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탈북사회를 빛나게 장식한 10인
    올해의 자랑찬 탈북인

    1 영국 BBC방송이 선정한 '올해의 세계 100대 여성'이 된 탈북 대학생 박연미

    그는 현재 대학생으로 세계무대에서 참혹한 북한 인권 상황과 인권실체를 비판하는 정치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에 그가 쓴 '북한 장마당 세대의 희망'은 미국 워싱톤 포스트에 게재되면서 세계 언론의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 또한 세계인권의 날에 미국 국무부 청사로 초대된 박연미 씨는 유창한 영어로 북한 인권에 대하여 고발하면서 끝내 눈시울을 적셨다. 그 밖에도 인기 프로그램인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 출연하여 본인만의 독특한 입담으로 많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2. 정의를 지지하고 인권탄압 행위를 세상에 알리는
       ‘인권의 살아 숨 쉬는 표본’으로 불리는 탈북운동가 신동혁
     
    북한정치범수용소 출신의 탈북자 신동혁씨는 올해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가 수여하는 '엘리슨 데스 포지스 인권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그는 탈북 후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곳에서 저술, 강연을 통해 북한의 인권 탄압에 대한 생생한 증언을 했다.

  • 올해 북한 정권이 신동혁 씨의 아버지까지 내세워 그의 증언이 거짓이라는 동영상을 공개했다. 그는 북한의 이러한 술책에도 자신만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북한이 공개한 동영상이 사실이라면 아버지를 만나게 해달라고 당당히 주장했다.
     
    신동혁 씨는 북한 정권에서 힘겹게 살고 있는 아버지를 생각해서라도 세계 무대에서 북한의 진실을 계속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3.  어제도 오늘도 언제나 부르는 친근한 이름, '탈북자의 아버지' 김용화 회장
     
    '탈북난민인권연합' 대표 김용화 씨는 회장이란 지위보다 '탈북자의 아버지'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사람이다. 그가 일하는 회사는 답십리에 위치한 조그마한 사무실과 기부한 물건들을 쌓아놓은 창고가 전부다.

  • ‘탈북난민인권연합’에는 한국에 정착한 초기 탈북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들에게 탈북난민인권연합은 낮선 곳에서 어렵지 않게 손 내밀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이다. 김용화 회장은 탈북자 지원으로 들어 온 옷가지나 생활필수품, 두부, 쌀도 상하지 않게 전달하려고 자신이 직접 운전대를 잡고 탈북민들을 찾아다닌다.

    '탈북난민인권연합'은 단순히 탈북자들의 어려운 생활에만 도움을 주는 곳이 아니라, 모든 것이 새롭고 정착이 힘든 탈북민들에게 사랑까지 함께 전해주는 친근한 곳이다. 그들에게 전하는 따뜻한 사랑에는 김용화 회장의 뜨거운 마음이 함께 깃들어 있다.

    4.  탈북자들의 성공 정착과  탈북장애인 독고노인들에게 웃음을 가져다주는
       '겨레얼 통일연대' 장세율대표
     
    '겨레얼 통일연대' 장세율대표는  지난 1년동안 각종제보와  시사프로그램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기여 한 공로로 2014년 KBS 시민기자상(금상)을 수여받았다.

    올해로 남한에 들어 온 탈북자 수는 2만 8천명에 육박하고 있다. 그 중에는 장애인과 무연고 어르신도 적지 않게 포함되어있다. 장세율대표는 장애로 인해 많은 심리적 고충을 겪고 있는 그들을 위한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어 진행하고 있다.

  •  현재 서울시를 비롯한 수도권 내에 살고 있는 장애인, 독고노인들은 이곳에 모여 음악을 통한 심리치료와 남북의 노래를 배우면서 두고 온 고향에 대한 추억과, 남한의 문화를 하나하나 배워가고 있다.

    2015년에는 심리교육과정도 더 넓혀 탈북장애인들과 어르신들에게 새로운 활력소를 만들어주며 그들이 남한에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이 장세율 대표의 결심이다.

     5. 연 매출 10억을 자랑하는 중소기업의 자랑찬 탈북인 신경순 대표
     
    북송과 재 탈북의 어려운 고비를 넘어 2008년에 한국에 정착한 신경순 대표는 탈북자 코리안 드림을 이룬 사업가이다. 신분이 보장되지 않은 중국에서 그의 생활은 그야말로 살얼음 위를 걷는 조바심의 연장이었다.

    항시적인 위험이 따르는 중국에서 그가 결심한 것은 오직 살기 위해서 남한으로 오는 길밖에 없었다. 그렇게 정착한 남한에서 그의 오늘을 있게 해 준 원동력은 차곡차곡 모아놓은 월급과 새터민 취업장려금이었다.

  • 그가 회사를 꾸려가고 운영하는 과정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열심히 일해도 아무것도 차려지지 않은 북한에 비하면 남한은 나에게 기회를 주는 땅이라고 생각했다.

