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故) 박정희 대통령 36주기 추모식'이  오는 10월 26일 오전 11시, 국립서울현충원 박정희 대통령 내외분 묘소에서 '민족중흥회' 주관으로 거행됐다.ⓒ연합뉴스
    ▲ '고(故) 박정희 대통령 36주기 추모식'이 오는 10월 26일 오전 11시, 국립서울현충원 박정희 대통령 내외분 묘소에서 '민족중흥회' 주관으로 거행됐다.ⓒ연합뉴스

    '고(故) 박정희 대통령 36주기 추모식'이  오는 10월 26일 오전 11시, 국립서울현충원 박정희 대통령 내외분 묘소에서 '민족중흥회' 주관으로 거행됐다.

    이번 추모식은 민족중흥과 자주국방을 위해 헌신한 고인의 숭고한나라사랑 정신과 업적을 기리기 위한 행사로 유가족, 정관계 인사, 추모객 등 5,000여 명이 참석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5대에 걸쳐 대통령을 역임하면서 4차의 경제발전 5개년계획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조국 근대화를 통해 경제 성장과 자주국방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 박정희 전 대통령 모습.ⓒ뉴데일리
    ▲ 박정희 전 대통령 모습.ⓒ뉴데일리

    박정희 대통령 서거 다음날인 1979년 10월 27일, 경향신문·동아일보·매일경제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차지철실장과 언쟁 끝에 우발적으로 쏜 총탄에 박 전 대통령을 비롯한 5명이 절명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김성진 문공부장관은 27일 상오 7시23분중앙청 기자실에 나와 박대통령의 서거를 발표했다.

    발표 전문은 다음과 같다.

    박정희 대통령께서는 26일 저녁 6시경 시내 궁정동 소재 중앙정보부 식당에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마련한 만찬에 참석하시어 김계원 비서실장, 차지철 경호실장,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만찬을 드시는 도중에 김 정보주장과 차 경호실장간에 우발적인 충돌 사태가 야기되어 김 중앙정보부장이 발사한 총탄으로 26일 저녁 7시 50분 서거하셨습니다.

    박 대통령께서는 총단을 맞으신 후 김 비서실장에 의해서 급거 군 서울병원에 이송되었으나 병원에 도착하기 직전에 운명하신 것으로 원장의 진단이 내려졌습니다.

    차 경호실장을 포함한 5명이 사망했으며 김 정보부장은 계엄군에 의해 구속,조사받고 있습니다.

    정부는 박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는 온국민의 뜻을 받을어 국장을 지내기로 결정했습니다.

    국장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은 추후 발표할 예정이며, 국민 모두는 국장 기간중 조기를 달고 다같이 경건하게 애도의 뜻을 표합시다.

    故박정희 대통령은 1917년 11월 14일 경북 선산에서 태어나, 1937년 대구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사로 3년간 재직후, 1944년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1년 뒤인 1945년, 광복군에서 활동했다.

    박 전 대통령은 정부수립 이후 국군장교로 복무, 1961년 육군소장으로  5·16 군사정변을 주도해 국가재건 최고회의 의장이 됐다. 이후 1963년 대장으로  예편해 민주공화당 총재로 제5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이어 나라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서독에 광부와 간호사를 파견했고, 1964년에는 베트남 파병을 지원하는 정책을 폈다. 

    박 전 대통령은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새마을 운동을 전개해  '하면 된다' 는 국민적 자신감을 고취시켜며 대한민국의 근대화와 산업화의 토대를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