 큰 눈은 그야말로 ‘토끼눈’이 된다. 이 영화 속 조정석은 취재하랴 국장과 만나서 상황을 무마하랴 연신 뛰어다니며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가 하면, 욕을 내뱉기도 많이 먹기도 한다. 그런 조정석이 참 딱해 보이면서도 어쩐지 ‘남 일 같지 않은’ 동질감에 안구에 습기가 차오른다.


    실제로 ‘특종: 량첸 살인기’ 언론시사회 이후 기자들은 자신의 기자생활을 회상하게 됐다고 혀를 내둘렀다. 그만큼 허무혁을 비롯해 언론사의 분위기가 리얼하게 스케치됐다는 방증인데, 필자는 문득 입사 초반에 너무 긴장한 나머지 밥이 안 넘어가고 배변 활동도 온전치 않았던 당시가 떠올랐다. 요즘 역시 배우들과의 인터뷰를 앞두고는 입맛이 사라지는 의외의 다이어트 효과가 나타나는데 이런 긴장과 관련된 증세는 기자라는 직업의 업이라고 본다. 기자들이 가장 많이 앓는 지병이 ‘역류성 식도염’이라고들 한다. 내가 입이 바짝 바짝 타는 것은 부디 역류성 식도염의 전조 증상이 아니길 빈다.


    최근 영화 ‘베테랑’에서 서도철(황정민)의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라는 말은 비록 서도철과 같은 형사는 아니지만 기자인 필자가 무척 공감했던 대사다. 그만큼 기자는 자신의 커리어에 대한 자존심 하나로 사는 사람들이다. 기자로서의 가오와 직업윤리 사이의 딜레마에 빠진 허무혁은 자신의 오보를 덮을 수 있을까? 덮을까? 아니면 공개사과를 할 것인가? 솔직히 기자의 입장으로는 쉽게 답을 내기 힘든 부분이다.


  • ▲ ⓒ'특종' 스틸컷
    ▲ ⓒ'특종' 스틸컷



    허무혁이 속한 언론사의 ‘백국장’은 카리스마 이미지를 지닌 이미숙이 역할을 맡으면서 여성 국장이라는 파격적인 캐릭터로 이 영화 중 단연 돋보이는 존재감을 어필한다. 보통의 ‘국장’이라 하면 나이 꽤나 지긋하시고 화 많은 아저씨가 떠오르기 마련이지만, 백국장은 그와 대다수 면에서 반대다. 나이는 어느 정도 들었지만 여성이고,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미란다(메릴 스트립)처럼 패션 감각도 화려하며, 화를 좀처럼 내지는 않지만 차분하고 침착하게 즉각적으로 기자들에게 지시를 내리며 대체 불가한 카리스마를 내뿜는다.


    살인사건 용의자로 추정되는 인물이 거침없는 도발을 하자 백국장이 “섹시해”라고 감탄하는 부분에서는 침착함 이면에 있던 그만의 ‘똘끼’를 짐작할 수 있다. 살인사건을 다루는 허무혁에 대해 여론의 눈초리가 따가워지자 백국장이 “이건 비난이 아니라 이슈라는 거야”라며 눈을 반짝이며 허무혁을 독려하는 모습에서 ‘우리 국장’의 표정이 비춰지는 기시감이 드는 것은 아마 다른 기자들도 공감할 만한 부분일 것이다. 온갖 비난에 굴하지 않고 도리어 희열을 느끼는 것이야 말로 기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일 터.


    일생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특종’에 목숨까지 걸고 나선 허무혁을 바라본 필자는 그간 잠시 타성에 젖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보며 기자의 영향력을 다시금 상기해보고 있다. 아! 특종 터뜨리고 싶다! 10월 22일 개봉.

     

  • ▲ ⓒ'특종' 스틸컷
    ▲ ⓒ'특종'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