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회 이승만 포럼] 원문으로 본 그 비밀의 정체

스탈린 지령문 "북한에 소련체제 이식은 이렇게 하라"

이지수 명지대 교수 | 최종편집 2014.06.24 16:19:22

제40회 이승만포럼
2014. 6. 19(목) 오후2:30~4:30 정동제일교회 아펜셀러홀

북한의 소련 체제이식은
동유럽의 경우와 어떻게 달랐는가? 

 

이지수(명지대학교, 정치학)
           




     1. 소련과학아카데미 산하 동방학연구소, 소련과 북한관계(1945-1980),
         모스크바,  나우카 출판사, 1981. 13쪽.



2. 일본 아사히 신문, 1993.2.26. 조간, 









3. 쉬킨 보고서
(다음은 졸고, “북한의 단독정권 수립과정과 정치적 함의,” 한국정치외교사논총, 34집 2호, 2013.2, 104~105쪽 내용을 전재한 것임. )

   …(공산당의) 목적은 소련에 우호적인 단일-여기서 단일이란 의미는 "단일한 대오"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남북을 하나로 묶는 통일이란 의미가 아니라 북조선내에서의 내적 통합성을 강조하는 의미이다-독립민주공화국을 수립할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공산당은 초기 심각한 정치적 좌경의 오류/소비에트 질서의 복사/ (45년 9월 20일자 스탈린의 비밀지령문 1항에 언급한 바, 소비에트 질서를 도입하지 말라고 적시되어 있다-필지 첨가)를 범했다. 이후 당노선은 바로 잡혔으나 아직 부르주아 민주진영 출신의 사회 활동가를 광범위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지방자치기관과 북조선의 경제, 정치를 지도할 능력이 있는 단일한 조선행정 중앙이 없음이 현 정치정세에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다. 일부 도 인민위원회들은 이러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는 자기 도내에서 조차 진정한 정권기관 구실을 못하고 사회에 대한 관리 통제 기능을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주둔군 사령부가 조직한 행정총국들은 아직도 해당 경제분야에 대한 지도를 원만히 수행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1945년 9월 21일자(혹은 9월 20일자라는 기록도 있다. 이것은 실제 모스크바에서 문서가 작성된 시점은 9월 20일이고, 그 시점이 평양에서는 이미 9월 21일이기 때문이다.) 최고사령부 훈령에서 언급한, "북조선에서 민주정당 사회단체들의 광범위한 불록에 기초한 부르주아민주주의 정권 창설(굵은 표시 필자 첨가)을 목표로 한 노선이 절대적으로 미흡하다.…

  …결론

1. 반일 민주 정당 사회단체의 광범위한 블록을 토대로 한 북조선의 부르주아민주개혁이   너무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
2. 조선에서 소련 군대가 철수될 경우 소련의 국가 이익을 보장할 수 있는 굳건한 정치 경제적 교두보를 아직 쟁취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주의 민족간부가 아직 충분하게 파악되지 못했다. 현재 북조선에서 인기가 높은 인사들은 공산당 지도자 김일성과 박헌영, 민주당 지도자 조만식이 있는데 조만식의 소련에 대한 정치적 입장은 아직 모호하다. 연해주군관구 평의회에 따르면 민주주의 단체들을 지도할 수 있고 소련의 이익을 고수할 수 있는 민주주의 민족 간부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4-5개월이 소요 될 것이다.
3. 최단 시일 내에 북조선 경제를 복구하고 민족 간부를 양성하는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북조선내 정권의 중앙집권화하여 이를 민주활동가들에게 넘겨주어야 한다.
4. 인민민주주의운동은 대지주의 토지소유 현실 때문에 지장을 받고 있다. 빠른 시일 내에 농지개혁을 실시해야 한다.(농지개혁과 관련한 다른 문서에서는 "반동 친일세력의 기반을 허물기 위해서"라고 언급된다. 여기서 반동이나 친일, 대지주는 반소와 동의어이다.(필자 주)
5. 25군 사령관 산하 민정기구는 북조선 정치 경제 상황을 관장할 수 있는 간부들의 충원을 통하여  조직을 정비 강화하여야 한다. 연해주군관구 및 25군 군사평의회는 소련에 대해 호의적이며 조선에서 소련의 정치적 입장을 굳건히 지켜줄 수 있는 신참 민주간부를 선발하고 양성하는 데에 보다 큰 관심을 기울려야 한다.

