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평가전 참패...국가대표의 마음가짐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연합뉴스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연합뉴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

    1988년 이문열 작가의 소설이 모태가 돼 나온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가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한국영화로 남았다면, 2014년 6월 10일 가나전은 죽기 전에 절대로 다시 봐선 안될 최악의 축구 경기로 남을 것이다.

    10일 오전 8시(한국시각)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월드컵 축구대표팀이 아프리카의 강호, 가나를 상대로 0-4로 대패하는 모습을 본 국민들의 마음이 이와 같거나 비슷했을 것이다. 비단 가나전뿐만이 아니라, 멕시코(0-4), 미국(0-2), 튀니지(0-1)에 단 한 골도 기록하지 못하고 완패했기에 느낄 수 있는 최악의 감정일 것이다.

    어찌됐던 조별예선 H조 2경기(한국의 1경기)인 러시아전을 8일 앞둔 오늘, 가나전을 마침으로써 국가대표 평가전은 마침표를 찍었다. 이제는 이들이 과연 대한민국을 대표해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 나설 최후의 23인 자격이 있는 지에 대한 '뒤늦은' 고찰을 다시 해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사실상 월드컵 H조의 최약체가 된 우리나라.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K-리그와 국제 대회를 통해 실력을 인정받은 우리나라 선수들이 잉글랜드의 프리미어리그와 독일의 분데스리가 등 해외에서 입지를 구축하기도 했고, 2012년 런던 올림픽 동메달에 따른 군 면제로 향후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압박감도 상당히 줄어 들었다. 뿐만 아니라 박주영, 구자철, 기성용, 박종우 등은 올림픽 대표 때 동고동락하며 오랫동안 손발을 맞췄고, 필드 밖에서도 상당히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 중심에는 한국 축구의 전설이자 영원한 리베로인 홍명보 감독이 버티고 있다.

    이렇게 표면상으로 봤을 때 우리나라 대표팀은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정작 다른 곳에 있는데, 바로 국가와 5천만 국민을 대표해야 하는 태극전사들의 마음가짐이다. 올해 1월, 이영표는 해설가로 변신하면서, 현 국가대표에 대한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특히 "이기고 지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국가대표가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이다"라는 그의 발언은 대한민국 축구를 지켜보는 모든 국민의 속을 시원하게 뚫어줬다. 오히려 국민들에겐, 방송상을 이유로 더 강하게 발언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을 것이다. 물론 23인 모두가 국가대표라는 자리를 경시한다던가, 혹은 누구나 오를 수 있는 자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운동이를 흐려 놓는다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지 않던가? 수치상으로는 보이지 않는 불협화음으로 인해 우리나라 축구의 전력은 2002년 전성기 때 보다 오히려 퇴보했다.

    지난 튀니지전에서 보인 기성용의 왼손 경례와 멈출 수 없었던 그의 트위터와 페이스북, 홍명보 감독이 말한 원칙론의 부분적 붕괴, 소속 리그에서 골은 커녕 출전도 거의 하지 못한 박주영의 대표팀 무임 승차, 분데스리가 최고의 풀백 3인 중 한 명인 박주호의 대체 발탁, 혈액형 논란을 일으킨 윤석영, 올림픽 이후 기량이 급격히 하락한 박종우, 소위 '나라 잃은 표정'이란 비난을 받는 정성룡 등 국가대표팀의 잡음은 월드컵을 약 일주일 남긴 지금에도 끊임 없이 들리고 있다. 언제부터 국가대표의 위상이 바닥으로 떨어졌는지는 소위 '잡음'을 일으킨 선수 본인이 더 잘 알 것이다. 물론 이러한 논란은 우리나라가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상당 부분 불식될 것이지만, 최근 연이은 평가전의 내용과 결과를 본다면, 이러한 기대는 오히려 기적을 바라는 것에 가까울 것이다.

    정말 화나는 일이다. 1994년 미국 월드컵 때 독일에 3골을 내주고도 2골을 따라붙었던 뚝심,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 차범근 감독(현 해설위원)이 중도 귀국했음에도 갈 길이 바빴던 벨기에와 1-1 무승부를 거뒀던 승부욕, 2002년 황선홍의 붕대 투혼(미국전) 및 천당과 지옥을 오간 안정환(이탈리아전), 2006년 독일 월드컵 스위스전에서 또 다시 나온 최진철의 붕대 투혼과 패배후 통곡했던 이천수,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쉼 없이 필드를 누린 박지성과 이영표 등 베테랑의 눈물나는 헌신이 어째서 오늘날엔 보이지 않느냐는 말이다. 물론 2004년에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이 부임하며 자율성이 강조되는 분위기로 바뀌기도 했고, 베트남과 오만에 패배하며 이른바 '오만 쇼크'를 경험하는 등 추락기가 있었지만, 적어도 2002년에는 월드컵 4강이란 전무후무한 기록이 있었기에, 국가대표에 대한 비난과 질타는 어느 정도 상쇄될 수 있었다. 아울러 당시에는 트위터나 페이스북과 같은 실시간 SNS가 없었기에 선수들의 사생활 문제도 특별히 언급되는 건 없었다.

    수십년간 선배들이 일궈놓은 국가대표가 갖는 무게와 자부심을 무너뜨릴 자격이 그들에겐 없다. 국가를 향한 마음과 전 국민을 대표한다는 중압감이 그들에겐 보이지 않는다. 프랑스의 사미르 나스리와 아르헨티나의 카를로스 테베즈는 팀 조직력에 해가 된다는 판단으로 국가대표의 자리에 오르지 못하고 있는데, 과연 국가대표가 '실력' 혹은 '명성'만으로 오를 수 있는 자리일까? 적어도 우리나라에선 마음가짐이 어떻던 간에 확보해 놓은 입지만 있다면 무혈입성할 수 있는 자리로 보인다. 이제는 그들이 그토록 믿었던 '실력'과 '명성'도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해있으니, 어디서부터 매스를 들어어 할지 총체적 난국이 따로 없다.