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은 참 나쁜 나라였구나!"

    장진성 /뉴포커스 대표, 탈북 시인

    나는 한국에 온 지 올해로 7년째다. 자유민주주의 나이로 7살인 셈이다.
    그래서 한국사 교과서를 처음 만났을 때의 ‘동심’은 무척 흥분됐다. 

    자유민주주의 한국은 과연 어떤 나라일까?

  • 그 국민은 어떻게 살아온 사람들일까?
    북한에 없는 남한의 기적은 과연 무엇일까?

그렇듯 조바심과 기대로 펼쳐든 한국사였지만
페이지를 넘길 수록 나의 7살 동심은 쪼그라들었다,
나중엔 자신에게 문득 이런 질문도 하게 됐다.

한국은 애당초 건국부터 잘못된 나라인가요?
박정희독재가 김일성독재처럼 사람을 그렇게 많이 죽였나요?
한강의 기적은 부끄러운 기적인가요?
한국의 부자들은 모두 나쁜 사람들인가요?
그러면 잘 사는 오늘의 이 대한민국은 누가? 언제 만든 것인가요?

그렇다. 내 꿈을 키워주는 한국사가 아니었다.
보면 볼 수록 ‘대한민국은 참 나쁜 나라였구나!’하는
미움이 커지기만하는 ‘반한사'(反韓史)였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한국사라면 분명 나의 ‘조국사’인데도
7살인 내가 정녕 본받고 싶은 우상이 없었다.
전쟁국가인데도 애국의 전쟁영웅이 없었고,
경제강국인데도 부러운 성공의 주인공이 없었다. 

아니! 한국사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잘 못 태어난 대한민국 정부에 항거하는 ‘민중봉기사’였고,
지금도 끝나지 않는 그 투쟁을 맹렬히 호소하는 ‘계급투쟁사’였다. 

민주화와 산업화의 자부심이 공존하는 한국사가 되면
마치 ‘반역사’라도 된다는 듯
오로지 데모의 정당성과 정신적 승리만을 세뇌시키는 이념 교과서 같았다. 

그래서 ‘한국사’를 읽는 내내 나의 7살 동심은 싸움꾼처럼 격렬해졌다.
흥분하는 것만으로는 나의 존재감이 너무 무기력했다.
진실이라면 무조건 억눌리는 이 나라를 향해
고함을 질러서라도 반항하고 싶어졌다.
조국의 자부심을 기대했던 교과서였는데
증오를 가르치는 한국사여서 배움의 욕망도 실종됐다. 

그렇다고 한국사의 그 증오가 과연 진실했는가?
정말로 증오가 필요한 북한을 향해서는
“항일의 전통으로 시작되어 3대 세습까지 흔들리지 않는 정권”,
“미국의 압살에 의해 최근 식량난같은 어려움이 발생하고 있다”며
독재를 적극 두둔하는 민주주의 배신이 아니었던가,
실제로 한국사의 주인공으로 자처하는 민주주의 계승 세력이
북한독재에 침묵하는 기만의 진보, 위선의 진보로
오늘의 진보를 가로막고 있지 않는가,

한국사 교과서를 덮으며 나는 이런 후회를 하게 됐다.
차라리 안 보았을 걸,
한국사를 몰랐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이 더 좋게 보였을 걸...
(2011년 5월 30일-재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