이상은, 소련외무성의 다음 문서를 필자가 번역한 것이다.
   АВП. Ф.013 оп.7, п.4, д.46, лл.3-13. 

4. 쉬킨 보고서에 관한 국내 신문 보도.

구소련의 북한 장악음모 “결정적 자료”/쉬킨 중장 비밀보고서 내용·의미
[한국일보]|1995-08-14|14면 |북한 |텍스트 |2849자

◎45년 9월 스탈린지령 이행과정·후속조치 담아/동구처럼 신탁통치 결정 전 이미 단독정권 의도 구소련은 북한진주 초기단계부터 38선 이북에 자국의 정치 경제 군사적 이익을 보장할 친소정권을 수립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음이 더욱 확연해졌다.
국내외 학계에서는 소련이 늦어도 45년 10월께는 북한에 친소 단독정부를 수립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보고 있었으나 이를 입증할 1차 자료의 빈곤에 시달려왔다. 이 같은 상황에서 본보가 입수한 소련군 총정치사령관 쉬킨 중장의 비밀보고서는 소련지도부의 북한 내 단독정권 수립의도를 보다 확실히 뒷받침해주는 문서로 주목된다.
특히 이 보고서는 45년 9월 20일 스탈린이 연해주 군관구와 25군 군사위원회에 보낸 북한정권 수립에 관한 비밀전문의 후속문서라는 점에서 스탈린정권 내부에서 진행된 북한장악 음모를 알려 주는 결정적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스탈린의 비밀암호전문은 지난 81년 소련 과학아카데미 동방학연구소가 간행한 「소련과 조선인민의 관계 (1945∼80) 」라는 자료집에 수록돼 처음 공개됐었다(이 자료집에는 당초 스탈린 암호전문 중 제1·2항 및 7항이 빠져 있었으나 지난 93년 2월 일본의 마이니치(매일)신문이 이를 입수, 보도했다).
그 제1·2항은 북조선지역에 소비에트정권 및 체제를 구축하지 말고 광범위한 블록을 기초로 한 부르주아 민주정권을 수립하라는 내용이다. 이 내용을 놓고 학계에서는 두 가지 해석이 나왔었다. 하나는 부르주아 민주정권이란 공산당을 블록의 중심으로 하는 친소 인민민주주의 정권을 의미한다는 주장이었고 다른 하나는 스탈린은 점령당시 한반도 분단계획이 없었으나 이후 상황이 바뀌자 생각을 달리하게 됐다는 해석이었다.
따라서 이번 문서는 스탈린이 처음부터 부르주아 민주정권의 의미를 한반도에서 소련의 정치 경제적 이익을 담보할 토대로 규정, 북한에 동유럽에서와 같은 친소정권을 세워 소련의 국가이익을 추구하려 했음을 보다 명확하게 입증하는 자료인 셈이다. 특히 이 보고서는 45년 12월 27일 한반도 신탁통치를 결정한 모스크바 삼상회의에 앞서 작성된 것이어서 소련이 남북한 단일정권 수립에 찬성한 것처럼 알려진 것과는 달리 북한 단독정권 수립을 의도하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은 소련이 친소정권 수립의 발판으로 토지개혁을 이용했다는 점이다. 북한의 친소세력은 46년 3월 토지개혁법령을 발표, 토착지주세력의 제거에 들어갔다. 이 시도가 친소세력의 실권 장악이라는 정략적 의도에 의한 것임을 알 수는 있었으나 이를 입증하는 문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따라서 토지개혁 3개월 전인 45년 12월 쉬킨 중장이 「북한의 인민민주주의 운동을 방해하는 지주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토지개혁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대목은 소련이 단독정권 수립 과정에서 토지개혁을 친소세력에 대한 지원책으로 구사했음을 입증해주고 있다.
쉬킨이 『지난 45년 9월 21일(스탈린비밀암호 전문을 수령한 날짜) 최고사령부의 지령서에 명령된…」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데서도 이 보고서가 스탈린 지령에 대한 이행과정과 후속조치를 담은 것임을 알 수 있다. 단국대 김학준 재단이사장은 『45년도 북한―소련관계에 대한 자료가 빈약한 상황에서 이 보고서는 북한점령 초기 소련의 속셈과 구상을 명확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한 문서』라고 평가했다.<모스크바=이장훈 특파원>

