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 출신 총리 반대하고 맞이한 대선에서 이긴 적 없어
  • ▲ 충청 출신 총리로서 지명 당시 야당의 거센 반대를 받고, 국회 본회의 임명동의안 표결 과정에서도 진통을 겪었던 대표적인 정치인인 김종필 전 자유민주연합 총재(사진 오른쪽)와 정운찬 전 서울대학교 총장(왼쪽). ⓒ조선일보 사진DB
    ▲ 충청 출신 총리로서 지명 당시 야당의 거센 반대를 받고, 국회 본회의 임명동의안 표결 과정에서도 진통을 겪었던 대표적인 정치인인 김종필 전 자유민주연합 총재(사진 오른쪽)와 정운찬 전 서울대학교 총장(왼쪽). ⓒ조선일보 사진DB

    충청도의 저주를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피해갈 수 있을까.

    문재인 대표가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검증 과정에서 정부·여당에 타격을 가하는데 성공했지만, 그 댓가로 이른바 중원 민심과 등지게 됐다는 뼈아픈 지적이 나온다.

    지난 11일 이완구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강희철 충청향우회 명예회장의 "충청도에서 총리가 났는데 호남 분들이…"라는 말은 충청 민심을 대변하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 따르면, 11일까지 대전·충청 권역에서 이완구 후보자에 대한 여론은 찬성 33.2% 반대 57.4%로 전국 단위와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강희철 명예회장이 증언한 이튿날인 12일 조사에서는 찬성 66.1% 반대 31.2%로 불과 하루 만에 급변했다.

    이와 관련, 정치권에서는 역대 충청 출신 총리에 박하게 대한 제1야당이 정권 교체에 성공한 적이 없다는 말이 떠돈다.

    거슬러 올라가면 지난 1998년 2월, 김대중 대통령은 김종필 자유민주연합 총재를 국무총리로 지명했다. 하지만 당시 161석의 거대 야당이던 한나라당 지도부는 임명동의안에 협조할 생각이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3월 2일에 표결이 한 차례 시도됐으나, 한나라당 원내지도부가 김종호·박세직·이신행 등 당론과는 반대로 가(可)표를 던질 조짐을 보이는 의원들에게 백지 투표를 강제하자 이를 두고 본회의장에서 거친 몸싸움이 벌어져 표결이 중단됐다.

    이후 김종필 총재는 총리서리로 임명돼, 8월에 여2당(국민회의~자민련) 단독으로 임명동의안이 통과될 때까지 6개월간 서리로 지내야 했다. 4월에 날이 풀리자 삼청동 총리 공관을 출입하던 기자들을 상대로 "봄이 왔는데 서리가 녹지 않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라고 농담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JP는 농담으로 정국을 순리대로 풀어갔지만, 비등한 충청권의 분노는 한나라당에 악재로 돌아왔다.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가 당시 한나라당을 탈당해 자민련으로 당적을 옮긴 것도, 김종필 총리서리를 너무 오랫동안 인준하지 않는데 대해 충청 민심이 들끓어 지역 정치인으로서 도저히 이를 외면할 수 없는 상황에까지 내몰렸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충청도 출신 총리 홀대에 따른 중원 표심 악화는 세종시 남행천도 공약과 맞물리면서 파괴력이 더욱 커졌다. 결국 2002년 대선에서 충청도 출신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영남 출신인 민주당 노무현 후보보다 충청권에서 표를 덜 얻는 굴욕을 겪으며 패하고 만다.

  • ▲ 충청 출신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새정치민주연합의 공세가 거세지자, 대전·충청 지역에 나붙은 플래카드들. ⓒ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 충청 출신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새정치민주연합의 공세가 거세지자, 대전·충청 지역에 나붙은 플래카드들. ⓒ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이명박 정부 시절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국무총리로 지명했을 때 민주당의 반대도 문제였다. 2008년 9월 이명박 대통령은 충남 공주 출신의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국무총리로 지명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인사청문회 과정부터 사소한 흠결을 이유로 어깃장을 놓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정세균 당시 대표가 '인준 불가' '협조 불가'를 외치기에 이른다.

    당시 여당이던 한나라당은 친박연대, 무소속 등을 끌어들여 177명이 재석한 가운데, 정운찬 총리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여당 단독으로 처리해야만 했다. 이 역시 2012년 대선에서 중원 표심을 잡는데 민주당에 하등 도움이 될 것이 없었다는 지적이다.

    최근 리얼미터 여론조사에 따르면 새정치연합과 문재인 대표의 지지율은 동반 상승하는 추세이지만, 유독 대전·충청 권역에서는 역주행 현상이 눈에 띈다. 설 연휴 직전인 16일 발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에 따르면 문재인 대표의 지지율은 전주보다 6.7%p나 상승해 25.2%를 기록했다.

    하지만 대전·충청권에서는 역으로 11일 35.8%에서 13일 19.6%로 이틀 동안 16.2%p가 빠져 이른바 '반토막'이 났다.

    충청권 민심은 여야의 지역 할거 구도 속에서 항상 대권의 '캐스팅보트' 역할을 해왔다. 새정치연합과 문재인 대표가 향후 어떤 방식으로 '충청도의 저주'를 피해가려 할 것인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