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제부터 나를 세자로 생각하고 또 자식으로 생각했소”

    참혹하고 비극적인 영조와 이선(사도세자)의 부자사이는 한 마디로 단번에 나타났다. 영화 ‘사도’(감독 이준익)는 어떤 순간에도 왕이어야 하며 학문과 예법을 중시한 아버지 ‘영조’와 자유분방한 성격의 세자이자 한 순간이라도 아들이고 싶었던 아들 ‘사도’의 이야기를 그렸다.

    ‘사도세자’ 이야기는 ‘장희빈’ 만큼 익히 다뤄진 내용이다. 조선 21대왕 영조는 기행을 일삼는 둘째 아들 이선을 뒤주에 가둬 8일 만에 굶어 죽게 만든다. 두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의 연을 잇지 못해 조선 역사상 가장 비참하고 비극적인 가족사로 기록됐다.

    영화는 정치적 문제를 다루기보다 아버지와 아들의 시각에서 섬세하게 풀어냈다. 영조는 완벽한 왕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자신처럼 아들 역시 모두에게 인정받는 왕이 되길 바랬다. 하지만 자유분방하고 예술가적 기질을 가진 세자는 아버지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자식이 잘해야 애비가 산다”는 영조의 압박에 더 어긋난 행동으로 두 사람의 갈등은 깊어져만 갔다. 

    이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부모와 자식 간의 통용되는 메시지를 던지기도 한다. 서로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 어긋나는 두 사람의 모습은 여느 부모와 자식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관객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한 이유였다. ‘사도’는 역사적 사실만을 단순히 알려주는 것이 아닌 오늘날 우리에게 관계와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배우 유아인과 송강호의 열연 또한 몰입도를 더한다. 뒤주에 갇혀 날이 갈수록 변해가는 세자의 심리를 군더더기 없이 연기한 유아인에게 찬사가 아깝지 않을 정도다. 특히 그의 광기 어린 연기는 관객을 압도하기도. 

    뒤주에서 숨을 거둔 세자를 바라보며 9분간의 독백으로 표현한 송강호의 연기는 아버지이지만 왕이어야 했고, 왕이지만 아버지일 수밖에 없었던 감정을 자세히 풀었다. 여기에 모성애와 어린 정조의 연기가 더해져 보는 내내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고 있다.

    배우들의 열연, 그리고 인물의 감정만으로 그려진 ‘사도’는 큰 웃음 포인트도, 대단한 볼거리도 없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마음, 그리고 부모와 자식 간의 감정은 관객에게 오롯이 전달됐을 터. 스크린을 통해 실록 속에 있던 두 인물을 우리는 생생하게 마주할 수 있게 됐다. 

    이해와 화합, 그리고 용서 등 감정을 그려낸 ‘사도’는 지난 16일 개봉했다. 12세 관람가. 러닝타임은 125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