◎쉬킨 중장은 누구/북 정치 공작 총괄…당시 3인자
요시프 바실리예비치 쉬킨 중장은 당시 소련군 총정치사령관으로 점령지인 북한에 대한 정치공작을 총괄하는 인물이었다. 1945년부터 49년까지 총정치사령관이라는 중책을 맡을 만큼 최고지도자 스탈린의 총애를 받았으며 비밀경찰 체카(구소련 KGB의 전신)의 총수 베리아에 이어 제3인자라는 소리를 들었다.
1906년생인 쉬킨은 공산당 고급학교 「쿠룹스카야학교」를 졸업한 뒤 1939년 공산당 최고정치공작 코스를 수료하는 등 철저하게 공산주의자의 길을 걸었으며 군내에서는 반스탈린 세력을 제거하는 정치군인으로서 입지를 넓혔다.
2차 세계대전 중이던 42년 레닌그라드 군관구 정치사령관을 맡았던 그는 독일항복과 함께 총정치사령관으로 발탁돼 전후 동유럽 등에 진주한 소련군의 정치조직을 이용, 점령지역에 소비에트 괴뢰정부를 세우는 작업에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흐루시초프가 집권하면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 이후 공산당 중앙위원, 최고회의 대의원에 머물다 73년 사망했다.



□쉬킨 보고서 요지

◇쉬킨 중장 비밀 보고서 주요내용(1945년 12월 25일)
1945년 9월 21일자(스탈린 암호전문 수령일자) 최고사령부지령서에 명령된 부르주아 민주주의 정권수립은 아직 결정적으로 달성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다음과 같이 보고한다.

1) 반일 민주주의 정당과 단체들을 기반으로 한 북한 부르주아 블록결성은 매우 느리게 진행 되고 있다.
2) 우리는 앞으로 북한에서 철군할 경우 우리국가 이익을 보장할 수 있는 정치·경제적 지위  를 아직 얻어내지 못하고 있다.
민족민주주의적 간부들도 아직 양성되지 못하고 있다. 현재 민족 민주활동가 중 인기가 높은 인물은 공산당 지도자들인 김일성과 박헌영, 그리고 민주당 지도자인 조만식 등이다. 그런데 조만식의 소련에 대한 입장이 무엇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관구 군사위원회 의견에 의하면 우리 국가 이익을 보장할 수 있는 민족민주간부들을 양성하는 데는 4∼5개월의 기간이 더 필요하다.
3) 북한지역의 경제복구와 민족 민주간부 양성 같은 과업을 달성하려면 북한에서의 현 정치를 중앙화시키고 민족민주주의자들이 이를 잘 이용, 정권을 획득해야 한다.
4) 인민민주주의운동은 북한의 강력한 지주세력들에 의해 방해받고 있다. 이 때문에 가까 장래에 농업분야(토지)개혁을 잘 진행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5) 제25군 직속의 이른바 민정조직을 잘 관리하고 북한의 정치 경제를 조정키 위해 우수한 소련간부들이 민정조직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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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박헌영과 조선공산당 중앙위원회는 또 남조선에서 공산당을 합법화하는 문제를 조정해 줄 것과 소련과 미국 사이의 관계를 악화시키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어떻게 사업을 진행하여야 할 것인가에 대해 지시를 기다린다고 했다.”(1945. 11. 5. 총정치국 제 7호 총국 부국장, 사포쥬니코프의 보고서)

