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허위 브리핑, 밑의 직원은 허위 사실 제보...덤 앤 더머?

  • KBS 개그콘서트의 '민상토론'에선 지난 4일 밤 박원순 서울시장이 "35번 환자가 1천명이 넘는 군중이 모인 행사장에 다녀갔다"고 밝힌 긴급 브리핑을 긍정적으로 묘사했다. 초기 대응에 미흡했던 정부와는 달리 '35번 환자'의 동선을 공개한 박 시장의 방침은 시의적절했다는 논리였다.

    서울삼성병원 의사 A씨(35번 확진자)가 감염 상태에서 1,500여명이 넘는 사람이 모인 재건축조합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당시 행사에 참석한 시민들이 감염 위험에 노출됐습니다.


    5월 30일 증상이 심화하기 시작했음에도 불구, 35번 환자가 다수의 군중이 모인 행사장에 다녀갔다는 박원순 시장의 발언이 알려지자, 서울 강남구 소재 보건소에는 주민들의 문의 전화와 신고 전화가 폭주하는 등 일대 소동이 벌어졌다.

    그러나 거론된 의사 A씨는 "5월 31일 오후 3시까지만 하더라도 메르스 증세가 전혀 없었다"며 "'증상이 심화된 이후 대외 활동을 벌였다'는 박 시장의 주장은 허위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A씨는 "박원순 시장이 자신을 의사로서의 직업윤리와 양심을 저버린 사람처럼 표현했다"며, "박 시장의 기자회견은 '국민의 불안감을 초래하는 무책임한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대권을 노리는 박원순 시장이 메르스 사태라는 국가적 재난을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데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어떻게 시장이라고 믿을 수 있겠습니까?


    과연 누구의 말이 옳을까? 박원순 시장은 메르스 증세가 발견된 35번 확진 환자가 대규모 군중 집회에 참가했다는 위험천만한 발언을 했다. 반면 거론된 의사는 "증세가 발현되기 이전에 대외 활동을 한 것일 뿐, 증세가 포착된 이후엔 자가 격리 조치에 들어갔다"며 "박 시장의 발언처럼 무책임한 처사를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확인 결과 35번 의사가 거리를 활보한 날짜는 5월 30일이었고, 스스로 자가 격리에 들어간 것은 5월 31일이었다. 확진 판정을 받은 건 이로부터 이틀 뒤. 박 시장의 주장처럼 메르스 바이러스가 발현된 이후 태연자약 행사장에 참석한 게 절대로 아니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잠복기 환자는 바이러스를 체외로 배출하지 않아 전염력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밀폐된 공간이 아닌 개방된 장소에서 메르스 바이러스에 감염될 확률은 극히 희박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소견이다. 그렇다면 5월 30일 35번 확진 환자와 같은 장소에 있었던 1,500여명에 대한 '격리 조치'는 애당초 불필요한 것이었다. 실제로 행사장에 있었던 1,565명 중 현재까지 메르스 질환이 발생했다고 알려진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원순 서울시장은 스스로 자가 격리에 들어간 35번 환자를 마치 개념을 상실한 사람처럼 '위험 인자'로 호도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뿐만 아니라 1,565명 모두가 '35번 환자와 접촉한 사람들'로 오해받도록 해,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을 공황 속에 몰아넣는 악수(惡手)를 두고 말았다.

    당시 온라인에 공개된 관련 기사들을 살펴보자.

    박원순 "메르스 확진 의사, 1500명 이상 접촉"

    서울서 메르스 확진 의사 시민 최소 1500명 이상 접촉

    메르스 확진 의사, 1,500명 넘는 시민과 접촉


    박원순 시장의 영웅적인(?) 기자회견 직후, 평범한 서울 시민이 보면 당연히 겁에 질릴 수밖에 없는 선정적인 기사들이 넘쳐났다.

    해당 기사들로 인해 자신의 질환에 발빠르게 대처한 35번 확진 환자는 무고한 시민들을 위험 속에 빠뜨린 파렴치한 의사로 돌변했다.

    같은 행사장에 참석했던 1,565명은 즉각 격리 조치돼 일상 생활에 불편을 겪은 것은 물론, 가족과 지인들까지 두려움에 떨도록 만들었다.

    35번 확진 환자가 다닌 길목은 악성세균으로 '오염된 장소'로 인식돼, 삽시간에 인적이 드문 공터로 변했다.

    이로 인한 '지역 경제'의 손실은 말할 필요도 없다.