    신 대표는 회사가 성공 할 수 있었던 비결은 신뢰와 자존심을 걸고 믿을 수 있는 신선한 약 밤을 판매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의 앞으로의 꿈은 ‘신영무역키즈약밤’ 탈북자 직원들과 한 가족처럼 믿고 일하면서 어떤 조건에서도 남보다 더 앞질러 나가는 사업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6. 남남북녀를 하나로 이어주는 '남북사랑 결혼정보이브'의 김민정 대표
     
    2006년 남남북녀결혼정보회사에서 매니저로  활동하면서 그가 느낀 것은 직업적인 긍지감이다. 혈육도 없이 홀로 남한에 정착한 탈북여성들에게  새로운 가정을 만들어 주는 것이 김민정 대표에게는 너무도 보람 있고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2년 후 정식으로 '남북사랑결혼정보' 회사를 설립하고 새롭게 사업을 시작했다. 김 대표는 남성회원들과 여성회원들이 미팅에도 집적 참가하여 그들이 서로의 마음을 열고 진심으로 다가 설 수 있도록 노력했다.

  • 12월에 접어들면서 김민성 대표는 올 한해 새롭게 맺어진 인연이 사랑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회원들과의 미팅에 전심전력하고 있다. 그의 성과는 MBC '우리는 한국인'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보다 상세하게 소개된 바 있다.

     7. 시청률 1위로 달리고 있는 애정통일 '남남북녀'의 박수애 김은아.
     
    남한 총각과 북한 미녀의 가상결혼 생활을 통해 통일이라는 만남을 이루어내는 과정을 그린 프로그램에 출연 한 박수애 김은아는 북한 여성의 실질적인 풍모와 생활을 그대로 보여줘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 현재 시청율 1위로 달리고 있는 ‘남남북녀’는 출연자들의 부드럽고 예쁜 이미지와 투박하면서 솔직한 북한식 말투로 시청자들은 재미와 감동을 받고 있다. 그들은 60년의 서로 다른 문화 속에 살아온 남북 상황을 리얼하게 그려냈다. 오늘도 박수애 김은하씨는 북한여성의 매력과 특유를 TV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8.  양꼬치 식당의 어엿한 김도정 사장

    김 사장은 현재 양 꼬치 식당을 운영하지만 그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만 해도 무엇부터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 과정에서 그가 체득한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하는 법과 적게 쉬더라고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김도정 사장은 열심히 노력한 결과 홈쇼핑에도 진출했고, 동남아수출도 계획 중이다.

  • 환경이 바뀐다고 노력하지 않으면 과거의  북한생활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김도정 사장의 가치관이다. 그는 지금보다 더 행복하고 윤택한 삶을 위해서는 북한에서 살던 이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9. 목숨 걸고 탈북 한 후배들에게 희망과 신심을 주고 싶은 임향 상담사
     
    국립중앙의료원 안에는 탈북자들은 위한 '새터민 의료상담실'이 있다. 이곳은 남한에 정착하고 있는 새터민들이 건강상 문제로 자주 찾는 의료상담실이다.

    이곳에서 탈북자 전문상담사로 일하고 있는 임향씨는 2007년에 한국에 온 새터민이다. 그는 하루에도 수많은 탈북자들과 상담하면서  그들이 이곳에서 부딪혀야 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과 해결을 위한 깊이 있고 실속 있는 상담을 진행한다.

  • 임 씨는 "돈을 벌어 북한의 가족들에게 보내는 것을 유일한 행복으로 생각하는 새터민들에게 건강은 가장 큰 재산이라고 했다. 또한 한국사회에 잘 적응하려면 새터민들의 괴로운 마음을 기댈 곳을 만들어 주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그가 일하는 상담실은 크지 않은 공간이지만 탈북자들을 위한 진실한 마음이 엿보이는 애틋한 사랑방이다. 임향씨는 '후배탈북자에 희망을 주는 탈북상담사'로 연합뉴스에 소개된 바 있다.

     10.  강남 한의원 원장에서 글로벌 의사가 된 탈북인 이충국원장
     
    이충국 원장은 북한에 살 당시 아버지가 남한 출신이라는 이유로 노동당 입당을 거부당했고, 미래가 없는 방랑객으로 암울한 나날을 보냈다. 중국으로 탈북해 살면서 남한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는 한국에 입국한 뒤  '경희대'에 편입하여 7년간 공부에 열중했다. 그 결과 2002년 한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하는 행운을 맞았다. 경쟁이 치열한 한국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그의 노력은 순탄치 않았다.

  • 이 원장은 은행에서 대출한 자금으로 경기도 하남시에 자그마한 한의원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점점 입소문이 나면서 주위의 권유로 강남까지 오게 되었다. '진정을 얻고 싶으면 진심을 주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부보님의 가정교육이 오늘의 자신을 만들 수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최근에는 치료효과에 대한 긍정적인 입소문이 일본까지 퍼져 주중에는 강남에서, 주말에는 해외로 진료를 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는 성공비결에 대해  '지금이 힘들지만 나중에는 잘 살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든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최초 탈북자신문 뉴포커스=뉴데일리 특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