6. “남조선에서 미국인들이 유엔 임시위원회의 협조 하에 금년 5월 10일로 예정된 선거를 실시하고 남조선 단독정부를 수립한 뒤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초안을 북조선 영내에서 실시하고 최고인민회의 선거를 실시하고 내각 정부를 수립하여야 합니다.”(몰로토프 당시 정보위원장에게 보내는 말리크-당시 주 유엔 소련 대사, 스티코프 장군, 툰킨의 공동보고서를 공산당 중앙위에서 소련외무성에 1948. 4. 19. 전달함)

7. “남조선에서 단독선거가 단행되어 남조선 정부가 수립될 경우 북조선 인민회의 조기회의 소집을 권장하여 다음과 같은 결정을 채택할 것:

1) 금후 조선이 통일될 때까지는 북조선 인민회의 4월 회의에서 승인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 초안을 북조선 영내에 실시한다.
2) 본 헌법에 기초하여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진행 할 것. 금후 조선이 통일될 때까지 최고인민회의는 북조선 영내에서 최고 주권기관이 된다.
3) 최고인민회의는 조선정부를 창설할 것.(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결의사항을 소련 외무성에 1948. 4. 19. 전달한 문서)

8. 미소공동위원회 재개 시점에서 소련대표단에게 보내는 훈령
위원회는 종전의 입장을 고수해야 함. 조선 문제에 관한 모스크바 결정을 무조건 지지하는 민주정당 및 사회단체와만 상담해야하며, 모스크바 결정을 적극 반대하였거나 반대하고 있는 또는 동맹국(소련을 지칭)을 반대하고 있는 대표 등을 공동위원회와의 상담에 추천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펴야한다. 이 원칙적인 입장을 고수해야하며 양보해서는 안 된다.

9. 동유럽과 북한의 공통점 / 차이점

동구
북한
경제
토지개혁(무상몰수/무상분배)
--> 협동 농장
협동 농장화가 늦음-
       6.25전쟁
Sovietization
localization
Sovietization
정치
공산당->노동당->공산당
공산당->노동당 유지
지도자
민족주의적 공산주의자
가장 젊은 지도자/소련군 대위
당권
공유
사유=상속
대 중소 관계
소련의 일방적 영향권
중소 사이 줄타기
체제 이행
순항으로 경제 위기 모면
체제 고수로 경제 위기 가중

 

10. 사회주의 체제의 세속화 유형인 소비에트 체제를 이식한 북한에서는 결과적으로 소비에트 권력이 사유화된(세습) 형태의 (강성국가가 아니라) 초강성 권력이 탄생함.

11. 사회주의 체제
1) (공산체제로 이행하는) 과도체제이자 세계 공산혁명을 지향하는 혁명체제
2) 궁극적으로 소멸될 국가 중심 편제가 아니라 혁명 수행을 선택 집중한 편제.
3) 혁명의 지휘부는 일종의 전투 사령부이므로 복수가 아닌 단수로 상정.
4) 정치권력의 집중체인 공산당의 보위가 제 1순위. 당의 위기는 리더십 교체로.
4) 세계 혁명의 완수는 일종의 Holy War에서의 승리.
5) 전시 체제적 성격으로 본질적으로 정치적 군사적 긴장 의존성이 높다.(긴장을 생산하기       도)

12. 북한 체제
1) 자기 시스템으로의 조국통일을 지향하는 혁명체제.
2) 노동당 중심의 편제 -> 김일성 가계 중심 편제. 
3) 정치권력은 당의 권력이라는  공개념이 아니라 김 씨 가문의 권력이라는 사개념화.
  세습=사유화
4) 국가보다 당을 우선, 당보다 수령 우선.

13. 권력의 역사 

 

이명영
필자
접근 방식
역사적 접근
권력 체계적 접근
권력의 기반
왜곡된 신화
통제 및 위기 의존성
전망
역사 허구성이 밝혀지면 붕괴 될 것.
통제 혹은 위기의 이완으로 권력이 와해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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