    지자체장인 박원순 시장이 "서울시민의 건강은 내가 직접 챙기겠다"고 밝히면서 국가 방역체계가 엉망진창으로 꼬여버린 것도 간과할 수 없는 패착이다. 예를 들어 각 구청장들이 "시장을 믿지 못하겠다"며 자신이 직접 구민을 챙기겠다고 나선다면, 과연 서울시에서 체계적인 방역 관리를 할 수 있을까?

    이런 데에도 박원순 시장의 긴급 브리핑을 '올바른 처사'였다고, '영웅적인 행동'이었다고 칭송할 수 있을까?

    박 시장의 브리핑은 근거 없는 주장으로 불필요한 공포만 양산한, 선정적인 정치쇼에 지나지 않았다.



  • ◆ 시장은 허위 브리핑, 밑의 직원은 허위 사실 제보

    35번 환자는 일각에서 얘기하는 무개념 '슈퍼감염자'가 아니라, 자신의 몸을 내던져 환자를 돌보던 '의사'였다.

    하지만 박원순 시장의 철없는 일성(一聲)으로, 그는 졸지에 환자들을 사망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는 기피 대상자가 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박 시장의 기자회견은 일선에 나가 있는 의사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되레 치료 수준을 감퇴시키는 역효과를 낳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이는 역시 환자 자신이었다. 기자회견 직후 다수 방송과의 인터뷰를 자처하며 '울분'을 토해내던 35번 환자는 급기야 병세가 악화돼 몸져 눕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솔직히 14번 환자가 어디에 있었는지 모릅니다. 제가 메르스 환자와 접촉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고, 인지하지도 못했습니다.


    6월 11일 '심정지'가 발생하는 고비를 넘긴 35번 환자는 체외 혈액순환기(에크모) 치료를 받는 등 상태가 악화됐다.

    '에크모'는 피를 몸 밖으로 빼내 산소를 공급한 후 다시 몸속으로 넣어 주는 '인공 폐'를 일컫는다. 한 마디로 해당 환자가 자신의 폐로는 산소를 제대로 들이마실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 한국일보는 환자 가족들의 말을 통해 "박원순 시장의 발표 이후 진실공방을 벌이는 과정에서 환자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병세가 악화됐다"고 주장했다.

    이 말이 맞다면, 35번 환자가 위중한 상태에 빠지게 된 건, 일종의 '화병(火病)' 때문이라는 논리도 가능해진다.

    이와중에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는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박 시장의 브리핑에 부화뇌동한 일부 언론이 멀쩡히 살아 있는 35번 환자를 '사망했다'고 주장하는 초대형 오보를 낸 것이다.

    한국일보는 지난 11일 오후 6시33분 <[단독] "메르스 감염 삼성서울병원 의사 뇌사">라는 기사를 내보내 전국민을 '멘붕'에 빠뜨렸다.

    이에 다수의 언론사들도 "35번 환자가 뇌사 상태에 빠져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는 한국일보의 보도를 인용하며 논란을 부채질했다.

    결과적으로 이 기사는 완벽한 오보였다. 의료팀이 뇌사를 공식 확인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관계자들의 말'을 가감없이 인용 보도한 게 패착이었다.

    한국일보에 엄청난 허위사실을 귀띔한 관계자는 놀랍게도 서울시 관계자였다.

    서울시장이 허위 사실 브리핑으로 35번 환자에게 심적 충격을 안기더니, 밑에 있는 직원은 아예 생사람을 죽었다고 표현하는 더 큰 실수를 저질렀다.

    이보다 더 한, 덤 앤 더머(Dumb and Dumber)가 또 있을까?



  • ◆ 공개석상에서 한 사람을 '오염 덩어리'로 매도한 서울시장

    한국일보는 '사건 당일' 수시간째 오보를 지우지 않고 있다가 '미디어오늘' 등 일부 매체가 오보 가능성을 거론하자 그제서야 '뇌사'라는 표현을 '뇌손상'으로 수정했다.

    오보 기사가 공개된 것은 11일 오후 6시 33분. 수정 기사가 업데이트 된 시각은 오후 11시 10분이었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 동안 셀 수 없이 수많은 댓글들이 달릴 정도로 35번 환자의 사망여부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뜨거웠다.

    안타까운 것은 댓글 중 상당수가 입에 담기조차 힘든 수준의 악플이었다는 점이다.

    "아마도 살아나면 또 악다구니 쏟아낼 것."

    "저 사람이 무사하길 빌어줄 시간에 저는 버려지는 유기견들을 떠올릴 것."

    "그냥 고통 받다가 뒈졌으면 좋겠다."

    "이래서 사람은 주댕이 함부로 털면 안됨."


    생명에 대한 자비심은 눈을 씻고 찾아보기 힘든, 패륜적인 단어들로 점철된 글들이었다.

    만일 이같은 글들을 당사자가 직접 목도하게 된다면 그 심정이 어떨까?

    박원순 시장이 내뱉은 한 마디는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한 사람의 고귀한 생명을 농락하는 '복마전(伏魔殿)'을 온라인에 잉태하고 말았다.

    박원순 시장의 기자회견을 보고 스트레스를 받아 몸져 누웠다는 35번 환자의 안타까운 사연은 오래전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의 참사를 떠올리게 한다.

    2004년 3월 어느날 남상국 전 사장은 서울 한남대교에서 한강으로 투신했다. 그는 "대우건설 사장처럼 좋은 학교 나오고 크게 성공한 분이 시골에 있는 별 볼일 없는 사람에게 가서 머리 조아리고 돈 주고 하는 일이 이제 없으면 좋겠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보고 충격을 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민이 시청하는 방송에 나와 "'머리 조아리고 돈 주고 하는 일'을 했다"며 공개 망신을 시킨 행동이나 ▲한밤 중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메르스 감염 의사가 1,500여명이 넘는 사람이 모인 재건축조합 행사에 참석했다"고 폭로한 행동, 그리고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을 두고 죽었다는 오보를 날리고, 온갖 패륜적인 저주글을 퍼붓는 사람들의 댓글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

    경중의 차이만 있을 뿐, 한 사람의 인격을 짓밟고 살아갈 용기마저 잃게 만드는 '악랄한 처사'라는 점에선 대동소이하다고 볼 수 있다.

    매년 공기 감염으로 전파되는 결핵으로 2천여명이 죽고, 계절 독감으로는 2천3백여명이 사망했다는 통계 자료가 있다. 대한민국을 공포에 떨게 했던 신종플루 사망자는 연간 2백명 수준이었다.

    통계학적으로 보면 지금 한국에서 메르스보다 더욱 심각한 질환은 '결핵'이다. 사망자 숫자로 볼 때 결핵이야말로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해야 할 만큼 무서운 질병이 아닌가?  

    만일 (결핵 정도의)전염병 확진 환자의 신상과 이동경로를 낱낱히 공개하는 원칙을 위정자들이 고수한다면, 대한민국은 걷잡을 수 없는 혼돈과 무질서에 빠질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자중자제하는 인내가 필요하다.

    하지만 아직도 선전선동을 일삼는 몰지각한 이들을 추종하거나 함부로 편승하는 이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는 게 현실이다.

    어찌보면 바이러스 퇴치보다 메르스의 위험을 과장해 사회 혼란을 조장하는 무리를 척결하는 일이 더욱 시급한 과제일지도 모른다.


  • 강용석 "박원순, 아들 군면제 재판 덮기 위해 한밤 브리핑"

    - 4일 밤 박원순 시장이 무리수 둔 까닭?

    변호사 강용석이 "박원순 서울시장이 늦은 저녁 긴급브리핑을 자처한 이유가 아들 때문"이라는 견해를 내비쳐 주목된다.

    강용석은 지난 11일 방송된 JTBC '썰전'에 출연해 "그날(6월 4일) 박원순 시장이 얻은 것은 이틀간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오른 것이었다"며 "혹시 다른 뉴스를 덮기 위해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찾아봤더니, 실제로 이날 박원순 시장 아들의 재판이 열렸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3일 서울중앙지법 311호 법정(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7부, 재판장 심규홍)에서 열린, (박원순 시장의 아들)박주신씨의 병역비리 의혹을 제기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양승오 박사 등 시민 7명에 대한 재판을 가리킨 것. 이날 열린 재판 내용은 이튿날 뉴데일리 지면에 공개돼 큰 화제를 불러 모은 바 있다.

    강용석은 "박원순 시장 아들이 허리 디스크로 면제를 받았는데 그때 찍었던 디스크 사진과 이번에 찍은 사진이 다르더라"며 강한 의혹을 제기했다.

    한편 이날 강용석은 "박원순 시장의 한밤 브리핑이 결국 국민의 불안감만 키웠다"며 "해당 의사는 이미 격리 조치된 상태였다"고 주장, 또 다른 패널 이철희와 맹렬한 입씨름을 벌였다.

    또 강용석은 "JTBC 여론조사 결과, 서울시민 중 박 시장의 브리핑이 적절했다는 의견이 55%, 부적절했다는게 32.8%로 나왔다"는 김구라의 말에, "나중에 전체 과정을 두고 보면, 과연 바람직한 대처였느냐하는 점에선 다른 답이 나올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